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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이 순례3일차인 10월3일 섬진강 안개마을을 지나 화엄사로 향하고 있다.

맑은 날 새벽, 물안개가 나타나면 섬진강은 몽환(夢幻)이다. 한 치 앞도 구분하기 어려운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가사장삼을 수한 채 달빛 아래를 걷는 100여 명 순례단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한마디 말도 없이 묵언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 서로의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물안개가 핀 섬진강을 따라 화엄사로 향하는 길,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적막을 깨고 풀 비린내는 어느 때 보다 싱그럽다.

삼보사찰 천리순례 3일차. 108배 염주를 손에 쥐고 저마다 화두 삼매에 든 순례단이 곡성을 넘어 구례로 향했다. 3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진 익숙지 않은 강행군. ‘걷기라곤 하지만 사실상 앞은 속보 뒤는 구보나 마찬가지인 까닭에 호흡을 맞춰가며 걷는 순례단의 숨이 가쁘다.

천혜의 자연 속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다는 안개마을의 절경도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 때문이다.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지만 이내 비워진다. 끊임없이 마음을 닦는 일, 닦을 수(), 행할 행() 그야말로 걸어서 하는 수행이다.

중앙종회의원 향림스님은 순례길에 오르며 출가 할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린다고 했다. 향림스님은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 새롭게 나아가자는 다짐을 새로이 했다고통을 즐기는 법도 수행이고 고된 일정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도 수행이라고 했다.

비구니 그룹에 속한 대현스님은 스님 생활을 30년 하면서 그간 꿈꿔왔던 일을 드디어 이뤄낸 것 같다고 말했다. 스님은 다른 곳도 아닌 삼보 사찰을 내 발로 직접 걸어 순례하는 일이 꿈만 같다천리순례가 한국불교 대중을 하나로 묶는 원동력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했다.

이날 순례엔 일일 참가자로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국회 정각회장)도 참여했다. 이원욱 의원은 순례단과 함께 걸으며 국민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생각해 봤다국난 이라고 할 만큼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극심한 상태에서 코로나 극복을 비롯해 국민통합을 기원하며 걸었다고 동참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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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숙소에서 잠자리가 돼 준 텐트를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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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다리를 건너는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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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사찰 천리순례단이 어둠 속 불빛에 의지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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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섬진강을 지나는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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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시간 동안 아침 공양을 했다. 계란 2개와 바나나, 치즈, 유산균 음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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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이 구례에 들어서는 동안 날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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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에 들어서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단.

순례단은 이날 곡성에서 구례까지 25km를 걸었다. 일반 도로와 차도, 숲길과 산길을 올라 화엄사에 다다른 순례단을 화엄사 대중은 반갑게 맞았다. 화엄사 조실 명선스님은 일주문 밖까지 나와 순례단을 격려했다. 명선스님은 상아로 만든 108염주와 단주를 선물하며 한국불교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순례, 코로나19 국난 극복을 염원하는 순례가 원만 회향하길 기원한다이 기운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선근 공덕이 되길 불보살에게 발원한다고 밝혔다.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은 이번에 복원한 국보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을 비롯해 순례단이 경내 곳곳을 참배하며 기운을 북돋길 바란다순례를 회향하는 날까지 부처님의 근본 정신을 마음에 장엄하며 구도의 길을 걷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순례단은 이날 화엄사 경내지에 마련된 화엄원 마당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화엄사를 대표하는 각황전과 사사자 삼층석탑 등 국보 및 보물을 참배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다. 화엄사 이름의 근원이 된 <화엄경>의 가르침을 다시 새기고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되새기는 시간도 갖는다.

또 화엄사에서 열리는 화엄음악제를 통해 고된 여정을 잠시나마 달래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한편 순례단은 104일 화엄사를 출발해 천은사를 거쳐 지리산 시암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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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선원 결사 회주 자승스님이 선두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오른쪽으로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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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조실이자 조계종 전 명예 원로의원 명선스님이 회주 자승스님에게 염주를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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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참가자로 이원욱 의원(사진 가운데 오른쪽)과 주호영 의원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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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지나는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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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경내 화엄원 마당. 순례단 텐트가 가득 찼다.

구례=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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