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순례 17일차, 부처님이 걸었던 길을 따라 영축산에 도착했다.
인도순례 17일차, 부처님이 걸었던 길을 따라 영축산에 도착했다.

.225일 순례 17일 차. 새벽 230분 순례단은 숙영지 비까이푸르를 떠나 라즈기르를 향해 출발했다. 부처님께서 가셨던 바로 그 마을에서 묵고 바로 그 길을 따라 가는 행복한 순례길이다.

1천여명의 비구를 대동하고 가야에서 왕사성으로 가셨던 부처님과 제자들처럼 순례단은 안행(雁行)으로 한 줄로 늘어선 체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108 순례단의 10배 규모이니 부처님의 행렬은 엄청나게 길었을 것이다. 1천여명의 수행자들이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으로 온다는 소식은 이미 성내에 퍼져 왕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부처님은 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문 밖 한 숲에 머무셨다.

빔비사라왕이 친히 친족과 대신들을 대동해서 성 밖에 까지 영접을 나왔다. 왕이 친견하려는 이는 그러나 붓다가 아니었다. 마가다국에서 최고의 성인으로 존경받던 우루벨라 카사파였다. 왕이 카사파에게 예를 표하고 소문에 대해 물었다. “제가 듣기로 어떤 젊은 수행자에게 교화돼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믿기 어렵습니다.” 우루벨라 카사파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 바퀴 돌고 무릎 꿇고 합장하며 이 분은 저의 스승이시며 나는 이 분 제자입니다. 붓다를 뵙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는데, 붓다를 뵙고 나서는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빔비사라 왕이 그제서야 부처님께 예를 표하고 법문을 듣고 마음이 밝아졌다. 이로써 빔비사라의 5가지 소원이 달성됐다. 왕 위에 오르고,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 붓다가 출현하여 붓다를 뵈어 설법을 듣고 이해하는 이 다섯가지 소원이 성취되었다. 빔비사라는 공양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부처님이 왕사성 궁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왕이 부처님께서 머무는 영축산을 올랐다. 마차가 갈 수 있는 곳 까지 타고 가서 홀로 향실(香室,Gandhakuti)에 가서 부처님을 친견했다.

순례단도 걸어서 향실에 올랐다. 아난이 수행했다는 동굴을 지나 독수리 바위를 돌아 향실에서 순례단이 가슴에 품고 이운하는 불상을 모셨다. 회주스님을 시작으로 꽃을 공양하고 합장 기도했다. 그리고 예불문을 독송했다.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至心歸命禮 靈山當時 受佛咐囑 十大弟子)’

조석(朝夕)으로 올리는 예불문인데 지금 이 순간 만은 울컥한다. 바로 그 영산(靈山)에 올랐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머물며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신 곳, ‘법화경의 무대, ‘반야심경의 무대, <대반열반경>이 시작되는 곳, 경전 첫 구절에 늘 등장하는 부처님은 나열기 기사굴산 산중에 계셨다는 기사굴산, 영축산 아닌가.

늘 습관적으로 읊는 구절이지만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뭔가 가슴 저 아래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고,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부처님을 바로 눈 앞에서 친견하는 듯 황홀하다. 내가 딛고 선 이 곳에서 우다야 소나 등 영축산 건너 장엄하게 펼쳐진 산들을 부처님께서도 보셨으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성지를 순례하는 이유다. 살아서 부처님과 가장 가까이서 체취를 느끼고 가장 밀접하게 교감하는 유일한 길은 부처님의 기억과 역사가 서린 장소를 찾아가는 순례다. 찾아가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겨울수록 공감은 깊고 강해진다. 그래서 성지는 반드시 도보로 찾는다.

부처님 이래로 전 나라 전 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많은 인원이 부처님 주요 성지 전체를 도보 순례한 역사는 없었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최초다. 연도에 나온 인도 주민들이 박수 치고 두 손을 강하게 맞대 합장하며 환영하는 이유다. 한국의 불자들이 신문 방송 등을 보며 응원을 보내는 이유이고 하다.

영축산을 향하는 순례단의 걸음, 더위와 탁한 공기 등 악조건은 순례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영축산을 향하는 순례단의 걸음, 더위와 탁한 공기 등 악조건은 순례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부처님 성지를 향한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단.
부처님 성지를 향한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단.

전 날 숙영지에서는 신도들과 함께 영축산 성지순례 가던 베트남 스님이 순례단을 찾아와 300불을 공양 올리고 갔다. 타이틱(釋財)이라는 법명의 스님은 인근 사찰에서 한국에서 온 순례단 소식을 듣고 고되고 장엄한 순례를 나선 한국스님들에 감동해 들렀다고 말했다. 잠시 뒤에는 베트남 신도 3명이 함께 찾아와 공양 올리고 부처님께 삼배했다. 순례단도 감사의 표시로 반야심경 경판을 선물했다. 25일 영축산 입구에서 순례단이 오기를 기다리던 한국 의왕 용화사 신도들도 장하십니다. 끝까지 건강 조심하세요라며 환호와 박수로 응원했다. 신도들 중에는 우리도 따라 걷고 싶다며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처럼 상월결사 인도순례는 갈수록 국적과 종교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환희심을 준다.

