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간병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 박완순 씨 ‘치유를 향한 긴 터널’ (下)


“스님과의 만남이 내게는 축복”
‘사무량심 명상’으로 머리 맑혀
육신에 대한 집착 떨쳐내

암환자 ‘언니’와의 짧은 추억
지금 현재의 삶에 감사하게 돼
‘가족밥상 차려주기’ 이뤘으면

동국대학교병원은 환우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병고를 극복하기 위한 환자들의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투병·간병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사진제공=동국대 의료원
동국대학교병원은 환우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병고를 극복하기 위한 환자들의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투병·간병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동국대의료원

그런데 6월 중순경에 오신 스님은 이제 방학 때여서 당분간 못 오신다고 하셨다. 아마도 9월쯤에나 오실 수 있다고 하셨다. 스님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퇴원하지 못하고 3개월 후까지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싫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병원에 계속 있게 되어 9월에 스님을 다시 만났다.

그렇게 스님과 만나고보니 내가 이렇게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호흡기를 떼는 것이 첫 번째이고, 호흡기를 떼지 못한 채 다른 것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숨쉬기 운동도 신경 써서 하고, 스님이 알려주신 사무량심 명상도 잘은 모르지만 계속 시도했다. 그러다보니 나쁜 생각도 조금씩 줄어들고, 머리도 맑아지기 시작했다.

스님이 알려주신 말씀 중에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해칠 수 없다네. 그러나 마음은 몸에 집착하기 때문에 몸이 고통 받으면 마음도 고통을 받는다네(입보살행론 6:52)”라는 경전 가르침이 있다. 마음이 몸에 집착한다는 표현은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신체와 심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명상으로써 내 마음을 정화시키면 몸은 자연적으로 따라온다는 말일 듯하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어서 항상 생각하며 지내려고 하고 있다.

스님과 처음 만났을 즈음에 병원에서 한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내 옆자리에 하루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다음 주에 또 입원해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언니는 직장암이라고 했다. 집은 김포인데 혼자서 운전해가며 월요일마다 입원해서 항암주사를 맞으러 온다고 했다.

이미 여러 병원들을 다녀보고 난 후 이 병원이 괜찮은 것 같아서 옮겼다고 했다. 보기에는 암환자처럼 보였지만, 스스로 운전하고, 집안 살림도 하고, 애들도 돌본다고 했다. 다만, 설사가 항상 있고 소화기관도 망가져 먹어도 살이 빠진다고 했다. 언니도 나처럼 말랐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언니 마음은 책상 끝에 걸쳐져 있는 유리잔처럼 위태로웠다. 치료에 대한 지침,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아이들에게 더 있어주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톡으로나마 나는 언니에게 기운 잃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이도 비슷하고, 둘 다 막내이고, 아이들도 아들 딸 한명씩 있고, 무엇보다 서로 아프다 보니 상호 공감대가 많아 얘기도 잘 통했다. 언니 핸드폰의 나는 병원친구로 저장되었다.

스님이 알려주신 기도문을 알려주고 싶었다.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언니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럴 수 없었다. 매주 일요일은 가족과 예배를 드리러 다닌다고 했다. 언니는 내손을 꼭 잡더니 나를 위해 같이 기도를 해주었다. 10분정도 긴 기도를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언니는 매주 월요일 입원 때마다 나를 찾아와서 주님께 기도를 드려주었다.

언니도 힘든 상황에서 나를 위해 해주는 기도는 내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그런 언니를 보고 차마 스님도 기도를 해주신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쩌다보니 월요일 낮에는 부처님께 기도를, 저녁에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두 분께는 조금은 죄송했다.

언니가 설사가 심하고,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먹는 뉴케어를 추천해 주었다. 영양도 많고, 먹기도 좋아서 많이 도움이 될 듯했다. 그렇게 언니도 병을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월요일 병원에 올 때는 한 가지씩 선물도 주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좋은 생각이라는 책도 주고, 길가에 예쁘게 피었다는 들꽃 등을 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무엇이든 하고 싶어졌다. 자그마한 나의 침대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수세미 뜨기를 생각했다. 집에 있을 때 뜨다가 몸이 아프면서 그만두었는데, 뜨개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뜨개질은 내가 잘하는 것이기도 하고, 집중하다 보면 마음도 편안하고 안정감을 갖는다. 그동안 너무나 고마웠던 간호사님이나 조무사님들께도 드리고, 집에도 보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수세미실을 주문하고 받아보니 알록달록한 실들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유튜브로 도안도 찾아보고 뜨는 방법도 배우다보니, 굼벵이 같던 시간도 빨리 갔다. 내 손에서 꽃도 피고, 와플도 만들어지고, 이것저것 갖가지 모양이 나올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뜨는 동안 콧수를 세어가면서 떠야 할 때는 집중하게 되고 그냥 민무늬를 계속 떠야할 때는 스님이 알려주신 기도문을 암송하거나, 아예 정신을 비운 상태로 했다. 비록 마스크를 하고 뜨개질 하는 나의 모양새는 우스웠지만, 뜨는 동안에는 나도 일반인(?)이 된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조무사님께 서너 개 정도 드렸는데 탕비실에 놓고 쓰니 부드럽고 설거지가 잘된다고 하시고, 보는 사람마다 너무 예쁘다고 하시며 인터넷에 팔아도 되겠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내가 정말 퇴원해서 나가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생겨났다.

처음에는 수세미만 떴는데, 여러 자료를 찾다보니 다른 것도 떠보고 싶었다. 기초인 수세미를 많이 떠봐서인지, 인터넷 강의도 쉽게 이해되었고, 방석, 머플러, 모자, 가방도 만들어 보았다. 선물 받는 분들의 얼굴을 보니 비록 몸은 아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게 내심 기뻤고, 앞으로 큰 작품(?)에도 도전하고픈 맘이 가득 생겼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가래는 며칠에 한 번씩 계속 있었지만 명상이나 뜨개질을 하다 보니 운동하는 시간도 더 많아져도 컨디션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입원초기 자주 나타나던 폐렴도 없어지고 해서 거의 1년 만에 퇴원을 했다. 집에서는 간병할 사람이 없어 근처 요양병원으로 갔다. 하루가 일주일 같은 지루한 생활이었지만 명상과 뜨개는 병원생활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특히 내가 깨달은 것은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나의 자리라는 것이다.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어떻게든 빨리 나가야할 자리라고만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늦었더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스님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지금도 스님과 간간히 소통을 하고 있고, 매일 아침 카톡으로 좋은 말씀과 사진을 보내주신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스님은 대학 강의도 하시고 라디오에 출연하시고, 책도 쓰시는 유명하신 분이었다. 유튜브에 천수경, 반야심경에 대한 강의 동영상도 있어서 가끔 보곤 한다. 정말 많이 힘든 시기에 나를 찾아와주신 스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었던 언니는 몇 달 뒤에 아픔이 없는 하늘나라로 갔다. 끝까지 아이들 걱정과 나를 생각해 준 언니에게도 정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아직은 호흡기를 떼지 못하고 있고, 걷는 것도 서툴러서 많은 부분 가족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의 가장 숙원사업인 가족밥상 차려주기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우리 가족의 건강도 여기에 다시 한 번 빌어본다.

[불교신문3560호/2020년2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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