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온전히 비치듯이, 우리들 마음 속 번뇌의 물결이 잦아지면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물속에 도장이 찍히듯(印) 비치는 경지. 이것이 대승 경전의 꽃으로 불리는 ‘대방광불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다. 해인삼매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할 때 선정에 든 상태를 뜻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바다에 비유해 중생의 번뇌 망상의 파도가 멈출 때 실상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며 부처님께서 얻으신 깨달음, 우리가 불자로서 자각해야 할 모습이다.
한국불교 중흥과 국난극복을 기치로 내건 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이 순례 대장정 절반을 넘어 가야산 해인사에 올랐다. 순례 딱 절반을 넘어선 10월9일. 두 번째 삼보사찰에 이르기까지 순례단은 9일 간 223km를 걸었다. 순천, 곡성, 구례, 남원, 함양, 거창, 합천 등 그간 순례단이 거쳐 온 시군구만 7곳에 달한다. 두 번째 삼보사찰인 해인사로 향하던 날, 순례단은 동이 트기 전 거창 가조를 출발해 해인사가 있는 소리길에 들어설 때까지 가을 황금빛 너른 들판과 가야천에서 이어지는 홍류동 계곡을 지났다.
순례단이 지나는 길에는 해인사 입성을 축하하는 해인사 본말사 스님과 신도들의 응원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국민에게 사색과 희망의 공간을 열어 갑시다’ ‘부처님과 새 인연이 맺어지도록 노력하십니다’ ‘불교 중흥의 원력을 바로세우는 삼보사찰 천리순례’ ‘구법의 천리길, 해인사 사부대중이 응원합니다’ 등 환영 인사가 가득 적혔다.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은 이날 순례 구간 중간 지점인 소리길 입구까지 해인사 대중과 마중을 나왔다. 해인사 주지 스님 환대에 상월선원 만행결사 회주 자승스님은 “순례길을 걸어오는 내내 해인사에서 마련한 현수막을 보고 지친 발걸음에도 힘이 솟았다”며 “삼보사찰 천리순례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해인사 주지 스님의 응원에 감사를 전한다”고 전했다.
경남 불자들의 응원 속 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은 이날 27km를 이동해 가야산 해인사에 올랐다. 해인사는 부처님 말씀을 새겨진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이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나라의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 국난을 극복하고자 초조대장경을 만들었지만 전란으로 모두 불타 없어진 후 고려 고종이 지금의 팔만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팔만대장경은 목판 8만1258판에 달한다. 800여 년이 지났음에도 그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지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해인사는 그간 보존 등의 이유로 팔만대장경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올해 코로나 극복을 염원하며 제한적으로 공개해왔다.
장장 6시간의 걷기에도 순례단은 쉼 없이 대적광전부터 찾았다. 순례단과 일일참가자, 해인사 대중까지 200여 명이 대적광전 앞 꽃으로 장엄된 화엄일승법계도를 따라 걸었다. 대적광전을 지나 해인사의 상징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에 도착한 순례단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대장경을 직접 눈으로 보며 참배를 하는 기회를 얻었다.
해인사 사부대중은 이날 순례단을 위해 기꺼이 경내를 개방했다. 공양을 비롯해 잠자리와 샤워실 등을 제공하며 순례단이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편의를 내놨다. 회주 자승스님은 팔만대장경을 오롯이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법보종찰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에게 순례단 환영에 대한 감사 의미로 상월선원 만행결사 상징인 장군 죽비를 내렸다.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은 죽비를 세 번 치며 “첫 번째 죽비는 순례단에 대한 진심어린 환영 인사와 함께 해인사 대중이 단 하루라도 불편 없이 잘 외호하겠다는 의미를 담았고 두 번째 죽비는 스님은 자비의 법성을 재가 신도는 이고득락을 성취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세번째 죽비는 423km를 걸으며 삼보사찰의 긴 여정을 순례하는 이 공덕이 이 사회에 회향돼 국민이 평안하고 나라가 태평하게되길 바라는 의미”라고 했다.
해인사 방장 원각스님은 천리순례단의 원력과 정진을 치하하는 법어를 내렸다. 원각스님은 삼보사찰 천리순례가 한국불교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며 “천리순례단이 순례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법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사부대중이 자연 속에서 함께 수행하고 점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모두가 부처의 삶, 지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혼자가 아닌 대중의 힘으로 이 공덕이 일체중생에게 회향할 수 있도록 하자”고 설했다.
천리순례단은 이날 해인사가 마련한 운동장 천막 텐트에서 9일차 밤을 지낸 뒤 다음날 경북 고령으로 향한다.
해인사=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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