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 산외면의 새벽, 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을 이끄는 상월선원 만행결사 회주 자승스님 어깨 위로 비가 내린다. 새벽 행선 후 잠시 쉬어가는 시간조차 편치만은 않은 생활. 지붕 하나 가림막 하나 없는 진흙탕 길바닥 위, 시멘트 턱에 걸터앉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비에 젖어드는 회주 자승스님의 어깨가 가볍지 만은 않다. 순례단 150여 명의 시선이 회주 스님을 향해 있다.
종단사 최초로 총무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며 조계종단 정점을 찍은 자승스님이지만 이 길 위에선 ‘한 사람의 순례자’와 다를 바 없다. 불빛 하나 없이 적막한 어둠 속 오롯이 혼자다. 회주 스님을 따르는 순례단도 끊임 없는 번뇌와 망상 속 100여 시간 쌓여온 피로와 부상에 시달릴 터. 그럼에도 힘든 기색을 비추지 않고 또 다시 한 발 앞을 내딛는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16일차인 10월16일, 송광사 해인사를 거쳐 351km를 걸어온 순례단이 악조건 속 표충사에 이르렀다. 오전 내 이어진 가랑비와 살갗을 파고든 추위에도 한 발 한 발 내딛어 24km를 걸었다. 금천리와 단장리를 넘어 오는 내 인도와 차도, 농로 등 구별 없는 길을 지났다. 비가 오고 몸이 젖어도, 휘어지고 구부러진 길이 나타나도 온전히 길에 몸을 맡겼다.
5시간의 행선 끝 도착한 표충사는 경남 밀양 재약산에 위치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충훈이 깃들어 있는 호국 성지다. 본래 절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 죽림사라 지었지만 경내에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당 표충사와 표충서원을 옮겨오며 표충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절 안에 사당과 사원을 품고 있어 불교와 유교가 한 데 어우러진 형국으로 불교는 물론 유교까지 품고 가고자 했던 사명대사의 넓은 뜻이 담겼다.
사명대사는 수행자의 삶을 꿈꿨지만 국가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를 불렀다. 그럴 때마다 사명대사는 고뇌 속에서 기꺼이 그 큰 짐을 어깨에 올렸다. 순례의 끝자락, 국난 극복와 불교 중흥을 염원하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의 막바지 일정을 회향하기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빗 속 장시간 정진에도 순례단은 ‘표충사당’부터 찾았다. 사명대사 정신을 기리며 헌다 한 후 대광전으로 이동, 참배하고 불전했다. 불자로서의 기본, 이번 삼보사찰 천리순례단 발원 중 하나인 ‘삼보에 대한 예경’을 지키기 위함이다.
순례가 막바지 이르면서 통도사 본말사 대중도 일찍이 순례단을 맞았다. 표충사 입구에서부터 순례단을 환영하는 현수막과 축하 공연이 열렸으며 대광전 앞 회향식 때는 경내 마당이 가득 찰 정도로 환영 인파가 몰렸다.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과 전 주지 원산스님을 비롯해 통도사 본말사 스님들이 걸음했으며, 포교원장 범해스님과 포교원 실국장 스님은 이날 전 구간 걷기에 참여했다. 이영경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장, 민병덕 동국대 이사 등 재가 불자도 상당수 자리했다. 순례단원 중 한 명인 진오스님이 이끄는 구미 마하이주민지원센터 이주민들도 순례길 마다 응원을 나왔다.
불보종찰 통도사를 향해 걷는 막바지 순례, 걷는 내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치는 악조건 속에서도 순례단 얼굴엔 설핏 웃음이 돌았다. 새벽부터 비를 맞으며 걸었을 순례단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교 체육관을 빌려준 김웅 홍제중학교장, 추위에 떠는 순례단에 따뜻한 보이차를 대접한 옥연화 보살 등 표충사를 오는 내 경남 곳곳마다 만난 따뜻한 마음 때문일까.
순례단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옥연화 보살은 “큰 스님들이 권위를 내려놓고 재가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우리 곁 곳곳에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존경의 마음이 솟아 난다”며 “이 이상의 불교 중흥, 포교가 따로 없다”고 했다.













밀양=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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