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천리순례’ 왜 걸을까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통도사
정혜결사 운동의 중심 송광사
팔만대장경 봉안한 해인사 등
불법승 대표 사찰 잇는 순례길

9월30일 송광사 전야제 시작으로
10월1일부터 18일까지 맨 몸으로
길에서 먹고 자는 대장정 길 올라
승속 구분없이 100여명 참가 주목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삼보사찰 천리순례93019일 일정으로 시작됐다. 삼보사찰 천리순례는 2019년 시작된 상월선원(서리와 달을 벗 삼아 정진하는 수행처) 결사의 세 번째 프로젝트다. 동안거 천막결사를 거쳐 지난해 자비순례로 이어지는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대장정으로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중심이 돼 수행 대중을 이끈다.

올해 3번째 진행되는 프로젝트 핵심은 삼보. 불교 세 가지 보물인 불법승을 대표하는 송광사를 시작으로 해인사를 거쳐 통도사에 이르기까지 423km, 1077리를 걷는다. 걷는 내 묵언으로 행선하고 휴대폰 사용은 금지되며 오로지 걷는 행위에만 마음을 둔다. 100여 명이 길에서 먹고 자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불편도 감수한다. 편리와 효율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부러 천리 길을 돌아 삼보 사찰에 이르는 길, 쉽지 않은 여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보(三寶)는 불(), (), ()을 의미한다.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이라는 뜻으로 불자라면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제자를 마음의 의지처로 삼아 정진한다. 석가모니 재세시에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설법을 해 최초의 제자인 5비구가 나타났고(初轉法輪), 이 후 삼보가 성립되면서 재가신자가 귀의했다. 오늘날 조계종단이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를 불교에 입교하는 첫 순서로 삼는 이유기도 하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찰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통도사,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 고려시대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다. 수천 개 사찰 가운데서도 이들 사찰이 반드시 참배해야할 성지로 꼽히는 이유다.

삼보사찰 천리순례단 첫 일정은 승보사찰 송광사를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송광사는 고려 보조국사 지눌스님(1158~1201)이 정혜결사를 펼친 곳이다. 보조국사는 정혜사를 세우고 신앙 공동체인 결사라는 방식으로 불교계 개혁을 주장했다. 정혜결사는 부패하고 타락한 불교를 비판하며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예불 독경 참선 노동 등에 힘쓰자는 쇄신 운동이었다. 이 결사엔 승려 뿐 아니라 왕족과 귀족, 일반 신도도 동참했다. 위아래 없이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쇄신을 위해 함께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정혜사에서 수선사로 이름이 바뀌며 수선사 결사로도 일컬어지는 이 결사는 송광사가 고려 말까지 약 200여 년에 걸쳐 16국사를 배출하며 엄연한 승보사찰로 발돋움한 계기가 됐다.

삼보사찰 천리순례가 첫 일정을 송광사에서 시작하는 것도 이 같은 의미가 크다. 스러져가는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원력으로 시작한 상월선원 만행결사의 세 번째 프로젝트가 삼보사찰 천리순례기 때문이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해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에 이르기까지 승속 구분 없이 참가한 100여 명 대중의 발원에도 이 같은 의미가 담겨있다. 101일 순례에 앞서 송광사에서 열린 입재식에서 순례 참가 대중은 자기 수행과 대중 화합의 새로운 불교운동을 실천하겠다부처님께서 걸어가신 전법과 포교의 길이 우리 땅에 똑같이 살아 있음을 환희심으로 체험하겠다고 발원했다.

순례단은 입재식 후 고승대덕 16국사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국보 송광사 국사전, 보조국사 감로탑 등을 찾았다.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은 법어를 통해 우리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오늘 한국불교 중흥을 서원하는 상월선원 만행결사 천리순례의 첫 걸음 내딛게 돼 무한히 기쁨 마음으로 찬탄한다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줄 것이라고 격려했다.

입재를 알린 순례단의 발길은 구례로 이어진다. 이번 천리순례 최대 난코스로 꼽히는 구간으로 이들은 3일차인 102일부터 105일까지 호남 지역을 지난다. 남도 대표 사찰인 사성암과 화엄사, 천은사, 실상사 등을 거쳐 지리산 시암재와 성삼재, 오도재까지 험준한 고갯길을 넘는다. 고단한 여정만큼 볼거리가 풍부하다. 조계종 제19교구본사인 화엄사를 비롯해 사찰 속 국보와 보물은 물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천연 원시림까지, 1600년 한국불교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을 만끽할 수 있는 순례길이 될 예정이다.

