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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자르든지, 신발을 자르든지 하나만 택하라”고 단언한 진오스님 조언대로 발가락 부분을 오려낸 항명스님 신발.

삼보사찰 천리순례 13일차인 1013. 경남 창녕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낸 순례단이 오전 걷기를 마친 후 장마면 면사무소 앞에서 아침 공양을 하며 잠시 쉬어가던 길, 안산 쌍계사 주지 항명스님의 구멍 난 신발이 눈에 들었다. 오른쪽 엄지 발가락 발톱이 들려 거의 빠지기 직전, 한 발작도 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자 스님은 아예 가위로 신발을 도려냈다고 했다. ‘달리는 스님으로 유명한 진오스님이 절뚝이며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던 항명스님에게 발을 자르든지, 신발을 자르든지 하나만 택하라고 단언했다고.

항명스님은 “‘니까짓게 아파봤자지라는 생각으로 걸었다이젠 발도 제 딴에 지쳤는지 아무렇지 않다고 허허 웃었다. 그런 항명스님을 보며 2조 조원들은 태성스님 보살핌이 극진하다 놀렸다. 서울 문수사 주지 태성스님이 밤마다 뜨거운 물수건으로 온찜질을 해주고 붕대도 감아준 덕에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조원들 말에 태성스님은 그런 거 없다며 부끄러운 듯 손사래만 쳤다.

천리순례 13일차에 접어들면서 부상이 일상이 됐지만 순례의 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이 까지는 것은 물론 물집 위에 물집이 잡히는 건 예삿일. 새벽 예불로 시작해 하루 장장 8시간을 걷는 강행군에 이틀 째 내린 폭우가 더해져 발이 부르트고 상처가 번지면서 여기저기 부상자들이 나왔다. 그간 힘들다한 마디 않던 상월선원 만행결사 회주 자승스님도 우중 행군 후 의료팀에 발목 통증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파스를 뿌리고 매일 소염제를 먹으며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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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 새벽 에불 시간. 오전3시 기상해 예불 후 4시 전 출발하는 강행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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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순례를 마치고 길가에 앉아 잠시 쉬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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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회주 자승스님이 속한 1조가 선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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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트는 신구마을을 지나는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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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차도를 조심스레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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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주간 오심스님도 순례 첫날부터 전 구간 걷기 일정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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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으로 들어서는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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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째 이어진 폭우 속 행군은 체력을 떨어트린다. 잠시 쉬고 있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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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 회향식. 사진 왼쪽부터 소청심사위원장 동명스님, 회주 자승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 포교원장 범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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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원장 범해스님이 부곡에 들어서는 순례 대중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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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이 들리고 물집 위에 물집이 얹어져 발은 엉망이 됐지만 항명스님은 "발이 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단순한 걷기가 아닌 순례의 여정. 내 건강을 위하거나 어떤 목적을 향해 걷는 걸음이 아닌 나를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비우는 길’, 부처님께서 걸으셨던 구법의 길이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뻐근한 다리를 매만지던 서울 개운사 주지 보림스님은 길이 험해지고 비가 내릴수록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지지만 걷다 보면 서로를 위한 배려가 눈에 들어오고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것들에도 감사하게 된다특히 남다른 의미가 있는 삼보사찰을 직접 두 발로 걷는다는 것, 불교 중흥과 포교 원력을 세우는 새 길에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나와 이웃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발걸음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그냥 걷게 된다고 했다.

우바새 그룹 중 최고령자인 윤순성(71) 씨도 순례를 하다보면 고통이 저절로 없어진다고 했다. 퇴직 후 불교에 입문 한지 5. 부처님께서 걸으신 구법의 길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자녀들 만류에도 천리순례에 어렵게 참가했다는 윤 씨는 시암재 오도재 등 높은 고갯길을 이 악물고 걸었다고통 끝 찾아오는 희열과 환희, 그리고 내 생애 다시는 오지 못할 이 길을 생각하면 삼보사찰 천리순례 순례단원 중 한명으로 참가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뙤약볕 고갯길과 폭우 속 행군을 넘어 322km 걸어온 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은 이날 불보종찰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과 조계종 포교원장 범해스님 환대 속 경남 부곡에 도착했다. 다음날인 14일차엔 조계종 총무원 포교원에서 주최하는 포교 박람회에 참여한 후 15일차 홍제사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한편 이날 일일 참가자로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보인스님 외 30여 명 직원과 서울 국제선센터 주지 법원스님과 신도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창녕=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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