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감동상 수상작] ​​​​​​​최명희 ‘암 4기입니다’


열심히 살아 온 삶에 닥친
암4기 진단…혹독함의 연속
불교서 찾은 답 ‘원인은 나’
죽음도 평범한 일상의 부분

프롤로그 Prologue

4월은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어트(Tomas Sterns Eliot)’는 ‘황무지(The Waste Land)(1948)’ 에서 이렇게 노래했고, 내게 2019년 4월은 그러했다. 세상 모두가 새로운 시작에 들떠 있을 때 잔인하게도 저물어가는, 게다가 전이까지 예견되는 암4기 선고를 받았다. 

만 50세. 젊다면 젊은 나이에 받은 선고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함’이었다. ‘왜 내게’, ‘왜 나만’이란 억울함 대신 당연한 일상사 중 하나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의외의 대범함에 나 자신도 놀랐고 주변 모두가 믿기지 않아 했다. 1년 전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기 전의 나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평생 동안 밖에서 찾아 헤매던 원인을 뒤늦게 알게 한 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준비시킨 거였구나’. 
 

암4기 진단을 받은 최명희 씨는 불교공부를 통해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었다. 죽음 역시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임을 알아차리자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사진제공=동국대의료원
암4기 진단을 받은 최명희 씨는 불교공부를 통해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었다. 죽음 역시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임을 알아차리자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사진제공=동국대의료원

누구에게도 자부할 만큼 열심히 살았다. 1남4녀의 맏이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살아남는데 최선을 다하며 치열하게 나 자신을 몰아쳤다. 그러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기업 컨설팅에 종사하면서 프로페셔널에 엘리트를 자부했지만 언제나 의문은 있었다.

‘끝내는 이기는 게임을 하는데 왜 항상 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가장 영광스럽고 바라는 대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만큼의 공허함이 밀려왔다. 깊이를 모르는 나락으로 내려앉는듯한 허무함. 그 원인을 언제나 밖에서 찾았고, 난 언제나 옳았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런 나의 앞길을 막는 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었다. 

혹독함의 연속이었고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깨달음. ‘모든 원인은 나였구나’.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태어나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를 지탱해오던 가치관, 옳다고 믿었던 나는 죽었다. 그 혼란 속 진짜 ‘내’가 나에게 하는 말, 원인도 결과도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간 살아온 인생을 처음으로 돌아보게 됐고 눈물과 참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행동했다. 일로 개인적으로 만나오던 사람들을 찾아가 직접 사죄했고, 뒤늦게 알게 된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그것만이 내가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었으므로. 

이어지는 감사의 벅참이 봉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공양간 봉사를 시작으로 뒤늦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법과 감사의 의미를 알게 해 준데 대한 뜻을 새기며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반복했다.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이신 자우스님과의 인연도 그렇게 이어졌다. 공부하고 싶어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복지 향상을 원력으로, 불교 미디어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고, 곧장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서 선원에서 운영 중인 ‘갤러리까페 까루나’에서 일요봉사를 자원했다. 

조계종 조계사 100기 기본교육을 받고 재적신도로서 ‘성수행(性修行)-내 안의 불성을 깨닫고 닦아 행하라는 뜻’ 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동시에 예전부터 관심 있던 ‘참선’, 특히 ‘간화선’ 기본 교육을 조계사 선림원 남전스님의 지도로 익히게 되면서 화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건 정말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 

불교의 진리를 뒤늦게나마 알게 하고 입문하게 해 준 세상에 깊이 감사하며, 그 마음을 되돌려주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 단 한 사람이라도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여기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진실함으로 이 글을 쓴다.

긍정적 마인드와 집중 5.5주

암 확진 후 본격적인 항암을 위한 두 번째 입원은 동국대학교일산병원으로 했다. 5월16일부터 6월16일까지 동국대일산병원 혈액종양내과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진행했다. 이 또한 입원 전 비로자나국제선원 자우스님과 입원 후 동국대학교일산병원 법사 스님의 도움이 컸다.

소속 병실은 혈액종양학과 김도연 교수님을 주치의로 해서 방사능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동국대학교일산병원의 경우 특히 최신 방사능 기계와 윤형근 교수님을 비롯한 의료진를 갖춤으로써 국내에서도 인정할 만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입원 후 첫 주말인 5월18일 마치 처음 담으로 여겨 한방파스로 넘어갈 때처럼,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 통증이 느껴졌는데 폐에 다시 물이 차는 게 보인다는 소견을 보였고, 5월20일 뇌MRI & X-RAY 촬영 때까지도 옆구리 통증은 계속됐다. 한편 포기했던 방사능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5월20일 방사능종양학과에 협진을 요청했고, 5월21일 방사능종양학과 담당 윤형근 교수님과 사전면담을 진행했다. 

5월22일부터 6월11일까지 방사능종양학과와의 협진으로 방사능항암 치료를 총14일간 진행했다. 5월22일 1일차에서 너무 당황하고 놀란 나머지 중단하기를 요청할 정도로 답답하고 힘들었다. 다들 막연하나마 항암 방사능 치료는 힘들다더라하는 말만 전해 듣다가 그게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첫 경험은 혹독했다.

1일차 중단 후 심각하게 방사능 치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건 맑은 정신이고, 그걸 관장하는 건 뇌인데 내게 맞든 안 맞든 받아봐야 아는 일이고, 일단 어떤 식으로든 방사능 치료는 받아야 했다. 

전신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환자가 제어할 수 있는 건 ‘정신’과 ‘호흡’뿐이다. 호흡은 집중인데, 그때 문득 떠오른 건 작년 조계사 선림원 남전스님을 통해 배웠던 참선이 떠올랐다. 결국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또한 호흡을 통해 집중하고, 오랜 시간동안에도 내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해 알고 있었고, 5월23일 2일차에서 방사능 치료 내내 처음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참선 방식을 적용해 보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단전에 힘을 주고 와선하듯 짧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고를 반복하자 갑자기 편안해지면서 어제의 답답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덕분에 6월11일 14회까지 편안하게 마칠 수 있었다. 

에필로그 Epilogue 

2019년 12월, 암4기인 걸 알게 된 봄을 시작으로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나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바뀌고, 사람도 변한다. 일상의 일부일 뿐 그 어떤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들 듯 병 또한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예측 못할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조용히 들여다보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긍정적 마인드와 집중하기,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그게 인생이요, 일상이다. 

‘시절인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불교 언어다. 인간의 할 일은 그저 매 순간 일어나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때가 왔을 때 그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내가 얻은 건 결국 내려놓기와 바라보기 그게 전부였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우리 누구도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이가 없다는 것. 죽음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특별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도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죽음 또한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제 시작일 뿐이고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듯 정해진 게 없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당연한 일상일 뿐이다.

끝으로,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굳건히 항암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신 주치의 김도연 교수님, 위험하고 힘든 방사능 치료를 위해 밤샘도 불사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치료를 가능하도록 애써주신 윤형근 교수님, 입원기간 동안 매 순간 긍정적인 마인드와 정신력을 북돋아주신 7층 암환자실 수간호사 최경아 선생님과 그 외 일산 동국대병원의 모든 관계자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여전히 끝 모를 혼자만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소중한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 숨 쉬는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불교신문3570호/2020년4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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