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이 삼보사찰 천리순례전 구간을 함께 걸으며 동행 취재에 나섭니다. 송광사를 시작으로 해인사를 거쳐 통도사에 이르기까지 423km를 걷는 고단한 여정이지만 자기 수행과 대중 화합이라는 화두 아래 어제와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매일이 될 것입니다. 걷기 조를 포함해 진행 및 지원단까지 150여 명에 이르는 순례단은 매일 땀을 흘리며 걷고 물집으로 인한 통증과 싸웁니다. 제대로 씻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하며 새벽 이슬, 한낯의 더위, 맨바닥 추위와 마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힘으로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천리순례단입니다. 18일 간의 일정 동안 본지가 현장 소식을 매일 전합니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둘째 날인 10월2일 순례단이 섬진강 벚꽃길을 지나고 있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둘째 날인 10월2일 순례단이 섬진강 벚꽃길을 지나고 있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둘째 날인 102일 새벽3. 도량석 목탁 소리가 순례단을 깨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하나둘 불빛이 켜진다. 새벽에 내린 이슬로 흠뻑 젖은 텐트 만큼이나 습기와 피로를 머금은 순례단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3시 기상, 4시 출발, 오후9시 취침, 하루 평균 30km18회에 걸쳐 걷는 강행군도 강행군이지만 뜨거운 땡볕 아래 마스크를 쓰고 걸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빠진다. 늘 손에 끼고 살던 스마트폰도 걷기 내내 못 쓴다. 100여 명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는 만큼 각자 속도가 있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 없이 전체 보행 속도에 맞춘다.

이제 막 출발점에 오른 순례단이지만 이틀 새 대중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운다. 8개 조에서 단 한 명이라도 아프거나 부상을 당하면 조 전체가 휘청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만큼 몸이 움직여 주질 않는다. 초반이 최대 고비인 만큼 순례 2일차인 이날 부상자와 낙오자도 나왔다.

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이 곡성 목사동면 구룡리 캠핑장을 빠져나와 용정리로 향하던 길. 최고령 참가자인 이채순(76)씨는 이날 새벽 행선 중 어둠 속 좁을 길을 미처 발견 못하고 수풀에 발이 빠지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바이 그룹인 6조 선두에 서서 걷다가 다리에 힘이 풀린 것. 무릎팍이 깨지고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자식들이 보면 속 좀 상하겠다 싶은 마음에 괜찮으시겠냐재차 물어도 내일이면 괜찮아 진다며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이채순 씨는 다른 것보다 폐를 끼칠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해 자비순례에도 참가해 처음부터 끝까지 완보했다. 그에 앞서 수십년 간 셀 수 없을 만큼 봉정암에 오른 베테랑이다. 그럼에도 이 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자만했고 오만했다고 자책했다. 이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걷는 길이라는 걸 실감한다다 같이 함께 가는 길인 만큼 스스로 인내하고 참회하며 대중과 화합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닦겠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정숙 씨(70) 얼굴엔 아쉬운 표정이 가득했다. 언론 보도를 보고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해 참가 신청을 냈지만 다리에 마비 증상이 오면서 어쩔 수 없이 인천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정 씨는 자신 만만했지만 중간에 낙오해 아쉬운 마음뿐이라며 “70년 평생을 불자로 살면서 아직도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 이번 기회에 온전히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먹는 것, 씻는 것, 자는 것, 쉬는 것 무엇 하나 편치 않은 노상 생활. 체력 소진과 피로 누적이 적지 않지만 100여 명 모두 이기적 마음을 내려놓고 이타심을 배운다. 가을 같지 않게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더위에도 가사 장삼을 수하고 묵묵히 걷는 스님 뒤로 순례 가사를 수한 재가 수행자들이 걷는다. 걷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조금 더 참아내는 것, 목적지에 도착해 쓰러져 쉬고 싶어도 모두가 함께하는 회향을 위해 잠시 더 기다리는 것, 얼마 되지 않는 샤워 시설도 나보다 남이 먼저다. 나를 먼저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천리순례단은 이날 구룡리에서 압록리, 신월리 등 25km를 걸었다. 섬진강 절경이 펼쳐지는 벚꽃길을 통과해 사성암 인근에 마련된 노상 숙소까지, 94명 걷기 조를 포함한 진행 및 지원팀, 동국대 일일 참가자 등 170여 명이 서늘한 이슬을 맞으며 뜨거운 햇빛 아래 묵언 행선을 했다. 천리순례단은 다음날 곡성을 떠나 25km를 걸어 구례로 향한다.

 

최고령 참가자인 이채순 씨가 이날 새벽 행선 중 어둠 속 좁을 길을 미처 발견 못하고 수풀에 발이 빠지면서 부상을 당했다.
최고령 참가자인 이채순 씨가 이날 새벽 행선 중 어둠 속 좁을 길을 미처 발견 못하고 수풀에 발이 빠지면서 부상을 당했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순례단이 출발에 앞서 새벽 예불을 하고 있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어둠 속을 해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단.
삼보사찰 천리순례
랜턴 불빛에 의지해, 수행 도반에 의지해 걷는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3시간 행선 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스님들.
삼보사찰 천리순례
아침 공양에 앞서 오관게를 외고 있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짙은 안개 속 다리 위를 지나는 순례단.
삼보사찰 천리순례
땡볕 아래에도 가사 장삼을 수한 채 묵묵히 걷는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섬진강 벚꽃길 아래 순례단.
삼보사찰 천리순례
108염주를 손에 들고 걷는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이날 일정을 회향하는 순례 대중들.

구례=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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