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오랜 투병에도 잘 견뎌준 아이들 고마워…”
“아빠의 오랜 투병에도 잘 견뎌준 아이들 고마워…”
  • ​​​​​​​최영인
  • 승인 2020.04.16 08:36
  • 호수 35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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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감동상 수상작] ​​​​​​​최영인 ‘느닷없이 찾아오는 병’


직장생활 중 갑작스런 뇌출혈
경주동대병원서 장기간 치료
두번 쓰러져 살아있는게 기적
“건강 되찾아 다시 행복해지길”

남편은 용인시에 있는 ○○텔레콤 회사에서 폰 설계와 관련된 일을 하는 근로자였고 두 자녀를 두고 있는 가장이다. 우리는 주말부부로 지냈다. 우리는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가정이다.

2017년 4월28일 저녁 8시경쯤 그날도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영인님을 아십니까, 저는 회사동료인데요, 최영인 대리님이 지금 기숙사 방에서 토하고,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서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어요”라고. 나는 순간 너무나 당황해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멍하니 있었다. 핸드폰에서 또다시 들려왔다. “여보세요, 들리십니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상태가 어떤데요?” 라고 묻자, 그 남자는 “119직원을 바꿔 줄게요”라며 전화를 바꿔주었다. 119직원은 “아직 의식은 있어요, 그런데 횡설수설해요”라며 “지금 용인시에 있는 다보스병원으로 이송중이니 보호자는 빨리 오세요”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최영인 씨는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의 오랜 병원생활로 일상이 황폐해졌으나,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행복을 되찾길 바라고 있다.
최영인 씨는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의 오랜 병원생활로 일상이 황폐해졌으나,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행복을 되찾길 바라고 있다.

정신이 멍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시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후 아이들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용인으로 시부모님과 함께 차로 이동했다. 

용인 다보스병원 중환자실에 새벽 늦은 시간에 도착해 간호사에게 남편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이름을 물으면, 대답은 하나 계속 혼잣말 하는 상황이며, 뇌출혈이 조금 있는 상태라고 하면서, 자세한 상태는 주치의에게 물어 보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29일 토요일 아침, 주치의(레지던트)가 와서 말하기를 “소뇌 부위에 출혈이 보인다며, 주말동안 뇌부종 낮추는 약물이랑, 지혈제 약물 등을 사용하며 지켜보다가 월요일 아침에 응급수술 할 계획이라고 했다. 주말이라, 당장 수술 할 상태가 아니라며, 주말 내내 경과를 관찰 한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이랑 나는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밝히며, 전원수속을 요청했다. 서울대병원이나, 서울삼성병원에 전원을 요구했으나, 병원 측은 주말이라서 그런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그쪽에서 전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수원대학병원을 의뢰해 주겠다고 했다.

시부모님과 나는 의견충돌이 있었다. 난 현재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과 경기도 쪽은 연고지가 전혀 없어, 시부모님께서 보호자로 환자 옆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결국 경주에 있는 동국대병원에 가기로 결정하고 구급차로 경주로 이동하게 됐다. 오는 내내 남편은 구급차 안에서 횡설수설하며, 계속 일어나려고 온몸을 비틀며, 움직였고 모니터상 혈압은 200/95-210/100 이상, 맥박은 150을 넘어서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하였다.

