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16년차…보호자와 환자 돼보니 다른 마음”
“간호사 16년차…보호자와 환자 돼보니 다른 마음”
  • 임성희
  • 승인 2020.05.06 10:01
  • 호수 3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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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참가상 수상작] 임성희 ‘환자와 보호자가 되어보니’


할 일만 급급하진 않았는지
묻고 싶은 것만 묻고
정작 환자의 불편함을
들어주지 못하진 않았는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2004년 동국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경주병원에서 4년 근무 이후, 2008년부터 지금까지 동국대학교일산병원에서 근무중인, 올해로 16년 차 간호사다. 신규 간호사 시절이나 어린 연차 때에는 제게 맡겨진 일만이라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중간 연차 때에는 선배 간호사들의 가르침을 받아 후배 간호사들을 잘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참 간호사가 됐을 때는 좀 더 환자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간호사로서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환자 치료에 대한 전문성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까지도 살필 줄 아는 간호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간호사로서 나름대로 매 순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다. 

2014년 2월, 경주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며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가 아침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너무 아파 병원을 가서 X-ray 검사를 했는데 요로 결석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시 경주 동국대병원으로 갔더니 수술해야 한다고 해 입원하셨다고 했다. 순간 ‘또 잊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도 똑같은 후회를 했는데 말이다. 
 

동국대경주병원과 일산병원에서 16년째 간호사로 근무 중인 임성희 씨. 어머니의 수술로 보호자가 되었을 때, 자신이 환자가 되어 입원했을 때 지난 16년의 생활을 반추했다. 환자와 보호자를 좀더 배려하고 따뜻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동국대경주병원과 일산병원에서 16년째 간호사로 근무 중인 임성희 씨. 어머니의 수술로 보호자가 되었을 때, 자신이 환자가 되어 입원했을 때 지난 16년의 생활을 반추했다. 환자와 보호자를 좀더 배려하고 따뜻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가끔 집에 가면 어머니가 항상 화장실을 자주 가시는 것 같았다. 여쭤봤더니 빈뇨 증상과 잔뇨감 등의 불편감이 6개월 이상 지속되었다고 하셔서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어머니는 병원을 자주 가시는 아버지와는 달리 무조건 안 가려고 하셨다. 억지로 어머니를 모시고 경주 동국대병원 비뇨의학과를 가서 진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소변 검사에서 염증 소견이 보여 경구용 항생제를 복용했는데도 호전되지 않아 IVP(신우정맥내 조영술) 검사를 했는데, 한쪽 신장에 사슴뿔 모양의 결석인 녹각석이 발견되었다. 

신규 간호사 때부터 비뇨의학과 병동에 근무했던 나로서는 그 녹각석이 단 시간 내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수 년 간에 걸쳐 생긴 것을 알기에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부끄러웠다. 아마도 어머니가 느끼신 LUTS(하부요로계 증상)은 수년 간 지속됐을 것이다.

그것을 간호사인 내가 몰랐다는 게, 그동안 한 번도 병원 검진을 해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했다. 더 한심스러웠던 것은 녹각석이 그 정도로 커질 동안 그리고 그렇게 불편해하시는 동안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한심한 자식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수술 후 “성희야, 내 평생에 이렇게 아파 보긴 처음이다”라고 했다. 너무나도 죄송했다. URSL(요관경 하 쇄석술) 시행 후 어머니 간호를 하면서 간호사가 아닌 환자의 보호자 입장으로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엄마, 수술 잘 하고 온나!”하고 어머니를 실은 카트를 수술실 안으로 밀면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어머니의 불안한 눈빛을 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서 어머니가 수술 마치고 나오시기만을 기다리는데, 예상 시간보다 늦어지니 그렇게 불안할 수 없었다.

수술 전에 의사가 설명했던 문제 상황들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 그 30분이란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그제서야 비로소 수술 환자 보호자들이 왜 환자가 수술 들어가는 시간을 확실히 알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수술이 끝나는 시간을 왜 그렇게 궁금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큰 수술에 비해, 어쩌면 간단한 수술임에도 수술 전 동의서 작성 때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주치의 선생님이 보호자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직후 병실로 서영진 교수님이 직접 회진 오셔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 결과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보호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안심이 되었다. 수술 끝나고 회진 안 오냐며 보호자들이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도 그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처치할 때마다 간호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어떤 것보다 고마웠다. 

수술 후 환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통증이다. 그래서 간호사인 나는 수술 환자들이 아프다고 하면 처방에 따라, 또는 의사에게 알려서라도 최대한 통증을 조절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환자에게 좀 더 친절히, 공감하며 응대해주지는 못했었다, “많이 아프시죠? 조금이라도 덜 아프시게, 최대한 진통제 주사 빨리 드릴께요”라며 후배 간호사가 친절하게 어머니를 응대하는 것을 보니 부끄러웠다. 

그렇게 환자의 보호자로 있으면서 ‘나는 그동안 어떤 간호사였을까?’하며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때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보거나 수술 후에 의사가 안 와 본다고 불평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을 보면 유별나다는 표현도 했었고, 내가 하는 간호 처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때 딱딱하게 반응하는 환자와 보호자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말투에 짜증을 담아 퉁명스럽고 너무 빠르게 설명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됐다.

2017년 3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동국대일산병원에서 신경외과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MRI 검사를 하고 진통제를 먹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1박2일 동안 입원했다가 퇴원했는데, 그때 난생 처음 환자가 되어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담당간호사가 정맥주사를 놓는데, 혈관이 잘 안 보이는지 첫 번째는 실패하고 두 번째에 성공했다. 정맥주사 바늘 한 번 찌르는 게 그렇게 아픈지 몰랐다. 그리고 왜 환자들이 손등을 피해달라고 하는지도 직접 환자가 돼 보니 알 듯했다. 세수할 때, 손등의 정맥주사가 그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었다. 자기 전에 먹은 진통제가 부작용이 없는지 걱정도 됐다. 진통제를 복용하고 1~2시간 후 식은땀이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것처럼 환자들은 대부분 걱정거리를 간호사들에게 얘기하는데, 내가 환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밤에 자려고 할 때와 아침에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담당 간호사가 병실 순회를 하는데, 어떤 연차 높은 간호사는 다인실 내에 곤히 자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배려해 조심조심하면서 조용하게 해당 환자 처치를 했고, 어떤 신규 간호사는 본인이 물어봐야 할 것은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으나 환자가 불편해 하는 것은 잘 들어주고 나갔다. 

조용한 병실에서 우리 간호사들이 환자들에게 질문하고 처치하고 답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간호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일에만 급급해 환자의 수면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환자의 불편함을 물어보고 거기에 따른 처치를 제대로 했는지, 묻고 싶은 것만 묻고 정작 환자의 불편함을 들어주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이기만 했던 내가, 직접 환자가 돼 보고 또 환자의 보호자가 돼 보니 그 경험 평가의 중요성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어쩌면 지금도 바쁠 때는 내가 해야 할 일에만 급급해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따뜻한 간호사가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불교신문3580호/2020년5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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