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단, 라즈기르에서 나란다 향해 18일째
28km 누적 401km '환희의 순례' 이어가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라즈기르를 출발해 라즈기르를 지났다. 누적거리 401km. 여명이 밝아 올 무렵 힘차게 나아가는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은 라즈기르를 출발해 라즈기르를 지났다. 누적거리 401km. 여명이 밝아 올 무렵 힘차게 나아가는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

226일 새벽 2시 전 날 묵었던 라즈기르 시내 호텔 뒤뜰 잔디 밭에서 새벽 예불을 올리고 나란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걷는 거리는 28km, 나란다 대학 터 까지는 16km니 라즈기르와 나란다는 한 도시와 다름 없다. 사리푸트라와 목갈리나의 고향이다. 아침 공양을 나란다 대학 터 인근의 나바 나란다대학에서 내기로 했다고 전 날 알려왔다.

새벽 라즈기르 시내는 지금까지 지나온 다른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뭔가를 태우는 매케한 냄새와 섞여 불빛에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먼지, 냄새 나고 쓰레기가 뒤섞인 개천, 반은 시멘트 반은 흙으로 덮인 도로, 다만 영어로 된 간판이 이 곳이 관광도시임을 말해준다.

라즈기르, 신생 불교가 당대 최고 교단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던, 부처님이 사랑했던 도시다.

<“아난다여 라자그리하(오늘날 라즈기르, 왕사성)는 좋은 곳이다. 영취봉은 좋은 곳이다. 도적의 벼랑은 좋은 곳이다. 베바라 산 중턱의 사타반니 굴은 좋은 곳이다. 이시가리 산 중턱의 카라시라는 좋은 곳이다. 시타숲의 삿파손디카 동산은 좋은 곳이다. 타포다 동산은 좋은 곳이다. 벨루바나의 카란다카 연못은 좋은 곳이다. 지바카 망고 동산은 좋은 곳이다. 맛다구치의 동산은 좋은 곳이다

라자그리하는 부처님에게는 너무나 정이 든 곳이었다. 이 곳의 구석구석이 부처님에게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부처님은 그 어느 곳보다도 이 곳을 사랑했다.> (호진스님, 인도불적답사기)

묵묵히 길을 가는 순례단의 걸음은 장엄하다.
묵묵히 길을 가는 순례단의 걸음은 장엄하다.
마을 주민들 사이를 지나는 순례단의 모습.
마을 주민들 사이를 지나는 순례단의 모습.

부처님은 이 곳 라즈기르를 중심으로 나란다 파트나 바이샬리를 거쳐 북쪽의 쉬라바스티, 기원정사가 있는 사위성을 오가며 전법을 펼쳤다. 45년간의 전법 경로다. 순례단이 가는 그 길이다.

마지막으로 라즈기르를 떠나실 때도 늘 그러셨던 것처럼 다시 돌아오실 것으로 알았던 것 같다. 마지막 열반의 길은 바이샬리에서 시작했다. 영축산을 내려오실 때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하지만 부처님은 당신이 안 계셔도 제자들이 따라갈 길을 만들어놓으셨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또한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은 의지하지 마라.”고 하셨다. 훌륭한 제자도 수없이 두었다. 부처님 법이 있고 제자가 있으니, 부처님은 당신의 뒤를 걱정하지 않으셨다.

순례단도 불법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제자들의 공동체다. 그러나 순례단은 백척간두에 선 위기를 느낀다. 이 나라 처럼 대한민국에서 불법이 쇠퇴하지 않을 까 걱정한다. 인도 처럼 영축산도, 가야산도 있고 이 나라에는 찾아보기 힘든 스님도 많고, 신심이 견고한 신도도 넘치는데,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 일까?

나란다에서 만난 불자. 지극 정성으로 합장한다.
나란다에서 만난 불자. 지극 정성으로 합장한다.
나란다 대학 총장에게 반야심경 고려대장경판을 선물했다.
나란다 대학 총장에게 반야심경 고려대장경판을 선물했다.

라즈기르를 떠나는 순례단의 발걸음이 무겁다. 나란다로 가는 도중에 한 버스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행렬을 바라본다. 불교 순례자들이다. 손에 물병을 든 모습이 이채롭다.