하지만 모두 같은 마음은 아니다. 부처님도 그러하셨다. 영축산에서 부처님은 사촌이자 뛰어난 제자였던 데바닷타로부터 죽임을 당할 뻔 했다. 그는 부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흉계를 꾸며 살해하려 했다. 바로 이 곳 영축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토록 어려운 고행을 감내하고 한량 없는 복덕을 쌓은 부처님 조차 시기 질투 욕망에 눈 먼 자들의 모함과 심지어 시해 시도 까지 있었는데 상월결사를 향한 시기 모함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순례단은 묵묵히 부처님의 길을 따라 갈 뿐이다. 염려하는 것은 우리내부의 나태나 해이 부주의지 외부 시선이 아니다. 외부의 박수 역시 한국불교 중흥의 마중물로 결실 맺지 못한다면 바람에 날리는 먼지에 불과할 뿐 이라는 냉엄한 현실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회주스님은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들뜨는 기색이 보이면 가차 없이 경책한다. 외부 경계에 끄달리지 않도록, 내부의 방종에 무릎 꿇지 않도록 죽비를 놓지 않는다. 그 미묘한 경계를 제 때 정확하게 포착 할려면 이끄는 스승은 늘 깨어있어야 하니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대중들 보다 몇 배 더 고된 길이다.

호계원장을 역임한 무상스님의 회향 축원을 끝으로 향실에서의 예불을 마친 순례단은 영축산을 내려가. 빔비사라왕이 말년에 아들에 의해 갇혀 옥사했던 감옥 터를 들른 뒤 죽림정사로 갔다.

불교 최초의 사원이자 교단이 출범한 성지 중의 성지다. 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오시지 않으니 빔비사라왕이 적당한 곳을 찾아 머무시도록 했다. “도읍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왕래하기 편하고 원하는 사람이 가기 싶고, 낮에는 시끄럽지 않고, 밤에는 사람 소리가 적고 조용하고 명상하기 적당한 곳

라즈기리로 향하는 순례단
라즈기르로 향하는 순례단

성 북쪽 죽림원이었다. 순례단은 칼란다카 연못에 앉아 죽림정사를 관조했다.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부처님 10대 제자 중 최고로 손꼽히는 세 분 제자를 맞은 곳이다. 목건련 마하가섭이 200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오늘날 까지 상용어구가 된 ‘1250비구가 완성됐다. 불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가불자라는 수다타 장자와도 죽림정사에서 인연 맺었으니, 순례단의 발걸음이 이 곳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아쉽게도 제1결집이 일어난 칠엽굴은 죽림정사에서 먼 발치로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히말라야 기슭에서 왕자로 태어나 모든 부귀 권세 다 벗어던지고 출가한 부처님은 바이샬리를 거쳐 라즈기리에서 당대 최고의 스승들을 만나 학문도 수행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두 도시는 오늘날로 치면 파리 뉴욕처럼 종교 사상 학문이 풍미하는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그 모든 지식 사상 수행을 섭렵 했지만 궁극적 행복을 찾지 못한 부처님은 결국 스스로 그 길을 찾고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가야에서 고행 끝에 중도의 길을 찾아 정각을 이뤘다.

성도하신 부처님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도시 바깥 사람 속에 있지 않지만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곳. 사람의 안락과 행복을 위한 길을 일러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순례단이 편안한 산중 가람, 신도들의 공양을 내려놓고 고행의 길을 나선 것도 길 위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순례단은 이제 세계 최대 불교대학이 있었던 나란다를 지나 부처님께서 사랑하셨던, 열반의 길을 떠나시기 전 다시 한번 돌아보셨다는 바이샬리를 향해 길을 나선다.

베트남 스님이 신도들과 함께 순례단을 찾아와 공양을 올리고 갔다.
베트남 스님이 신도들과 함께 순례단을 찾아와 공양을 올리고 갔다. 고되고 힘든 여정 속에서도 장엄한 순례를 나선 한국 스님들에 감동해 들렀다고 말했다.
순례단 스님들.
힘든 순례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순례단 스님들.
왕사성 터를 지나는 순례단
왕사성 터를 지나는 순례단
부처님 전에 합장하는 호산스님
부처님 전에 합장하는 호산스님
회향축원하는 무상스님
회향축원하는 무상스님
영축산을 내려가는 순례단
영축산을 내려가는 순례단

인도 비하르주=박부영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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