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천리순례 7일차를 맞은 10월7일. 천리순례단이 지안재를 넘어 함양 시내로 접어들자 이른 새벽부터 순례단에게 흔쾌히 앞마당과 화장실을 내준 정이숙 사장이 되레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처처가 고생길이지만 가장 큰 고역은 역시나 화장실. 불교계 언론 보도를 보고 천리순례단이 함양 지역을 지난다는 걸 알게 된 정 사장은 자주 다니는 사찰 주지 스님에게 부탁해 순례 일정을 미리 확인,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정 사장은 “한번쯤은 우리 주유소 근처를 지날 것 같아 어제 함양 보림사 스님에게 부탁해 숙소를 알아뒀다”며 “산 중턱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줄 알았으면 화장실이 아닌 우리 주유소 마당을 통째로 내어 줬을 것”이라고 했다.
정 사장이 신심깊은 불자라는 것을 전해들은 상월선원 결사 회주 자승스님은 이날 정이숙 사장에게 직접 염주를 선물하곤 다시금 발길을 재촉했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도 순례단을 위해 주유소 앞마당과 화장실을 개방한 정 사장은 순례단이 떠나는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정성스레 합장 인사를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쉬움을 표현하던 정 사장은 “따뜻한 차 한잔도 대접 못하고 보내드려 죄송한 마음 뿐”이라며 “그래도 이렇게 가까이서 큰스님들이 걷는 걸 보니 우리 한국 불교가 산에만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고 불자로서는 더없이 기쁘다”고 했다.
이날은 이번 순례 일정 중 최장거리인 30km가 예정돼 있는 상황. 푹푹 찌는 날씨에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걷는 순례단 발걸음이 가볍지 만은 않았다. 장시간 걷기엔 이제 좀 적응이 됐지만 하루에도 수십번 바뀌는 온도차와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걷는 일이 녹록치 만은 않았던 까닭이다.
새벽3시 일어나 장장 7시간을 걸어온 순례단이 허기로 지칠 때 쯤 포교원과 사단법인 다나의 밥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밤 서울을 출발해 밤새 인근 재래시장에서 장을 본 후 공양 시간에 맞춰 따뜻한 밥과 채계장을 준비한 것. 조계종 포교원장 범해스님도 포교원 직원들과 함께 먼 걸음을 했으며 방창덕 조계종 포교사단장도 포교사단과 함께 응원을 나왔다.
방창덕 포교사단장은 “한국불교계를 이끄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원만 회향을 기원하겠다”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사부대중의 응원과 격려 속 천리순례단은 이번 일정 가운데 최장거리인 30km를 무사히 완보했다. 인근 캠핑장에서 하루를 지낸 순례단은 다음날인 10월8일 바래기재와 살피재 등을 걸어 거창으로 향한다.
“마음속으로 삼보에 대한 예경 올립니다”
■ 인터뷰 / 베트남 출신의 김나현 참가자
천리순례 참가자 가운데 유독 왜소하고 말없는 이가 눈에 띈다. 송광사 신도 김나현 씨다. 김나현 씨 본래 이름은 쭈응 티 펑리. 17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 왔다. 베트남 불자 모임에 나갔다가 지난해 우연히 송광사 법회에 참석하면서 열혈 신도가 됐고 매주 1~3회 자택이 있는 전주에서 순천 송광사까지 약 1시간을 달려 기도를 올리고 봉사를 하고 있다.
베트남에 있을 때부터 불교에 심취해있었다는 김나현 씨는 이번 순례에 참가하기 위해 남편과 두 딸에게도 사전 동의를 구했다. 김나현 씨 간절한 모습에 가족 모두 순례를 응원했다고. 김나현 씨는 “방송에 나온 순례단을 보고 마음 속 깊이 감동을 받았다”며 “올해는 특히 송광사에서 출발해 해인사 통도사를 두 발로 걸어서 참배한다는 것을 보고 꼭 참가하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3일은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장시간 걷기 경험이 없는데다 개별 참가 신청으로 정보가 없어 다른 이들 보다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파스나 신발 등 사전 준비도 부족했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점차 줄어들고 같은 조에 있는 참가자들이 김나현 씨를 특별히 챙기면서 걱정은 많이 줄었다. 초반 걱정에 비해 순례 중반에 접어든 지금, 김나현 씨는 매일 삼보에 귀의하고 예경하는 마음으로 걷는다고 했다. 김 씨는 “사찰에 갈 때마다 삼보전에 공양 올리는 마음”이라며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함께 걷고 있는 참가자 모두 건강히 순례를 마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양=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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