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대장암은 어쩌면 잠시 쉬라는 귀한 선물”
“남편의 대장암은 어쩌면 잠시 쉬라는 귀한 선물”
  • 김옥기
  • 승인 2020.04.07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감동상 수상작] ​​​​​​​김옥기 '새로운 연인이 된 당신'


건강검진 중 발견한 대장암
불안함 위로한 의료진 ‘감사’
삶 돌아보며 성숙해진 시간
“소박한 일상이 참으로 행복”
김옥기 씨는 남편이 일반건강검진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자 모든 것이 절망으로 다가왔다. 동국대병원의 수술과 치료로 완치된 뒤 다시 찾은 일상이 참으로 행복하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김옥기 씨는 남편이 일반건강검진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자 모든 것이 절망으로 다가왔다. 동국대병원의 수술과 치료로 완치된 뒤 다시 찾은 일상이 참으로 행복하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대변 검사에서 혈변이 검출되었대. 대장내시경을 해보라는데….” 올 1월초 퇴근을 한 남편이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작년에 그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검진 중 대장암 검진 대상자였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새 연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채변을 받아서 동국대일산병원 일반 건강검진센터에 접수를 해주었다.

서둘러 다음날 곧바로 대장내시경 예약을 했다. “굳이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꼭 검사를 해야 해?” 검사 전날, 대장을 비우기 위해 쿨프렙산과 물을 반복적으로 마시며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며 연신 투덜거렸다. 

남편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남편에게 좀 더 세심하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친 날들을 후회하며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보호자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대장내시경을 진행하면서 용종 몇 개는 제거를 했는데, 암으로 의심되는 악성종양이 보여서 조직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네?” 순간 머릿속은 새벽 짙은 안개 속에 서 있는 듯 아찔해졌다. 더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CT촬영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세상이 온통 변해버린 느낌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나만 혼자 무인도에 남겨진 듯한 두려움과 절박함은 피를 말렸다. 그 누구의 어떤 위로도 마음에 전해지지 않았다. 수천 수만가지 생각과 상상들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나를 흔들곤 했다.

여전히 변함없는 그의 얼굴, 따뜻한 체온, 미소, 눈빛, 무뚝뚝한 말투도 그대로인데…. 여전히 변함없이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TV를 보고, 출퇴근을 하며 달라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남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남편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겨웠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이 아픔이 남편과 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난으로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이 안타까운 시간들을 잘 견뎌 주어서 고맙다고 우리 가족이 서로 손을 마주잡고 기쁨의 눈물로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뜻하지 않은 병마를 맞이해 황망해하는 남편을 내가 꼭 지켜낼 수 있는 사랑의 수호신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남편과 함께 CT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온몸 구석구석 슬픔이 한주머니씩 고여 있는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남편은 수술을 하기 위해 내과에서 외과로 전과 된터라 우리는 외과 박영진 교수님 진료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종양 크기로 봐서는 초기는 아닌 듯 싶네요. 그래도 종양 위치가 위험한 부위는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수술 후 최종 조직 검사와 주변 침윤 상태에 따라 암 기수가 확정되고 치료 방법이 정해집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CT 결과를 모니터로 확인하신 박영진 교수님은 수술 진행 상황을 스케치북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렇지만 불안하고 두렵고 초조한 마음은 진정될 리 없었다. 

그이는 전이 여부를 확인하는 Pet CT를 가슴 졸이며 한 번 더 찍었다. 그리고 내분비과에서 수술에 필요한 몇 가지를 더 검사했다. Pet CT 결과도 다행히 전이는 없었고, 내분비과에서도 별 이상 소견이 없었다. 감사했다. 남편이 고마웠다. 비록 종양 부위의 대장을 일정 부분 절제해야 하는 큰 수술은 피할 수 없지만 희망적인 상황들이 큰 위안이 되었다. 

수술 당일, 12시쯤 수술실에 들어간 그는 5시를 넘겨 병실로 돌아왔다. 남편의 얼굴은 마취가 덜 풀린 탓인지 몽롱했고, 극심한 통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검붉은 소독약이 묻어 있는 수술 부위는 복대로 감겨져 있었고, 주렁주렁 매달린 진통제와 수액들, 피가 가득 고인 동그란 피주머니와 반쯤 차 있는 유린백을 단 채였다.

