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오신날 앞둔 목포신항 법당 24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5일 목포신항에 임시법당을 조성하고 기도정진하고 있다. 사회노동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도철스님이 박영인 군의 귀환을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사회노동위원회 4월5일부터

목포신항 법당서 기도법회

미수습자 9명 귀환 기원 및

세월호 아픔 치유위해 정진

한 시인은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도, 숨 쉬는 폐도, 피 끓는 심장도 아니다.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라고 노래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가장 아픈 곳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불기 2561(2017)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우리사회 가장 아픈 곳은 단연 ‘세월호’다. 2014년 4월16일 이후 여전히 우리사회는 세월호라는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세월호의 아픔을 보면 어떤 설법을 하셨을까. 응병여약(應病與藥). 환자의 질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듯이 상대방의 수준이나 이해정도를 살펴서 중생에게 가장 절실한 가르침을 설하신 부처님. 부처님 가르침 따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세월호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진 중이다. 지난 15~16일 목포를 찾아 목포신항 법당의 하루를 재구성했다.

목포에 마련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임시 숙소를 나서는 것으로 목포신항 법당의 하루가 시작된다. 목포대교를 건너 신항으로 향하는 길, 해무(海霧)가 짙게 땅으로 내렸다. 목포신항에 도착하자 사회노동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도철스님을 향해 많은 이들이 합장 인사를 건넸다.

지난 4월5일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만남 컨테이너 바로 옆에 마련된 임시법당. 지난 4월5일 이후 도철스님은 목포법당에서 일과를 시작한다. 스님과 함께 양한웅 집행위원장이 상주하면서 매일 미수습자 조기 수습 발원기도를 봉행하고 있다.

목포신항 법당에는 조은화 양, 허다윤 양, 남현철 군, 박영인 군,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 씨, 일반승객 권재근 씨와 아들 혁규 군, 이영숙 씨 등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연등이 달려있다. 미수습자들의 이름이 적힌 연등 아래서 도철스님이 절을 시작했다. 두 번의 108배, 죽비 소리에 맞춰 1배, 1배, 부처님 전에 전을 올렸다. 통풍과 환기도 잘 되지 않는 컨테이너 법당. 이내 스님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죽비 소리를 듣고 목포신항을 찾은 이들이 법당 안을 기웃거렸다. 힐끗 내부를 살피고 스쳐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법당 안으로 들어와 부처님 전에 3배를 올리는 이들도 많다. 몇몇 불자들은 보시함을 찾는다. 스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시금을 두고 가는 이들도 종종 있다.

법당 안에서 절을 올리던 정희순(광주 송정동, 48세) 씨가 갑자기 법당을 나선다. 정 씨에게 말을 건네자 눈물을 훔친다. “스님과 함께 절을 하다가 미수습자 가족들 생각이 나서 갑자기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도저히 절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나왔습니다. 하루빨리 (미수습자들이) 가족들에게 돌아오길 바랄뿐입니다.”

법당 참배를 마치고 나온 노기선 씨도 말을 보탰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마음은 있었는데 한 번도 진도 팽목항에 가질 못했어요.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죠. 이번에 지역 사람들과 내려올 일이 생겨 큰 마음먹고 내려와 봤어요. 얼마나 안타까워요. 어린 아이들이… 우리사회가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인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법당을 비롯해 목포신항 곳곳이 북적였다. 특히 목포신항 철제펜스 너머로 옆으로 누워 있는 세월호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다. 방문객들은 철제펜스에 노란 리본을 묶으며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와 미수습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보탰다. 미수습자 가족인 조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 씨와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가 피케팅에 나섰다. ‘아직도 세월호 속에 가족이 남아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든 어머니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서로를 의지하며 눈에 넣어도 아프질 않은 딸을 기다리는 어머니들, 매일 4월16일을 살고 있는 어머니들이다.

시민단체 ‘리멤버0416’ 회원들도 곁에서 피케팅을 하며 △미수습자 온존 수습 △세월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리멤버 0416’ 회원인 아버지가 함께 목포신항을 찾은 서지호 (서울 연서중3) 군은 “세월호 진상규명이 빨리 이뤄지고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저희같은 중학생들이나 초등학생들도 언제 다시 이런 일을 겪을지 모른다”며 “3년 동안 미수습자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과 슬픔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미수습자들이 최대한 온존하게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시법당에서 108배를 마친 도철스님도 밖으로 나섰다. 리멤버0416 회원들이 든 피켓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피켓을 들었다. 기도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이지만 스님들은 피케팅을 시작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1명인 단원고 2학년 6반 박영인 군의 귀환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도철스님이 든 피켓에는 ‘주인 잃은 축구화만 팽목항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축구를 비롯해 구기 운동을 좋아했던 박영인 군. 박 군을 위해 가족들은 진도 팽목항에 축구화를 놓아두었다. 축구화는 주인 박영인 군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목포 임시법당을 찾았다.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 발원 2차 기도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사회노동위원회는 매일 기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특히 토요일 마다 집중기도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힘을 보태기 위해 영암 도갑사 템플스테이 담당 선화스님이 매주 화요일, 목포사암연합회 스님들은 토요일 마다 힘을 보태고 있다. 법고 소리가 기도법회의 시작을 알렸다. 미수습자 조은화 양 아버지 조남성 씨와 허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도 법회에 동참했다. 목포신항을 찾은 이들도 합장을 한 채 법회를 지켜보며 미수습자 귀환을 기원했다. 도철스님이 발원을 올렸다.

“아홉 분의 미수습자가 온전히 수습되는 그날까지, 온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그날까지, 또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이 인정되고 세월호 침몰의 진상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우리의 기도는 멈출 수 없습니다.” 관세음보살 정근을 끝으로 기도법회가 끝났다.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도 목포신항 법당을 떠났다.

“스님, 힘들지 않으세요?” 잠시 쉴 틈이 나서 도철스님에게 물었다. 법당을 조성하기 위해 목포에 내려 온 이후 보름 넘게 법당을 지키고 있기에 당연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돌아 온 대답은 간명했다. “스님이 법당에서 기도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뭐가 힘이 들어요. 그저 (미수습자들이 돌아 올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죠.” 미수습자 수습하는 날까지 도철스님과 사회노동위원회는 묵묵히 기도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임시법당 한 편에 조계종 종무원조합의 발원문이 걸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모든 고통을 여의고 극락왕생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9명의 미수습자 분이 하루 속히 가족 곁으로 돌아와 가족들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사라지기를 거룩하신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지난 1월9일 세월호 1000일을 맞아 종무원조합 추모예불 당시 했던 발원이다. 미수습자들의 귀환을 발원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모아지고 있다. 세월호가 3월31일 목포신항에 도착하고 지난 4월11일 육상거치가 완료됐지만 해양수산부는 4월18일에서야 미수습자 수습계획을 발표했다. 세월호가 바다 밑에 잠겨 있던 동안 진작 마련됐어야 할 수습계획이었다.

도철스님이 다시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는 108배를 위해서다. 가득했던 방문객들도 하나 둘 발길을 재촉하며 목포신항을 떠났다. 절과 함께 죽비 소리가 다시 힘차게 목포신항에 울렸다. 상처 난 몸으로 힘겹게 누워 있는 세월호 너머로 해가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 적힌 연등이 임시법당에 걸렸다.
미수습자 귀환을 기원하는 도철스님의 기도.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관세음보살 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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