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참가상 수상작] 박대용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의 아들로…’


장사해서 돈 많이 벌고도
자장면 한 그릇 안드시고
찬물에 밥 말아
김치 한 조각으로
늦은 저녁 드시던 모습…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진한 커피향이 코끝으로 스며듭니다. 저는 지금 병원 1층 찻집에 있습니다. 어머니가 편히 잠드신 것을 보고 찻집으로 내려와 앉아 있자니 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동국대병원에 오신지도 벌써 세달이나 됐네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매일 어머니 족욕시켜드리고, 틀니를 깨끗이 닦아드린 뒤 가글해드리고, 손발톱 깎아드리고, 혹여나 욕창 생길까봐 걱정돼서 아픈 다리는 랩으로 단단히 감싼 후 목욕을 시켜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린 뒤 휠체어로 산책을 시켜드리곤 했는데, 어느덧 5개월이 되었습니다. 
 

다리에 20cm가 넘는 큰 구멍이 생긴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동국대병원을 찾은 박대용 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 동국대병원 의료진을 만난 일이라고 한다.
다리에 20cm가 넘는 큰 구멍이 생긴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동국대병원을 찾은 박대용 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 동국대병원 의료진을 만난 일이라고 한다.

어머니! 그동안 많은 고통과 힘든 일들을 잘 견디어 오셨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셔서 꼭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시고, 남은 생은 오로지 어머니 자신만을 위한 삶을 누리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기억하세요? 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저를 참 예뻐해 주셨지요. 4남매 중 막내라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어머니를 참 좋아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사랑으로 키워주신 막내가 이제는 50대 중년이 되었으니, 세월이 무척이나 빠릅니다. 젊고 고왔던 어머니 얼굴도 참 많이 변하셨어요. 주름도 많이 생기고, 흰머리도 너무 많고, 다리는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지고….

상주에서 밭일 하시다가 넘어져서 포도나무 뾰족한 곳에 다리가 찔려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실 때만 해도 저는 어머니가 괜찮아지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어머니 인공관절 수술을 하셨던 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으시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병원을 옮겼을 때만 하더라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염증이 점점 심해져 결국 걷는 것조차 어려워져서야 비로소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용하다는 정형외과 교수님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동국대병원 안지현 교수님을 찾아온 것이 지난해 8월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다리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는 말씀을 듣고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식 놈이 무관심해서 이렇게까지 어머니를 방치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무릎 아래에 20cm가 넘은 큰 구멍이 생기고 그 속으로 뼈가 훤히 보이는 어머니 다리 상태가 자꾸만 떠올라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옆구리 쪽의 살과 발목 위쪽의 혈관과 근육을 떼어내서 구멍파인 다리에 이식하는 수술을 8시간 동안 받으실 때 수술실 앞에 있던 제 마음이 어땠는지 모르시지요?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수술이 잘 끝나 미소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수술로는 부족해 2차, 3차 수술까지 받으셔야 했을 때에는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여기서 잘못되시면 저도 못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느냐고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제게 어머니는 따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분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이셨고, 제 평생의 선생님이셨고, 제 평생의 어머니셨습니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말입니다.

상주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파주로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이 아들은 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끔씩 찾아오는 아들을 다음날 보내고 나서 눈물을 훔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파주로 올라오는 내내 차 안에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빨리 성공해서 어머니께 효도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이악물고 맹세하며 눈물을 삼키고 또 삼켰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해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 힘든 밭일을 혼자하시면서 끼니도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돌아서는 길이 왜 그리 서럽던지…. 막내아들 올려 보내시며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당에서 안타까운 손짓으로 말을 대신하셨던 어머니 그 모습이 얼마나 슬펐던지…, 아무리 불을 피워도 사는 게 가난했던, 마음이 가난했던 어머니 그 자리가 어찌나 차갑고 쓸쓸하던지….

외롭지 않으셨어요? 왜 그리도 바보같이 사셨습니까! 결국 헝클어진 주름과 앙상한 다리만 남게 된 삶인데 왜 그렇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셨습니까! 자식이 뭐라고, 남편이 뭐라고 어머니는 늘 뒷전이셨습니까! 왜 맛있는 거 안드시고, 좋은 옷 안입으셨습니까!

농사일은 내팽개치고 술만 좋아했던 아버지가 큰 집 조카들 보증을 잘못서서 3억원이나 되는 땅을 날렸을 때에도, 어머니가 이모들 때문에 오래오래 모아두셨던 8000만원을 손해 보셨을 때에도 그리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정작 제가 화가 난 것은 시내에 나가셔서 장사해 돈을 버시고도 그 흔한 자장면 한 그릇 안 드시고 집에 오셔서 찬물에 밥을 말아 김치 한 조각으로 늦은 저녁을 드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제게 씻기지 않는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구에서 대학 다닐 때도 그랬습니다. 매주 금요일 상주 집에 가서 농사일 거들어 드리고 일요일 저녁에 올라올 때마다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르시지요? 어머니는 슬픔을 만드셨고, 상주 집은 눈물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와 상주 집은 제게 그랬습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잘 드시고, 하시고 싶은 거 다 하시고, 남편 원망도 하시고, 자식들 눈치도 보지 마시고 그렇게 사셨어야 했습니다.

어머니! 저 요즘엔 조금 힘이 듭니다. 갱년기라서 그런지 어지럽기도 하고, 열도 나고, 화도 많이 납니다. 제가 해드리던 어머니 머리 염색도 병원에 계셔서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네요. 사실은 20년 넘게 해 온 출판사 사업도 많이 힘이 듭니다. 어머니를 늘 제 몫으로 돌리는 두 누나와 형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몸이 성치않으신 데도 밭 일 하시겠다고 고집 부리시는 어머니도 밉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두 달 정도 더 치료하시면 퇴원하실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동국대병원 정형외과 안지현 교수님, 박성윤 주치의님, 성형외과 홍기용 교수님, 김범식 주치의님 그리고 제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린 것보다 10배, 20배 더 밤낮없이 친절하게 환자들을 잘 보살펴 준 81병동 모든 간호사님들, 간호조무사님들, 특히 환자들을 한결같이 잘 배려해주신 소행연 수간호사님과 처음 동국대병원에 왔을 때, 내 가족처럼 따뜻하게 잘 이끌어주신 진료협력센터 남순미 간호사님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어머니 다리를 살려주신 분들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안지현 교수님을 찾아 온 것은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지현 교수님, 홍기용 교수님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수술 끝나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친절하게 잘 치료해주신 김범식 주치의님, 박성윤 주치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동국대병원 관계자 모든 분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생에서 어머니와의 인연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평생이 고독했던 어머니의 차가운 자리를 따뜻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품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임을 막내아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퇴원하시면 저와 손잡고 상주 집에서 며칠 밤 주무세요. 그러다 햇살 좋은 날에 제 집으로 가세요. 그래서 10년만, 딱 10년만 저랑 같이 사세요. 어머니께서 제 어머니이신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불교신문3585호/2020년5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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