7일차엔 경남으로 향한다.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꼽히는 오도재를 비롯해 지안재, 바래기재, 살피재 등 등 구불구불한 골짜기 길을 넘는다. 하루 평균 30km를 걷는 장거리 코스로 10일차엔 순례 중간 지점인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으로 법보종찰로 불리는 곳이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대몽항쟁기인 고종 23(1236)부터 38(1251)까지 16년에 걸쳐 만든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본래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나라의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 국난을 극복하고자 초조대장경을 만들었지만 몽골군에 의해 모두 불타 없어지고 후에 고종이 다시 만든 것이다. 국난 극복의 염원을 담아 새긴 팔만대장경은 목판으로 81258판에 달한다.

800여 년이 지났음에도 그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지정됐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간 문화재 보존 등의 이유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올해 코로나 극복을 염원하며 일반에 제한 공개를 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삼보사찰 천리순례단 또한 팔만대장경 내부를 직접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팔만대장경에 담긴 국난 극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로 지치고 힘든 국민을 위한 치유와 희망의 발원을 이어간다.

순례단 발길은 경북으로 향한다. 고령과 창녕을 거쳐 이르는 부곡이 순례 분기점이 될 예정이다. 14일차인 1014일 부곡에선 종단 안팎이 대거 참여하는 14일차 포교박람회가 개최된다. 조계종 포교원과 상월선원 천리순례단이 공동 주최하는 포교박람회는 한국불교의 미래, 포교의 길을 주제로 열린다. 종단 각 포교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님과 재가자를 비롯해 교계 5개 언론이 대거 참여한다.

순례 막바지 단계인 사자평 구간도 쉽지 않은 코스로 꼽힌다. 순례단은 16일차 홍제사를 시작으로 표충사까지 걷는다. 표충사를 출발해 통도사에 이르는 구간에는 해발 1000m에 달하는 고원지대 사자평이 기다린다. 사자평은 우리나라 최대 억새군락지로 꼽히지만 무엇보다 신라 화랑과 사명대사가 이끈 승병들이 훈련을 하던 곳으로 의미가 깊다. 순례단은 18일차에 이 고산 평원을 지나 배내고개를 넘는다.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19일차, 순례단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보종찰 통도사에 도착한다. 통도사는 불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금강계단이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머리뼈와 어금니 등 불사리 100과와 사리를 각각 통도사, 황룡사, 태화사에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진신사리를 봉안할 목적으로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조성해 승가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부처님의 법신을 상징하는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통도사 주법당인 대적광전에는 불상이 따로 없고 불단만 마련돼 있다. 순례단은 부처님의 법신이 모셔진 통도사 금강계단을 비롯해 대웅전 등을 참배한다.

삼보사찰 천리순례는 1018일 통도사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불법승 삼보 사찰을 비롯해 영호남을 아우르며 총 19일 간 423km를 오로지 맨 몸으로 걷는 만큼 고되고 힘든 여정이 예상되지만 100여 명이 적극 참가 신청을 냈다. 코로나 시국 속에서 정부 방역 수칙에 따라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했음에도 참가를 희망하는 이가 꾸준했다. 참가자 전원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완료했으며 95%2차 접종까지 마쳤다.
 

삼보사찰 순례 코스

101일 순천 송광사 입재식 출발
2일 구례 사성암
3일 구례 화엄사
4일 천은사, 시암재
5일 남원 성삼재
6일 남원 실상사, 경남 함양
7일 함양 지안재
8일 함양 바래기재, 살피재
9일 해인사
10일 합천 가야, 고령
11일 고령
12일 창녕
13일 부곡
14일 대중공사
15일 밀양
16일 밀양 표충사
17일 사자평, 울산 배내고개
18일 양산 통도사 회향

 

산 넘고 들판 지나...하루 평균 25~30km 걷기 수행

■ 삼보사찰 천리순례의 모든 것

순례단은 송광사에서 출발해 해인사를 거쳐 통도사까지 한반도 남쪽을 가로지른다. 산과 산을 넘고 들판과 들판으로 이어지는 평야를 지나 총 423km를 걷는다. 하루 평균 25~30km를 행선하는 1819일 간의 일정으로 삼보사찰을 비롯해 영호남 지역 10여 개 사찰을 지난다.