나는 내려오면서 너무 불안했다. 이러다가 결과가 더 안 좋게 될까봐 눈물이 났다.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오후 4시경 뇌수술이 시작돼 5시간 정도 지났을 쯤 신경외과 교수님께서 수술 잘 끝났고, 중환자실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하여, 남편은 외과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황설수설하는 혼동 의식상태로 3일 정도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밤에 계속 떠들고 횡설수설하는 것이 심해 71병동 1인실에 있다가 의식상태가 조금 진정되면서 신경외과 병동으로 옮겼다. 남편은 계속해 밤낮이 바뀌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밤에 떠들고 침상에서 내려오려는 행동이 심했다. 그래서 복도밖에 침상을 끌고 나올 때도 많았고, 간병사도 혀를 내두를 정도여서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점차적으로 조금씩 진정 되어 가고 있었다. 봄이라는 계절이 지나고, 여름이 올 때 즘 신경 외과적 치료는 거의 약물치료만 유지 하면, 재활의학과로 전과되어 계속 치료를 받게 되었다.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뇌출혈이라서 사지 편마비는 심하지 않았다. 몸의 평형감각 둔함, 연하곤란, 구음장애 등이 심해서 재활치료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루 두 번씩 물리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를 받으며, 점차 의식 및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리하여 장기입원이 불가한 상태라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도 직장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집으로는 퇴원할 수 없어 시부모님이 요양병원 보내라고 하셔서 부득이 2017년 8월 14일 동국대경주병원에서 퇴원 후 바로 요양병원으로 전원 하였다. 이때만 해도 대화하는 상태가 많이 좋아져 정상상태로 회복되어갔다. 그리하여 나는 얼마 안 있으면 예전처럼 다시 정상생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2017년 9월19일 요양병원에서 물리치료 받는 도중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며, 요양병원에서 동국대 경주병원 응급실로 다시 이송한다고 전화가 왔다. 응급실로 가서보니 남편은 예전처럼 또다시 말도 어둔하게 겨우 이름 말하는 정도였고, 의식이 혼돈상태였다. 신경외과 김영구 교수님은 좌측 측두엽 쪽으로 뇌출혈이 다시 생겼다며 이번에는 수술은 간단하지만 후유증으로 구음장애랑, 지적장애가 많이 남을 거라고 하였다. 

나는 처음보다도 더 두려웠다. 두 번이나 쓰러지며 구음장애가 심하며, 지적인 부분도 장애가 생긴다고 하니 하늘이 캄캄했다. 남편은 뇌수술을 두 번이나 하면서 신경도 예민해지고, 후각도 예민해져, 조금만 냄새나면 냄새난다고 화도 자주내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잘 되지 않아 자주 화를 냈다. 병실에서도 다른 환자들과 자주 마찰이 생겨서 간호하기가 더 힘들었다. 나도 힘들지만 아이들도 몸과 마음이 더 힘들고 예민해졌다. 특히 큰 아이는 고3 수험생이라 많이 예민했다.

2017년 4월 봄부터 병원생활 시작하여, 12월 겨울이 올 때까지 남편은 계속 병원생활을 했고, 우리가족은 몸과 마음이 많이 황폐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편은 조금씩 호전 되어가고 있었다. 솔직히 긴 병원생활로 경제적 부담도 매우 컸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2017년 12월8일 퇴원하여 집에서 외래로 치료하러 다닐 수밖에 없었다. 환자 혼자서는 병원을 다닐 수 없는 상황이라 시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도 사정이 있어 계속 도움을 받지 못하고, 집에서 약물치료하며 자가 재활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점차 조금씩 우리 가족은 이런 생활에 적응하려는 도중 2018년 6월18일 새벽에 남편은 화장실에서 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정말 나는 너무 놀랐다. 화장실에서 킁킁거리며, 앞으로 꼬꾸라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다. 119를 불러 난 또다시 남편을 동국대학교경주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뇌출혈이 아니라 며칠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해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일시적 허혈상태, 기절상태라고 신경외과에서 설명했다. 그리하여 또 다시 입원하여 치료받고 2018년7월27일 퇴원하였다. 그 이후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약물치료를 하며, 남편은 혼자서 서서히 걷는 운동도 하기 시작하며, 신체적으로는 많이 정상적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2017년, 2018년 투병생활을 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 가족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지만, 점차 적응해가며, 그래도 남편이 살아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물론 때로는 서로 신경이 예민해져 가족끼리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2019년 11월 지금까지 계속해서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재활을 계속하고 있다. 남편은 아직도 말이 어눌하고, 장애가 많이 남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인공호흡기를 두 차례나 달고, 의식이 세 차례나 없어졌다, 다시 살아나서 기적이다”라고 가끔 말하기도 한다. 비록 경제적 어려움과 말의 어눌함은 많이 남아있지만 남편이 단순직 일이라도 다시 하며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를 난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진심으로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의사선생님,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 병동간호사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물리치료사·언어치료사·작업치료사 선생님들한테도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이동요원과 간병사님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이런 일은 절대 없기를 바라며, 우리 아이들 많이 힘들었을텐데 잘 견뎌주고 있어 진심으로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느닷없이 누구에게나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고 나쁜 병환이 찾아오지 않도록 노력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되겠지요!
 

[불교신문3574호/2020년4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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