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재~성삼재~남원까지 26km
불교신문 노동조합 집행부 동참
불교신문이 ‘삼보사찰 천리순례’ 전 구간을 함께 걸으며 동행 취재에 나섭니다. 송광사를 시작으로 해인사를 거쳐 통도사에 이르기까지 423km를 걷는 고단한 여정이지만 ‘자기 수행과 대중 화합’이라는 화두 아래 어제와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매일이 될 것입니다. 걷기 조를 포함해 진행 및 지원단까지 150여 명에 이르는 순례단은 매일 땀을 흘리며 걷고 물집으로 인한 통증과 싸웁니다. 제대로 씻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하며 새벽 이슬, 한낯의 더위, 맨바닥 추위와 마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힘으로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천리순례단입니다. 18일 간의 일정 동안 본지가 현장 소식을 매일 전합니다.
천리순례 5일차. 지리산 서북 능선의 세찬 바람을 텐트 하나에 의지해 밤을 지낸 순례단이 시암재를 떠나 성삼재에 올랐다. 하루 전 천은사에서 시암재로 이어지는 고도 958m 가파른 굽잇길을 오로지 두 발에 의지해 묵묵히 걸어 오른 탓인지 해발고도 1079m 성삼재에 오르는 순례단 발걸음이 무겁다. 고된 순례 길에도 이들을 위로하는 건 지리산이 갖고 있는 천혜의 자연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능선을 덤덤히 걷다 언뜻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면 수천개 별들이 쏟아질 듯 은하수가 황홀히 펼쳐진다. 도심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순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함께 하는 이들과 서로 걸음을 맞추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지난 4일 간 행렬 제일 뒤에 서서 순례단을 뒷받침 했던 우바새 그룹은 이날 선두 그룹에 섰다. 순례 초반이 고비였던 만큼 순례단에 힘을 불어 넣어 달라는 지원단 요청 때문이다.
우바새 그룹 8조 조장 정충래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는 “평지에선 속도를 내고 내리막길에선 속도를 줄이며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 걷고 있다”며 “순례단 전체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선두 그룹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막중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월선원 자비순례에도 참가했던 정충래 이사는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날마다 걷는 길과 자는 곳이 바뀌면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조금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는 하루에도 수십번 순례단은 물론 지원단을 긴장하게 한다. 지리산 성삼재를 넘어 전북 남원으로 접어드는 구간. 3시간을 걸어야 하는 순례단이 용변을 볼 곳이 마땅치 않은 코스다. 지원단은 하루 전 사전 답사 때 미리 구덩이를 파 둔 곳을 찾아 순례단이 도착하기 직전 휴식 지점에 천막을 세우고 랜턴을 달았다.
누가 뭐래도 절실히 필요하지만 티가 나진 않는 일. 이상종 숙영팀장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려 해도 순례단 입장에선 불편함이 많을 것 같다”며 “물집이 생기고 인대가 늘어나면서까지 매일을 걷고 15도 이상 일교차를 이겨내며 짐 더미와 함께 텐트에서 몸을 구부려 잠을 청하는 스님과 불자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수고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남원으로 접어 들면서 순례단은 덕동리에서 아침 공양을 했다. 따뜻하고 깨끗한 수건과 옻차가 공양에 앞서 순례단을 맞았다. 순례 참가자인 허허스님이 주지로 있는 김해 성조암이 마련한 것으로 18일 간의 걷기 일정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는 순례단을 위해 새벽부터 준비한 것이다. 성조암 상우스님과 신도들은 매일 새벽1시 김해를 출발해 순례단 조식 장소로 온다. 출발 일정이 당겨지거나 늦춰지는 경우가 있어 성조암 식구들도 매일이 긴장이다.
성조암 신도 감차희 씨는 순례가 시작된 후 제대로 잠을 자 본 적 없다. 매일 오전12시 자택인 부산을 출발해 1시 김해 성조암으로 가 물을 끓이고 수건을 박스에 담는 등 순례단 지원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수건과 물을 나눠주던 감차희 씨는 “시간이 허락지 않아 순례단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 푼다”며 “순례단이 걷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불교가 참 좋은 것,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그 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순례 초반을 지나 차도와 산길, 평지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고비 고비를 넘기고 있는 순례단이지만 부처님 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자대비의 정신으로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수해주는 이들이 있어 순례단 일정도 고되지 만은 않은 셈이다.
한편 이날 순례에는 불교신문 노동조합 집행부가 참가해 이목을 끌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불교신문지부 신임 위원장 어현경, 부위원장 홍다영, 사무국장 이성진, 재정국장 김은주 등 집행부를 비롯해 장영섭 기자, 주정덕 차장 등 6명이 참가했다. 천리순례 총도감 호산스님은 “오늘 특별히 불교신문에서 일일 참가를 해줬다”며 재차 고마움을 표했다.
