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미수습자 영결식…위로와 치유의 기록 3년7개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팽목항을 찾은 스님들.

1311일이 지났지만 끝내 마지막 5명은 찾지 못했다. 지난 11월16일 세월호 곁을 지키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금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결단을 내렸다”며 18일 미수습자 합동 영결식을 치뤘다. 

비극의 역사를 넘어 미래 희망의 상징으로 승화시켜야 할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운행을 멈췄던 그 시간부터 같이 울며 슬픔을 나누고 괴로움을 덜어내기 위해 종단이 함께했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인 2014년 4월17일 종단은 ‘세월호 참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긴급재난구호봉사단을 팽목항으로 파견했다. 아울러 팽목항에 임시법당을 마련해 실종자의 무사귀환과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기도를 통해 조금이나마 참사의 아픔을 나누는데 진력했다. 

진제 종정예하,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자승스님을 비롯해 종단 집행부 스님들은 팽목항에 직접 찾아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 수륙재와 함께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을 위한 기금모금 운동도 지속적으로 펼쳤다.

종단은 세월호 아픔을 위로하는 일만 치중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조계종 노동위원회(현 사회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2014년 7월부터 노동위원회 위원인 도철스님은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을 32일 동안 계속했다. 뙤약볕이 내리 쬐는 같은 해 8월 매주 토요일에는 광화문 단식장 앞에서 3000배 기도를 통해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주장한다. 종단의 노력의 힘입어 결국 정부는 그 해 11월 세월호 특별법을 공포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여 년이 지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세월호가 차츰 희미해질 그 때에도 종단은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비용문제, 정치적 이견 등이 겹쳐 세월호 인양은 계속 미뤄지자 종단은 3차례의 오체투지를 통해 인양을 촉구한다. 2016년 7월부터는 세월호 참사해역에 직접 찾아가 조속한 인양을 서원하는 법회를 봉행한다. 세월호의 온전하고 조속한 인양을 기원하는 72시간 철야기도도 빼놓을 수 없다.

미수습자의 수습을 기원하는 일에도 적극 나선다. 지난 1월에는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아 희생자 추모 및 미수습자 수습 기도를 올린다. 또한 3월에는 앞장서서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등 이웃 종교들과 수습기원 4대 종교 기도회를 봉행하기도 한다. 세월호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3월 이후에도 목포신항에 임시법당을 설치해 미수습자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하려 했다.

이밖에 세월호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단원고 기간제 교사인 김초원·이지혜 선생님에 대한 순직인정 촉구 활동도 빼놓을 수 없었다. 2015년 7월 순직인정 촉구 1000배를 시작으로 3대 종교 합동 기도회, 5차례 오체투지 등을 통해 지난 5월15일 문재인정부는 두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할 것을 지시했다. 종단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로써 순직인정대책위원회는 감사의 뜻을 종단에 표현하기도 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희생자분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 사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고,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면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인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밝히는데 앞으로 사회노동위원회도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