하루 일정은 오전3시 시작해 오후4시 마무리 한다. 오전340분 새벽예불과 몸풀기 후 순례단 점검을 마치고 나면 4시 첫 걸음을 뗀다. 3시간 행선 후 1시간의 공양 및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이를 하루 3번 반복한다. 걷기 일정이 마무리 되는 시간은 오후4시로 저녁 예불 후 개인정비 시간을 갖는다.

행선 시에는 핸드폰 사용이 금지되며 묵언이 원칙이다. 스님은 반드시 가사를 수하고 걸어야 한며 재가자는 순례 가사를 입는다.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참가자 모두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주최측에서 나눠준 108염주를 비롯해 경전 등 수행도구를 소지할 수 있다.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순례인 만큼 노상 숙박을 피할 수 없다. 순례 각 지점마다 마련된 야영지에서 개인 텐트 및 침낭 등에 의지해 밤을 보낸다.

이번 순례단은 총 94명으로 구성됐다. 비구 48, 비구니 6, 우바이 26, 우바새 14명이다. 상월선원 만행결사 회주 자승스님을 필두로 총도감 호산스님, 순례단장 원명스님, 박기련 지원단장 등이 주축이 돼 순례를 이끈다. 걷기 조는 총 8개조로 편성됐으며 각 조 조장은 1조 우봉스님 2조 설도스님 3조 법원스님 4조 설암스님 5조 지해스님 6조 이태경 7조 김선희 8조 정충래 등이다.

전체 순례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단도 별도로 운영된다. 차도 위를 걷는 코스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 만큼 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안전팀과 부상에 대비하기 위한 의료팀 등이 편성돼 있는 상황실, 장기간 공양 및 숙박 등을 책임질 운영실, 행정 및 홍보 등을 담당하는 지원실 등 3개실이 꾸려졌다.

무엇보다 이번 순례에서는 코로나 상황에 대비한 만전의 준비가 눈에 띈다. 코로나 방역팀이 새로 신설됐으며 방역팀이 마련한 별도의 수칙에 따라 걷기 일정 내내 하루 3번 상시 체온 측정과 이상 증상 체크가 이뤄질 예정이다. 감염 예방을 위해 앞 사람과의 1m 거리 간격을 유지를 원칙으로 하며 야영지를 비롯한 숙박 시설의 방역도 예정돼있다.

순례 참가를 희망했으나 참여가 어려웠던 이들을 위한 일일 참가의 길도 열려 있다.

송광사=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순례 참가자 조별 명단

1: 자승스님, 동명스님, 성우스님, 호산스님, 우봉스님, 도림스님, 심우스님, 선광스님, 오심스님, 현민스님, 덕조스님, 효림스님, 해관스님

2: 설도스님, 탄우스님, 원명스님, 환풍스님, 태성스님, 항명스님, 진오스님, 하원스님, 대우스님, 본오스님, 혜장스님, 대진스님

3: 법원스님, 향림스님, 제민스님, 선지스님, 현해스님, 허허스님, 법정스님, 보관스님, 정명스님, 지우스님, 함결스님

4: 설암스님, 탄학스님, 성화스님, 탄무스님, 탄하스님, 탄묵스님, 문종스님, 보월스님, 삼조스님, 능원스님, 혜일스님

5: 지해스님, 묘수스님, 정혜스님, 해인스님, 대현스님, 정오스님

6: 이태경, 성계순, 이채순, 홍차선, 강둘래, 곽영옥, 정대심, 안응연, 윤현서, 강덕순, 정정숙, 이세옥, 최승춘

7: 김선희, 양인숙, 김정숙, 김화자, 백금선, 이윤선, 남민옥, 황희상, 장윤정, 정유림 하정수, 박선민, 김나현

8: 정충래, 이재완, 김정도, 이환희, 김호준, 주윤식, 김형규, 윤재웅, 김용현, 이영규, 조남일, 안현민, 강용한, 윤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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