아침 공양을 마련한 나란다 대학은 나란다 대학 터 옆에 자리했다. 본관 건물에 크게 나붙은 나가르주나글귀가 눈에 띈다. 대승불교의 사상적 틀을 세운 용수(龍樹)보살이다. 이 학교는 인도가 영국에서 해방 되던 해인 1947년 설립을 논의해 1951, 정부가 세운 불교대학이다. 산스크리트 팔리어 티베트어로 된 경전을 배운다. 나란다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학이었다. 나가르주나도 어려서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 유식학의 시조 무착(無着, Asanga), 세친(世親, Vasubandhu) 형제 학승도 나란다대학 출신이다. 현장스님이 5년간 수학하는 등 중국 티베트 몽골 남방국가는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 학승들도 유학한,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 격이다.

터만 남은 나란다대학은 이 땅 불교 만큼 황량하다. 사리푸트라(사리불)는 호텔 이름으로만 남았고 나란다 대학 터 담벼락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다. 힌두교의 나라에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자 마자 신 나란다대학을 세웠다는데서 한 가닥 희망을 찾는다. 2700여 년을 내려오는 불교도 부처님 한 분으로부터 시작했다. 2천만 서울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 한강도 오대산 우통수 샘에서 비롯됐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너 때문이라며 원망하지 않고, 결론도 없는 탁상공론이 아닌, 실천행을 했다. 9명의 스님이 한 겨울에 천막을 치고 가행정진을 했다. 그 정진이 108명의 부처님 성지 순례를 낳았다. 이 인연은 또 어떤 인연을 낳을지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묵묵히 걸을 뿐이다.

나란다 대학 총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이 순례단을 환대했다. 순례단도 <반야심경> 고려대장경 동판을 선물했다.

부처님을 이운하는 이태경 보살.
부처님을 이운하는 이태경 보살.
성계순 보살.
성계순 보살.
정유림씨.
정유림씨.
정충래 8조 조장.
정충래 8조 조장.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이영규 거사.
이영규 거사.

아침 공양 후에는 부처님을 이운한다. 18일 차에는 우바이 우바새가 처음 이운 영광을 안았다. 이태경 7조 조장, 성계순 보살, 그리고 순례단의 막내며 유이(唯二)20대 정유림(25)씨가 차례로 맡았다. 뒤이어 정충래 8조 조장을 시작으로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이영규거사가 이었다.

아침 공양 전 이미 14km 가량 걸어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부처님을 모셨다는 기쁨이 컸던 듯 맨 몸으로 걸을 때 보다 더 활기차고 빠르다.

영광의 우바이 우바새 5명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이영규 거사는 묵언 수행이다.

환희심으로 힘 하나도 안 들이고 걸었습니다” (이태경)

어디서 이런 복이 왔을 까? 너무 너무 감사하고 부처님 모신 것 만으로도 인도 순례 다 이룬 것 같다.” (성계순)

부처님 모시고 걸으니까 몸도 가볍고 영광스럽고 환희심 나고 눈물 날 뻔 했습니다”(정유림)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짧은 시간 부처님 제 가슴에 안고 모셔온 것 자랑스럽고 부처님 혹시 다치실 까 조심 조심 안전하게 걷는데 최선을 다했고 부처님 가호로 편히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정충래)

영광스럽게도 부처님 땅에서 부처님 모시고 이운하니까 남다른 생각 들었습니다. 기쁘고 영광입니다” (주윤식)

18일 차 순례단의 행선은 라즈기르를 출발해 마후리 나란다대학터 마찰디히를 거쳐 케워이의 힌두교 사원에 숙영지를 마련했다. 이 날 28km를 걸어 누적 거리 401km.

물집이 터진 발을 무겁게 옮기다가도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면 다시 힘을 얻는다.
물집이 터진 발을 무겁게 옮기다가도 주민들의 박수를 받으면 다시 힘을 얻는다.

 

간절한 기도 합장.
순례단을 향해 간절한 기도 합장.
우바이 조와 회주 자승스님. 부처님 이운이 끝나고 소감을 밝히는 자리를 가졌다.
우바이 조와 회주 자승스님. 부처님 이운이 끝나고 소감을 밝히는 자리를 가졌다.
나란다 대학 터를 지나는 순례단.
나란다 대학 터를 지나는 순례단.

인도 비하르 주=박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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