한없이 나약하고 처참한 그의 모습을 보자 그를 기다리는 동안 참았던 온몸의 세포가 말라비틀어지는 듯한 긴장감과 초조함이 한순간에 눈물로 녹아내렸다. “고생 많았어요… 고생 많았어요!”

나는 목이 메인 채 한 손은 그의 손을 부여잡고 한 손은 수술 부위를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비비기만 했다. 내 손길과 목소리와 얼굴을 어렴풋 감지했는지,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의 얼굴과 눈빛도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째부터는 진통제 없이 밤을 지냈고, 죽을 시작으로 음식을 섭취하며 회복의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열흘 만에 남편은 X레이와 CT를 한 번 더 찍고 밝은 모습으로 퇴원했다. 일주일 후 열릴 마지막 판도라 상자를 남긴 채….

퇴원 일주일 후, 그이와 난 외과 박영진 교수님 진료실 복도 의자에 앉아 초초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입술을 앙다문 채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주친 눈을 외면했다. 말없이 앉아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와 나의 바람은 오직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이었다.

“음… 상태가 좋으시네요. 다른 치료약 필요 없겠네요! 앞으로 관리 잘하시고 6개월마다 CT 한 번씩 찍어봅시다!” 말없이 모니터로 최종 조직 검사 결과와 주변 침윤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신 교수님이 밝은 표정으로 긴장된 침묵을 깼다. 

“네...? 항암 치료 같은 것도 전혀...?” 순간 그이와 난 말을 잇지 못하고 넋이 빠진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적! 그랬다. 정말 그랬다. 우리에게 기적이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격스런 인사를 마치고 진료실 밖으로 나온 후에도, 그이와 난 어떤 말로도 어떤 몸짓으로도 그 가슴 벅찬 기쁨을 대신 할 수 없었다. “당신 정말 고마워요! 맛있는 커피나 한 잔 사주세요!” 나는 쑥스러워 하는 그이에게 팔짱을 끼며 병원 안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우리를 찾아온 고난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위기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저버리지 않은 채 지나갔다. 수술 후 수개월이 흐른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고 숙연해진다. 첨단 기계로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을 해주신 의료진들, 내과적 진료와 절차를 잘 챙겨 주신 강현우 교수님,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주신 박영진 교수님, 한결같은 환한 미소로 정성껏 환자를 보살펴 주던 간호사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만일 작년 연말에 대변 검사를 안 해도 된다고 고집하던 그의 말을 따랐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는 자신의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는 줄도 모른 채 일 년을 그냥 살았을 터이다. 그랬다면 일 년 후 그이는 어떤 상태가 되어 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지금 이 순간도 몸서리처질만큼 아찔할 뿐이다.

그의 뜻하지 않은 대장암은 어쩜 고단한 그의 삶이 안쓰러워 잠시 쉬었다 가라는 귀한 선물인지도 몰랐다. 잠깐 동안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서 지난날을 뒤돌아보고, 건강 상태도 체크해 보고, 새로운 내일을 설계하면서 휴식의 시간을 가지라는 감사한 축복의 선물이었다.

그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함께 얼굴을 맞대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도 행복했다. 간절한 한마음으로 서로의 위로가 되어 주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소박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지도 새삼 깨달았다. 뜻밖의 위기를 지나며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좀 더 성숙한 사랑으로 재충전할 수 있는 빛나는 시간들이었다. 

그와의 결혼 생활 33년 동안 어찌 향기로운 꽃길만 걸었겠는가! 자랑스럽게 잘 자라 준 두 아들과 함께 누구나 그러하듯 한 줄 한 줄 희로애락의 나이테를 만들며 오늘에 이르렀다. 때론 비바람 눈보라 치는 삶의 여정도 때론 천둥 번개 치는 삶의 여정도 함께 묵묵히 잘 견뎌내며 우리만의 소중한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또 한줄 선명한 희로애락의 나이테를 만들며 함께 잘 견뎌내고 있고, 앞으로도 더 결 고운 나이테를 만들며 서로의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함께 잘 견뎌낼 것이다. 요즘 흰 머리 가득한 그이는 나를 설레게 만드는 새로운 연인이 되어 가고 있다.
 

[불교신문3572호/2020년4월8일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