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간병 수기 공모전
[사랑상(3등상) 수상작] 전민흠 씨 ‘내 인생 최고의 전율’


‘870g’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
고위험산모실에 입원한 아내
동국대병원 덕에 모두 건강
‘사랑·감사·현재를 즐기자…’
‘전율’이 가져다준 새 인생

안녕하세요! 저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이른둥이 전율 아빠입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율이가 (작년) 12월18일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면회를 갈 때마다 너무나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시고 율이에게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을 때 마다 가족 일처럼 때론 너무 속상해하며, 때론 너무 기뻐하며 말씀을 해주실 때 저와 제 아내는 진심으로 따뜻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평생을 간직할 좋은 기억을 남겨 주셨고 제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셨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 주치의 선생님들, 교수님, 직원 선생님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기공모전 3등상을 수상한 전민흠 씨는 미숙아로 태어난 자녀 ‘율이’를 정성으로 돌봐준 동국대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사진제공=동국대 의료원
수기공모전 3등상을 수상한 전민흠 씨는 미숙아로 태어난 자녀 ‘율이’를 정성으로 돌봐준 동국대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사진제공=동국대 의료원

37년을 살면서 책으로는 봤지만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인생의 선배들께 들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던 것들을 며칠 만에 가슴 깊숙이 새기게 되었고 배웠습니다. 

첫 번째, 사랑을 표현하자 
두 번째, 감사하는 마음
세 번째, 현재를 즐기자 

이 3가지 배움은 앞으로도 평생 저와 함께 할 것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인 율이가 태어나 퇴원할 때까지의 4개월 동안 제가 배운 세 가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율이는 8월16일 25주에 870g으로 저희의 품으로 왔습니다. 처음 율이를 가졌을 당시 저희는 일산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집 앞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을 때 임신을 했다는 기쁜 소식과 더불어 건강한 임신이 아니라는 소식을 같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지독한 입덧에 시달리며 출산 휴가도 한 달을 미리 앞당겨 사용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희는 맞벌이로 일산에서 경기도 광명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아내도 임신을 했지만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일산에서 광명까지 출·퇴근하기도 쉽지가 않아서 저희는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하고 일주일이 지나 8월3일 아내가 몸이 이상한 것 같다고 해서 오전에 이사한 서울 시흥동 근처 산부인과에 갔는데 병원에서 양수가 터졌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회사를 조퇴하고 나와서 서둘러 아내를 데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갔는데 주말이라 의사 선생님도 안계시고 병원에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입원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냥 그 병원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서둘러 일산에 거주 할 때 다니던 산부인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원도 입원은 되지 않는다며 대학병원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오전부터 양수가 터진 아내를 데리고 몇 시간을 운전해서 다니던 중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동국대일산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이미 오후 4시가 되면서 입원을 못하게 되면 이제 저녁이 될 텐데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응급실로 가서 접수를 하고 안내를 받은 뒤 고위험산모실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입원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고위험산모실이 어떤 곳인지, 양수가 터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저희는 율이를 맞을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배움, 사랑을 표현하자

저는 회사 생활도 하고 있었고, 회사에서 병원까지 거리도 멀고 차량도 막히는 구간이라 면회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양수가 터졌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 거동도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면회도 정해진 시간에만 해야 하고 산모의 안정을 위해 면회 인원도 제약을 받는 등 갑자기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저도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하루아침에 입원을 해서 누워만 있어야 하는 아내는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정말 하루아침에 제 옆에서 함께 했던 아내가 고위험산모실에 입원을 해서 떨어져 있고 아기가 빨리 나오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떨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기운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면회를 갈 때마다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애 때부터 결혼했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표현은 서툴렀지만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우리에게 찾아온 변화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가 아침인줄 알고 눈을 떴는데 만약 그게 깊은 밤이라면 저는 다시는 아침을 맞이하지 못했을 겁니다. 

두 번째 배움, 감사하는 마음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흘렀고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아내로부터 울먹이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빠, 빨리 병원에 와줘” 그 한마디에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8월16일 율이가 25주 만에 저희 품으로 온 날입니다. 

율이는 870g으로 태어났고 신생아 중환자실로 입원을 했습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작은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자책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왕복 3시간을 면회를 다닙니다. 면회를 다니는 거리와 시간은 저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른둥이 부모님들이 아시는 것처럼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저희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문득 아기 생각에 하염없이 울곤 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유를 처음 먹었을 때 2cc, 조금 더 먹어서 5cc가 되었을 때 870g에서 20g 늘었을 때, 30g 늘었을 때 그 작은 숫자는 우리에겐 감사한 숫자였습니다. 

면회를 하던 어느 날 짧게만 느껴지는 힘든 면회를 마치고 나왔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잠깐의 면담을 해주셨습니다.

이른둥이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말씀 중에 “아기에게 사랑한다고 큰 목소리로 말씀해주세요. 우리 아기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고 큰답니다. 우리 아기는 생각보다 강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기운내세요”라는 그 말이 저희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당연하게 내쉬는 것으로만 알았던 호흡들이 작은 우리 천사들에게는 너무나 큰 생명줄이고 숨을 잘 내쉬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에 감사하기 시작 했습니다. 

세 번째 배움, 현재에 충실하자 

저는 돌잔치 전문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돌잔치 사회도 종종 보곤 했는데 병원에 호흡기를 단 채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율이를 보고 일을 하려니 쉽지가 않았습니다. 프로답지 못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심으로 일하지 못한다면 그만 두는 게 나을 것 같았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내도 챙기고 율이를 매일 보면서 율이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줄 수 있도록 노력 하는 게 지금 저에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를 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생겨서 유튜브에 율이의 영상을 업로드하기 시작했습니다. 율이에게 이런 저런 이벤트가 있을 때 인터넷 검색을 하면 좋은 이야기들도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들도 많아서 저희는 검색보다는 궁금한 부분을 메모해서 주치의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영상 속에서 율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우리 율이가 퇴원을 하게 됩니다. 올린 영상들에서 퇴원을 축하해주시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율이가 퇴원을 하게 된 것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율이가 퇴원을 해도 될 정도로 건강해진 것입니다. 율이에게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율이를 정성껏 돌봐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퇴원을 해도 여러 검사차 병원을 계속 방문해야 하지만 먼 길을 믿음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배운 것들을 앞으로도 쭉 가슴속에 담고 생각하며 살아 갈 것입니다. 율이가 태어난 후 제 삶의 변화가 긍정적일 수 있었던 것은 동국대일산병원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생각 합니다. 율이의 생명을 소중히 지켜 주셨고, 율이 아빠의 삶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훗날 우리 율이가 커서 지금의 이야기를 웃으며 대화 할 수 있을 날이 올 겁니다. 그때 저와 아내, 율이는 동국대 병원에서 느꼈던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불교신문3564호/2020년3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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