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다살다 이런 건 처음 보네요. 스님하고 신도들이 100명도 넘게 걷는다던데, 하필이면 비가 이렇게 오는 날씨에 우산도 안 쓰고... 너무 고생들하시네. 원래 불교에서는 이렇게 많이들 하나 봐요.”
삼보사찰 천리순례 12일차인 10월12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에 들어서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을 보고 김선진 이방면사무소 주무관이 노태우 동산마을이장에게 질문을 건넸다. 면사무소로부터 순례단이 동산마을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이른 새벽부터 순례단이 지나는 휴식처로 한걸음에 달려 온 길. 노태우 이장은 “원래 인도에서는 스님들이 걸어서 수행하는 걸 많이들 한다는데 국내에서 이런 광경은 나도 처음 본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해 국난 극복을 염원하며 18일 간 한반도 남쪽을 횡단하는 중이라 설명하자 김선진 주무관은 “너무 감사한 일”이라며 “불교계가 국민과 함께 코로나 극복을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순례단이 이방면에 입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하루, 이방면 전체가 들썩였다. 순례단이 지나는 길을 하루 전 미리 전해 듣고 비를 피할 곳과 화장실을 물색해 휴식처를 제공한 성익경 이방면장은 이날 새벽5시부터 시내로 나와 순례단을 기다렸다. 비를 맞아 추위에 떨고 있는 순례단을 위해 따뜻한 국물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지만 길어야 10분 정도의 휴식이 주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아쉬운 마음만 가득했다고.
성익경 이방면장은 “실내 체육관을 섭외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외부 협소한 공간만 제공해드릴 수밖에 없어 너무 죄송스럽다”며 “비가 와도 개의치 않고 순례를 계속하는 극복의 힘으로 불교가 국민에게 코로나는 물론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직접 전해주는 것 같아 참 기쁘다”고 말했다.
하루 전 폭우 속 23km를 걸은데 이어 이틀 째 우중 행선에 나선 순례단은 체력 저하와 추위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순례단을 응원하는 탄성이 이어지면서 지친 걸음에도 힘이 실렸다. 순례단이 이날 마지막 구간을 앞두고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지던 때, 동산마을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일찍부터 나와 따뜻한 커피와 녹차 등을 준비하며 가뭄 속 단비가 돼 줬다.
빗방울이 비옷을 뚫고 스미며 한기까지 살갗을 파고든 쌀쌀한 날씨, 따뜻한 차로 환대해준 주민들에게 순례단은 “감사하다” 재차 인사를 건넸다. 손사래를 치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마을 주민들 격려엔 스님과 신도들을 향한 걱정과 응원이 담겼다. “우리도 다 절에 다녀요” “아니 이렇게 고생하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요. 스님들 옷이 다 젖었네” “비라도 그치면 가세요” “코로나 때문에 못 살겠는데,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삶이 괴롭고 힘들어도 다시 내일을 살게 하는 건 사람의 온기 때문이다. 순례 12일차, 새벽 이슬과 빗방울을 맞으며 제 때 씻지도 못하고 길 한 바닥에서 먹고 자야하는 순탄치 않은 길, 피로는 쌓여 가고 당장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싶지만 내일 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이날 회향 축원 때 정혜스님이 말한 “이 108천리순례단의 발걸음이 이어져 1080명이 되고 억만명이 될 때까지 화엄세계 우담바라꽃이 억만송이 펼쳐지길 때”까지.
천리순례단은 이날 경북에서 불보종찰 통도사가 있는 경남으로 들어섰다. 순례단 발길은 이제 부곡을 향한다.
창녕=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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