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순례에서 만난 사람들 - 윤재웅 이세옥 부부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남편하고 어디 안 가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같이 다니는 게 좋아요. 지난해 자비순례 참가했던 남편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꼭 한번 같이 가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이번에 드디어 그 기회가 온 거죠.”
남편 윤재웅 동국대 교수를 바라보는 이세옥 씨 눈빛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고단한 순례 일정에도 짜증 한 번 안내고 마치 신혼부부처럼 서로를 아끼는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알고 보면 7살 소꿉질 시절부터 만난 50년 부부 사이다. 지난해 상월선원 만행결사 자비순례를 완보한 윤 교수의 권유에 평소 걷기를 좋아하던 이 씨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리면서 50년차 부부가 이제 수행 도반으로 순례길에 올랐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 쌀쌀해지는 날씨에 차가운 길 바닥에서 자고 하루 장거리를 걸어야 하는 고된 순례 생활. 주변 환경이 힘들어질수록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내기 쉬운데 이 부부는 서로 소리 한번 높이는 법이 없다. 부인 이세옥 씨는 “힘들고 불편한 건 있지만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들을 보며 오래도록 남편하고 함께 걷는 이 길이 좋다”며 “특별히 무언가를 얻으리란 생각보다는 남은 기간 동안 조심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완주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남편 윤재웅 교수도 “부부라기 보다는 50년 수행 도반으로 왔다”고 했다. 윤 교수는 “평소에도 아침 산책을 하며 생각을 비우는 연습을 많이 한다”며 “천리순례는 묵언 행선하며 보다 긴 시간 동안 걷기를 하는 만큼 복잡한 생각을 가급적 버리고 그 빈 공간을 보다 풍요로운 생각들로 채워가려고 한다”고 했다.
창녕=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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