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가 힘내야 아가도 힘낸다는 친정엄마 말씀에…”
“어미가 힘내야 아가도 힘낸다는 친정엄마 말씀에…”
  • 방글
  • 승인 2020.04.22 09:16
  • 호수 35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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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감동상 수상작] ​​​​​​​방글 ‘나는 엄마다’


뱃속의 쌍둥이 갑작스런 조산
호흡기 단 모습에 저절로 눈물
5개월 뒤 소아중환자실 벗어나
잘 견딘 아이들에 ‘감사의 기도’

얼마나 서 있었을까! 지금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아중환자실 벽에 기대서서 두 아이의 거친 숨소리를 느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순간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에서 꺼내는 것이 두렵다.

두 아이의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몸에, 입에 튜브가 꽂혀 있는 모습은 나를 그대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의존해 버티고 있는 쌍둥이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쌍둥이를 조산한 방글 씨는 소아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여전히 재활치료 중이지만 5개월 만에 중환자실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쌍둥이를 조산한 방글 씨는 소아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여전히 재활치료 중이지만 5개월 만에 중환자실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은 2019년 2월이다. 임신 후 줄곧 다니던 집 인근 병원에서 갑자기 조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동국대일산병원을 찾았다. 동국대병원이 쌍둥이 분만을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동국대병원에서 분만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터였지만 너무나도 급작스레 조기분만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부터 덜컥 났다. 쌍둥이들은 보통 37주에 태어나야 정상인데, 그보다 11주나 빠른 26주 만에 출산하게 됐으니 조기분만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현실로 다가왔다. 동국대병원으로 온 그날 오후에 조산을 했다. 지안(남)이는 870g, 채연(여)이는 710g이었다. 흔히 말하는 칠삭둥이였다. 일반적인 신생아 몸무게가 3Kg을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할 때 너무도 가냘프게 태어난 것이다. 아무리 미숙아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작고 약한 모습을 보자니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두 아이 모두 ‘기관지폐 이형성증’으로 소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관지폐 이형성증’은 소아청소년 질환으로 대부분 미숙아에게서 발생하는데, 출생 직후 호흡곤란 증후군으로 인해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다. 사망률이 10~25%에 이를 정도로 위험하고,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혹시나 아이들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내 심장은 녹아내렸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더 조심했더라면…’ 하는 자책감도 수없이 들었다.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들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그리고 생후 2주가 됐을 때에는 약물치료로는 되지 않아 결국 두 아이 모두 동맥관 수술(의사들은 동맥관 개존증 수술이라고 했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정한 호흡을 더 이상 약물로만 다스릴 수는 없는 상태라고 했다.

‘내가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한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세 쌍둥이였는데 셋 모두 출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의료진의 얘기를 듣고 결국 한 아이를 유산시켰다. 세쌍둥이의 신생아 사망 위험이 단태아에 비해 37배나 높다는 통계를 접하고는 그대로 세 쌍둥이를 출산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임신한 지 10주 이내에 결정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친정엄마는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큰딸 서연(여, 6세)이와 둘째 수안(남, 3세)이를 돌보시며 하루하루를 당신 딸을 위해 묵묵히 견디셨다. 문득문득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시면서 “어미가 힘을 내야 애들이 힘을 낸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마였지만, 그런 친정엄마가 서연이와 수안이를 안은 채 몰래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은 지금도 내 가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게 한다.

지안이와 채연이의 중환자실 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면서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불안감도 커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들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엄습해왔다. 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력감, 죄책감, 작아져가는 희망…. 내 기억 모두를 지우고 싶었다. 이렇게 힘들고 아픈 현실을 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살려내야만 하는 내 아이들의 얼굴은 내게 마음을 다잡는 힘을 주었다. 나는 엄마였다. 

그렇게 절망적일 때 희소식이 들렸다. 채연이의 상태가 많이 호전돼 중환자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했다. 불교신도는 아니지만 부처님도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소아중환자실 앞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발 디딘 곳 어디에서든 간절하게 기도했다. ‘지안이, 채연이를 제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라고.

다시 힘이 났다. 채연이가 좋아졌으니 지안이도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생각보다 더뎠지만 지안이도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나면서 지안이도 중환자실에서 벗어났다. 마침내 두 아이 모두 소아중환자실에서 내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감사한 일은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지안이는 채연이보다 두 달이나 더 중환자실 생활을 했고, 지금도 채연이 보다는 다소 호흡이 거칠다. 그런 지안이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직 숨소리가 거칠고 발육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병원에 와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중환자실에 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아이들이 너무도 대견하고 고맙기만 하다.

이렇게 힘들고 절망스러웠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신 분은 친정엄마다. 친정엄마의 헌신과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진짜 엄마’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배운 것이 또 하나 있다. 아이들은 강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한 힘든 투병생활을 씩씩하게 잘 견뎌냈다. 엄마인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로부터 배웠다. 지안이는 앞으로도 계속해 심장과 폐 기능을 추적 검사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지만 잘 견뎌내리라 믿는다. 나도 지안이와 함께 힘을 낼 것이다.

내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오랜 투병생활을 잘 견뎌낸 지안이와 채연이가 더 건강해지고, 우리집 큰 딸 서연이와 큰 아들 수안이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에겐 너무나도 따뜻한 엄마가 있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엄마다.’

[불교신문3576호/2020년4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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