순례단은 시암재~성삼재~남원까지 26km를 걷고 이날 일정을 회향했다. 6일차인 10월6일에는 실상사를 참배하고 함양으로 향한다.
“천리순례하며 형동생 됐어요”
김호준 전 국가대표 스노보드 선수
안현민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회장
고령의 참가자가 다수인 순례단 가운데 2030세대 젊은 참가자들이 눈에 띈다. 매서운 눈매의 김호준 전 국가대표 스노보드 선수(30)와 언제나 싱글벙글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안현민(24)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장은 이번 순례에 참가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전혀 다른 이미지의 두 사람은 순례단 맨 뒤에서 힘을 불어넣는 우바새 그룹이다. 꿋꿋이 걸으며 함께 아픔과 기쁨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친한 형동생’이 됐다고.
안현민 회장은 “군대 행군만큼 힘들다”면서도 “호준이 형이 있어 외롭지 만은 않다”고 했다. 안 회장은 “불보 법보 승보라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천리를 순례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참가하게 됐다”며 “체력적으로 힘들긴 해도 쉬는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다보면 아픈 것도 사라진다”고 해맑게 웃었다. 순례 코스에 포함된 사찰을 참배하며 언젠가 이곳에서 템플스테이를 해보겠다 마음 먹었다는 안 회장은 “천리순례를 회향하는 불보종찰 통도사까지 건강한 제 두 발로 한국불교를 생생히 느끼며 걷겠다”고 했다.
들르는 사찰마다 불전을 하기 위해 두둑이 봉투를 챙겨왔다는 김호준 선수는 “아직까진 ‘발이 아프다’ ‘쉬고 싶다’ ‘언제 도착하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며 “신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운동선수일 때도 걷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는 김 선수는 “싫어하는 일을 완성했을 때 무언가 깨달음을 얻곤 했던 것 같다”며 “같은 맥락에서 처음엔 자기 성찰의 목적으로 참여했지만 사찰마다 예불하고 불전하며 그리고 존경하는 호산스님(김호준 선수는 호산스님이 창립한 상월선원 청년회 제1기 출신이다)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불심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남원=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삼보사찰 천리순례 4일차] 지리산 가거든…자승스님 발원 “복 짓는 기도 합시다”
- [삼보사찰 천리순례 3일차] 안개 자욱한 섬진강 따라 화엄의 세계로
- [영상] 삼보사찰 천리순례 입재식…한국불교 중흥 위한 423km 대장정 ‘시작’
- [삼보사찰 천리순례 2일차] ② 사찰 참배하며…무량 공덕 짓는 길
- [삼보사찰 천리순례 2일차] ① 함께 걷는 길, 자리이타의 길
- [삼보사찰 천리순례 1일차] ② 삼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423km 톺아보기
- [삼보사찰 천리순례 1일차] ① 한국불교 새 운동…천리길 대장정 시작
- [삼보사찰 천리순례 특집] 한국불교 중흥 위한 첫 발걸음 ‘순천 조계산 송광사’
- [삼보사찰 천리순례 6일차] ① 청매선사 깨달음 얻은 곳, 오도재를 넘어
- [삼보사찰 천리순례 6일차] ② 자승스님 실상사 참배…도법스님과 환담
- [삼보사찰 천리순례 7일차] 조금만 더 가자…응원과 격려 속 최장거리 완보
- [삼보사찰 천리순례 8일차] ① 견디고 참고 기다리며…
- [삼보사찰 천리순례 8일차] ② 순례단 찾은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본사 주지 스님들
- [삼보사찰 천리순례 9일차] 가야산에 이르러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드니
- [삼보사찰 천리순례 11일차] ① 비바람 불어도 꽃길 일세
- [삼보사찰 천리순례 11일차] ② “딸과 평생 한번뿐일 삼보사찰 순례”
- [삼보사찰 천리순례 10일차] 245km 걸어 박수와 환호 속 경북 입성
- [삼보사찰 천리순례 12일차] ① 누적 295km...순례단 가는 곳마다 ‘들썩’
- [삼보사찰 천리순례 12일차] ② “부부 아니고 50년 수행도반으로 걷습니다”
- [삼보사찰 천리순례 17일차] ② “우리 모두가 부처님이었다”
- [삼보사찰 천리순례 17일차] ① 마지막 고비 넘어…황금 물결 일렁인 사자평에서 위법망구를 새기며
- [삼보사찰 천리순례 18일차] 대장정 회향…금강계단 돌며 일불제자 본분사 다짐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