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보니 우리 병원이 자랑스러워졌다”
“몸이 아파보니 우리 병원이 자랑스러워졌다”
  • 이문희
  • 승인 2020.03.25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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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감동상 수상작] ​​​​​​​이문희 ‘베풀수록 커지는 사랑과 믿음’


출산 기쁨 잠시 중환자실행
죽을수도 있단 생각에 ‘소름’
아프며 의료진에 받은 혜택
환자에 돌려 드리고자 다짐

만삭의 몸으로 한여름의 더위를 이겨가며 전치태반이라는 위험까지 무릎쓴 채 나는 아래로 처진 배를 움켜잡고 환아의 이름을 부르며 진료실을 왔다 갔다 하였다. 분만날을 받아놓은 상태여서 행여나 하루라도 빨리 조산을 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으나 다행히 뱃속의 아기도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지 드디어 원하던 날과 원하던 시간에 나는 수술대에 오를 수가 있었다. 

첫째를 갑자기 제왕절개하였기에 둘째는 선택의 여지없이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둘째는 전신마취가 아닌 부분마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무래도 부분마취를 하면 아기를 안아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굳이 전신마취를 택할 이유도 없었다. 수술대 위에서 나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예쁜 아기를 안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척추로 들어가는 긴 바늘이 아픈 줄도 몰랐다. 
 

이문희 씨는 베풀면 베풀수록 직원과 환자간의 믿음과 사랑은 더욱 더 커진다는 것을 다시 입원해서 겪은 경험으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진제공=동국대의료원
이문희 씨는 베풀면 베풀수록 직원과 환자간의 믿음과 사랑은 더욱 더 커진다는 것을 다시 입원해서 겪은 경험으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진제공=동국대의료원

척추 마취가 끝나고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 드디어 “응애 응애”하며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공주입니다”하는 목소리와 함께 내 품안에 안긴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수면제를 맞고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호흡곤란이 왔다. 정신이 좀 흐렸지만 힘껏 “선생님, 숨을 못쉬겠어요” 하고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내 가슴을 마구 때리자 의료진이 산소 호흡기를 갖다 대었고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출산의 기쁨도 느낄틈 없이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분만 회복실이 아닌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보호자를 찾는다고 방송도 나왔다고 한다. 정말 응급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언니도 나와 같이 동국대 경주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언니는 그날 휴무였지만 집안 청소 후 내 수술이 끝나면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수간호사 선생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왔다고 한다. 이모를 보자마자 우리 큰딸이 “이모, 빨리 엄마한테 데려다 주세요, 빨리요” 하면서 소매를 당기며 중환자실을 가리키면서 계속 울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서 느낀 고마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심장혈관내과 교수님께서 심장초음파를 하셨고, 마취과 교수님, 산부인과 교수님, 전담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오셔서 나의 상태를 살피셨다. 그리고 핵의학검사 및 이런 저런 여러 가지 검사를 마쳤다. 원인은 색전증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우선 하루라도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숨쉬기가 힘들고 또 갑자기 호흡정지가 와서 사망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말로만 듣던 무서운 색전증, 손 써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순간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소름이 끼쳤다. 

다행히 종합병원이어서 모든 과 교수님들의 빠른 협진이 이뤄질 수 있었고 나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모든 의료진에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면회시간이 되자 언니가 먼저 우리 큰딸을 데리고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언니를 보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리 자매는 동시에 같이 울기 시작했다. 큰 딸도 “엄마~”하면서 같이 울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언니와 가족들을 어쩌면 못볼지도 몰랐다는 생각에 더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세상에 빛을 본지 얼마 안 되는 둘째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을 생각하니 더욱 슬펐다. 

이렇게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 모든 것이 정말 한 순간이었고 하루아침의 꿈인 것만 같았다. 멀쩡한 정신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힘들었지만, 아파서 신음하는 환자 목소리, 면회 온 사람들의 우는 소리, 의료진들의 다급한 목소리,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 좋아져서 일반 병실로 옮기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도 힘들었다. 

