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 법문
인도순례 입재식 하루 앞두고
순례 대중에게 이례적인 말씀
“한국불교 20년 후의 모습은…
순례를 기회로 중흥 이뤄내자”

2월9일 한국불교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상월결사 인도순례가 시작된 가운데,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이 순례 대중 앞에서 법문을 통해 인도순례를 나선 이유를 밝혔다. 회주 스님이 대중 앞에서 법석에 오른 일은 이례적이며, 스님 스스로 밝혔듯이 2020년 국난극복 자비순례, 2021년 삼보사찰 천리순례, 그리고 지난해 평화방생순례까지 3년 동안 스님은 순례 기간 중 대중 앞에서 법문하기를 자제해왔다. 회주 스님이 인도순례 대중을 대상으로 법문을 자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순례 이틀째인 2월10일 인도 바라나시를 거쳐 사르나트에 도달했다. 회주 스님이 대중법문을 한 장소는 사르나트 녹야원이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문을 설하신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은 다음 날인 2월11일 인도순례 입재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녹야원을 상징하는 다메크 스투파를 배경으로 펼친 야단법석에서 회주 스님은 인도순례를 하는,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스님은 먼저 <신심명>을 인용했다,
“<신심명>에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고 했습니다. 도를 이루는 것은 어렵지 않고 지극히 쉽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를 깨쳤다는 사람을 근래에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좋다 슬프다 나쁘다 이런 분별심만 내지 않으면 다 깨친다고 했습니다. 우리 스님들이 수없이 한 얘기입니다. 신도님들이 스님 법문을 통해서 늘 들어왔던 얘기기도 합니다. 도를 통하기 위해서 수많은 납자들이 결제 때마다 2000명씩 앉아서 정진하지만, 도를 깨쳤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회주 스님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신심명>을 인용했다.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늘 시시비비를 가리고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다 보니 도를 이룬 사람이 없어요.” 스님은 부처님의 깨달음과 그 제자들의 깨달음은 다른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지혜, 제자들이 깨달은 것은 이치입니다. 부처님의 수많은 제자들이 아라한이 됐어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를 깨달은 게 아니고 이치를 깨달은 거예요.”
깨달았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것이다. 세 살 어린아이가 칼을 들면 베일까 걱정하고, 물가에서 물에 빠질까, 불 곁에서는 델까 걱정하는 것. 그것을 아는 사람이 이치를 아는 사람이다. 회주 스님의 법문은 이어진다. “세상 이치를 아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아라한과’입니다.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은 ‘대지혜’입니다.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부처님의 세계를 가려면 다생겁래로 수없이 나고 죽고 수없이 깨달음을 얻어야 대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우리가 열심히 정진하면 이치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그것은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회주 스님에게 사르나트 녹야원은 환희심이 넘치는 공간만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와 있지만 이곳이 기독교의 성지였다면 이 자리가 유적지로만 남아 있었을까요? 우리가 순례하는 불교 성지들은 유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한국불교로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 17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불교는 어떨까요. 20년 후에는 이곳 성지와 같이 유적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말씀이다. 이같은 법문에 대중들도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출가자가 줄어들고 있고, 신도도 줄고 있잖아요. 이곳이 왜 유적지가 되었겠어요. 인도에 스님들이 없고 신도가 없어졌으니까. 한국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문화재로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회주 스님 법문은 핵심으로 도달해갔다. “한국불교가 문화재로서 보존 가치만 있는 존재로 전락하기까지 시간은 먼 훗날이 결코 아닙니다. 20년 후에 당장 다가올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를 분명히 알고 극복하자는 취지로 순례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떻게 하면 보장받을 수 있을까. “저는 늘 공석이나 사석에서나 포교만이 우리 종단이 살 길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포교가 개인이 일대일로 만나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많은 대중이 43일 동안 걷는 모습을 불자들이 보고 신심을 내서 내 이웃에게 부처님과 인연 맺도록 역할을 하는, 한국불교 중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씨앗을 심자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회주 스님은 순례의 원만 회향을 위한 대중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설했다. “지난 3년 동안 순례하면서 우리는 똑같이 걸었고 똑같이 먹었고 똑같이 잤습니다. 순례의 기본은 차별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배려입니다. 우리에게 배려심이 없으면 이 순례를 원만하게 회향하기 힘듭니다. 차별 없는 마음과 배려심으로 43일 동안 원만히 순례를 마칠 수 있도록 기원하겠습니다.” 회주 스님은 스스로의 말씀을 ‘잔소리’라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법문을 마무리했다.
이날 법문에 앞서 회주 스님은 3명의 묵언 수행자들에게 묵언 명찰을 수여했다.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 덕조스님과 전 법주사 주지 노현스님, 그리고 백금선 씨가 주인공이다. 3명의 묵언 수행자들은 2월11일 입재식부터 3월23일 회향까지 묵언하게 된다.
2월9일 조계사 고불식으로 시작한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인천공항을 출발, 9시간의 하늘길을 거쳐 인도 델리에 도착했다. 이어 다음날인 2월10일 다시 델리를 출발, 항공편으로 바라나시에서 내려 사르나트에 도달했다. 인도순례단은 순례 셋째 날인 2월11일 오전7시(현지시각) 사르나트 녹야원에서 입재식을 거행한다. 입재식에서는 40여일 동안 맨 앞에서 순례단을 이끌 부처님을 점안하는 의식과 가사공양 의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또 부처님의 ‘전도선언’을 모든 대중이 낭독하는 순서도 진행된다. 입재식을 마친 순례 대중은 쉴 틈 없이 곧바로 행선에 돌입하고 첫 숙영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일정을 보내게 된다.







인도 델리·사르나트=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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