사노위, 4월13일 세월호 사고해역 찾아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기도회’ 봉행
새벽부터 전국서 출발한 사노위 위원들
직접 만든 위패 등 들고 팽목항에 모여
꺼지지 않는 전기초 놓고 기도회 준비
인양된 세월호서 자녀 찾은 유가족도
미수습자 5명 수습 발원 간절히 기도
“아이들 모두 찾아야...기적 일어나길”

“아이들아. 이제 그만 돌아와라. 가족들이 기다린다.”
304명 아이들이 잠든 바다는 10년 전 그날처럼 잔잔했다. 사고 해역임을 표시하는 노란 세월호 부표가 둥둥 떠다녔다. 무거운 바닷바람 불어오는 선상 위에선 간절한 염불소리가 울렸다. 난간을 부여잡고 함께 기도하던 유가족들은 하얀 꽃을 바다에 안겼다.
세월호 10주기를 사흘 앞둔 4월13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지몽스님, 이하 사노위)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제 및 미수습자 수습 발원 기도회’를 봉행했다.

“어머니, 해역 갑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사노위 전화를 받고서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전날 한숨도 잠들지 못하고 해역에 왔다. 그는 한때 유가족이기 이전에 ‘미수습자 가족’이었다. 누군가는 진상규명을 얘기할 때 “제발 시신만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며 팽목항서 살았다. 참사 후 3년, 인양된 세월호 안에서 기적적으로 아이를 찾았다. 하지만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였다. 아이를 찾았다는 감사함, 남은 미수습자 가족을 향한 미안함 등이었다. 그는 ‘그날’로부터 맞닥뜨린 모든 감정을 갖고 선상으로 향했다.
사노위는 이날 새벽부터 기도회 준비로 분주했다. 서울, 안산, 공주, 구미 등 전국 각지에서 5시간여 가량 걸려 모였다. 기도회에 쓰일 제사 도구, 과일, 떡, 플랜카드, 피켓 등을 나눠들고 왔다. 동신스님은 위패를 직접 만들었다. 아랫단은 연잎을 꼬아 한 잎, 한 잎 붙였다. 바닷바람에 휘날려 초가 꺼질까 전기초도 사오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선상 안은 고요했다. 유가족들은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거나 난간에 서서 먼 바다를 바라봤다. 스님들은 기도를 준비했다. 흔들리는 배 안, 볼펜을 들고 배 한 편에 서서 발원문을 수정했다. 원경스님은 참선을 했다. “아이들을 꺼내주십시오.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십시오.” 기도의 염력을 내면으로 넣은 것이다.
내면의 기도는 곧 드넓은 바다로 향했다. 세월호 부표 앞에 다다르자 스님들은 차분한 손길로 상을 차렸다. 탱화 아래 위패를 모시고, 과일과 떡을 놓았다. 흔들리는 물살에 균형을 잃을세라 유가족들은 스님들을 지탱했다. 혜찬스님은 “아직 수습되지 않은 다섯분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 올리겠다”라며 “희생된 모든 학생들과 일반인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바다에는 쩌렁쩌렁한 종소리, 청아한 목탁소리가 울렸다. 부위원장 서원스님의 간절한 염불 아래 기도는 30분 동안 이어졌다. 희생자 304명의 극락왕생을 염원하고, 미수습자인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과 교사 양승진 씨, 일반인 승객 권재근·권혁규 부자가 돌아오길 염원했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대중들 사이로 뜨거운 햇빛이 비췄다. 바닷바람은 점점 거세졌지만 스님들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유가족들은 난간을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모두 타종교인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일에 모든 종교가 함께해야한다”며 함께 기도하고, 절을 올렸다.
스님들과 유가족들은 곱게 만든 위패를 태웠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애도의 꽃을 띄웠다.





기도회가 끝난 뒤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과 함께해온 혜찬스님은 “이제 덜 우네!”라고 인사를 건넸다. 유가족들은 웃으며 스님을 포옹했다.
지난 10년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시간이었다. 힘들 때면 하염없이 걸어다니며 몸을 피곤하게 했다. 아이는 계속 곁에 있었다. 10년이 지났으니 2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곱게 화장한 사람을 보면 우리 아이도 저렇게 컸을까, 남자친구와 걷는 사람을 보면 우리 아이도 남자친구 생겼을까, 스치는 모든 순간에 아이 모습을 대입했다.
때로는 웃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늘에 있는 아이와 만날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과 삶 사이에서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어디일까.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었다. 그렇게 살아낸 10년이다.
힘이 났던 순간도 있었다. 누군가가 그냥 대해줄 때, 그냥 곁에 있어줄 때다. 사노위도 그랬다. 팽목항에서 피켓시위를 하던 시기, 무조건 아이를 찾아야 한다며 함께 소리쳐줬다. 인양 소식에는 팽목항으로 달려와 묵묵히 곁에 있어줬다. 끼니 때가 오면 밥을 먹게 했고, 쓰러질 때면 기대게 했다. 눈물을 흘리면 휴지를 건네줬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이날 선상을 오며 다짐했다고 했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이 슬퍼할 테니 이제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 누군가 눈물을 흘릴 때 휴지를 건네주자. 그것부터 시작해보자”고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선상 위에 올랐다.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인다면 남은 아이들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는다.
유가족들은 조금씩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날 함께 기도한 모든 사람을 향해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먼 길 함께해줘 고맙습니다. 조계종과 많은 시민의 기도 덕분에 아이들을 찾았습니다. 남은 아이들을 모두 찾을 때까지 함께해주세요. 그리고 날마다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과 웃고, 안고, 통화하면서 아낌없이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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