응급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니 너무 무섭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지만, 만약에 심정지까지 왔더라면 나는 두 번 다시 가족들 얼굴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고마움과 가족들을 볼 수 있고 가족들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짧지만 내 인생을 한번 뒤돌아 볼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처음 입사하여 이틀간 중환자실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때가 생각났다. 그때 한 분 한 분 백케어를 하고 환의를 갈아 입혀 드렸을 때와 똑같이 나 또한 도움을 받게 되었다. 환자의 힘든 고통도 느낄 수 있고 의료진의 고마움도 느낄 수 있는 정말 길고도 짧은 하루였다. 새로운 생명을 낳았고 나 또한 새 생명을 얻게 됐으니 기쁨은 두 배였고, 무엇인가는 모르지만 감회도 새로웠다. 

그렇게 나는 일반실로 옮겨졌고 모든 의료진의 도움으로 예쁜 둘째 딸과 함께 건강하게 무사히 퇴원을 하고 조리원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조리원에서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컴퓨터를 하기도 하며,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며 그야말로 내 세상이 따로 없는 정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직장생활을 계속해왔던 나로서는 정말 황금 같은 시간이고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3개월이란 시간이 흘러 어느덧 꿈만 같던 분만휴가는 끝이 났다.

고마움 잊을만한 때 또다시 병원신세

육아의 시간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병원으로 다시 복귀한 나는 환자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 더욱 더 열심히 일했다. 둘째는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께 맡기고 주말마다 내려가서 보곤 했다. 다시 출근하니 모든 것이 새롭고 의욕이 넘쳤다. 

그렇게 일하랴, 아기 보러 가랴, 주말도 쉴 틈이 없자 몸도 지쳤는지 몇 개월이 지나자 신호가 왔다. 분만 후 면역이 약해져 있는 탓에 감기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엔 기침이 나서 약을 먹기도 하고 며칠이면 좋아지겠지 하고 링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몸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39도가 넘는 고열이 시작되었고 결국 해열주사를 맞으며 일을 겨우 마칠 수 있었는데, 집에 와서 누우니 옆으로 몸을 돌리기도 힘들 정도로 숨이 차고 힘들었다. 열은 계속 났고 잔기침은 더욱 심해져 결국 다음날 반차를 내고 진료를 보았는데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폐에 물까지 차서 입원을 해야만 했다. 의료진의 고마움을 잊을만할 때쯤 또다시 나는 병원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검사를 하니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었다. 소아과에 근무하면서 흔하게 봐왔던 폐렴에 내가 걸리다니….

주치의 선생님께서 폐렴은 심각한 합병증이 올 수 있고 특히 면역 저하자나 만성질환자에게는 꽤 치명적이고 사망률도 꽤 높아서 치료를 잘 받아야 된다고 하니 겁이 덜컥 났다. 또 다시 병가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 동료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쾌유를 빌어주는 고마움을 느끼며 열흘이란 긴 시간동안 입원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께서 회진을 오셨고, 3교대를 하며 내 치료를 도와주던 간호사 선생님들은 동분서주하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나의 상태와 안부를 확인했고 정성껏 보살펴 주신 덕분에 건강하게 퇴원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환자 입장이 되어보니 그 아픔의 깊이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일할 때는 몰랐는데 따뜻한 친절을 베풂으로써 환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내 스스로도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새삼 느끼기도 했다. 베풀면 베풀수록 직원과 환자간의 믿음과 사랑은 더욱 더 커진다는 것을 다시 입원해서 겪은 경험으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준 동국대 경주병원과 치료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느낀다.

내가 건강해야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건강한 것이 최고의 행복이자 가족의 행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내가 받았던 친절과 베풂을 다시 환자분들께 되돌려 드리려 “처음사랑 끝까지”라는 우리 병원 슬로건처럼 더욱더 열심히 노력해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동국대 경주병원에 근무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동국대 경주병원이 경주시민의 든든한 건강 지킴이가 되어 계속 발전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불교신문3568호/2020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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