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 일등공신 ‘신미스님’ 스크린에 서다
한글 창제 일등공신 ‘신미스님’ 스크린에 서다
  • 박인탁 기자
  • 승인 2019.07.16 15:4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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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7월24일 개봉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집현전 학자와 함께 한글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한 게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실존인물인 신미스님이 훈민정음 창제의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이 불교계를 중심으로 학계에서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신미스님의 부도탑이 모셔져 있는 법주사 복천암에 주석하고 있는 월성스님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사료 분석과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조철현 ‘나랏말싸미’ 감독은 세종이 유언을 통해 신미스님에게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긴 시호(諡號)를 내렸고 김만중의 <서포만필>에 훈민정음과 불교경전을 기록한 문자인 범어(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 등 관련 자료를 통해 한글 창제에 있어서의 신미스님의 역할에 주목했다.

영화제작자 출신으로 ‘나랏말싸미’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조철현 감독은 “이 땅 오천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는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이라는 생각에 그 두 가지를 영화화하겠다는 희망을 품은 지 15년째”라며 “그 두 가지 사이에 신미스님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으며 훈민정음 해례본 속에 그걸 입증하는 훈민정음 코드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작가들과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오는 7월24일 개봉하는 영화 ‘나랏말싸미’는 숭유억불시대인 조선 초기,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인 신미스님이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든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조명했다.

특히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에 모든 신하의 반대를 무릎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에 앵글을 맞췄다. 세종과 신미스님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그들의 인연을 낱줄로, 아픔과 고민속에 잉태된 한글이 어떤 원리를 갖고 마침내 태어났는지 그 창제의 과정을 씨줄로 짜여진 나랏말싸미는 그렇게 시작됐다.

세종과 신미스님의 인연과 협업, 충돌의 과정속에 그들과 함께 한 소헌왕후, 세종의 명을 받아 신미스님의 제자로 들어가 글자 만들기 프로젝트에 일조한 수양·안평대군, 신미스님의 제자인 학조·학열스님, 새로 만든 문자를 익혀 퍼뜨렸던 궁녀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함께 만든 한글 이면의 이야기를 재미와 울림 속에 전한다.

특히 위인전의 주인공이 아닌 고뇌와 번민 속에서 좌절과 성취를 함께 겪는 위대함의 뒤편에 숨어 있는 인간 세종을 지켜보는 것도 한글 창제과정의 역동성과 함께 영화 ‘나랏말싸미’를 보는 재미로 손꼽힌다.

불교경전을 기록한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 등에 능통한 신분이 천한 신미스님에게 “난 공자를 내려놓고 갈테니, 넌 부처를 내려놓고 와라”고 말하는 세종의 배포와 이에 “아니오. 나는 부처를 타고 가겠습니다. 주상은 공자를 타고 오십시오”라고 맞받아치는 신미스님의 배짱은 서로가 믿는 진리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한길을 갈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우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신미스님은 세종과의 첫 대면에서 절을 하지 않는 이유를 질문받자 “개가 절하는 것 보셨습니까? 나라에서 중을 개 취급하니 국법을 따를 뿐입니다”라며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의 대찬 스님의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영화 초반부에 일본 스님들이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더 이상 ‘팔만대장경’ 경판이 필요 없을 테니 선왕(태종)과 약속대로 일본으로 넘겨달라며 단식농성을 하자 신미스님이 산스크리트어로 능엄주를 독송하며 “100년이 걸리더라도 너희가 직접 대장경을 조성하라”는 따끔하게 일침을 날리는 장면은 최근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한일 관계속에서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랏말싸미’는 천만배우 송강호가 세종 역을, 배우 박해일이 신미스님, 전미선이 소헌왕후 역을 맡았다.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 전미선은 영화 ‘살인의 추억’ 이래 16년만에 다시 ‘나랏말싸미’로 재회했지만, 전미선은 개봉을 앞둔 지난 6월29일 생을 마감함으로써 ‘나랏말싸미’는 전 씨의 유작이 됐다.
 

특히 ‘나랏말싸미’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순천 송광사 국사전, 곡성 태안사 등 천년고찰을 비롯해 경복궁과 창덕궁 등 고궁을 스크린으로 담아냈다.

인위적인 작업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색감과 오랜 세월의 깊이가 겹겹이 쌓인 건축물들로 이뤄진 역사적인 공간들은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하며 한글 창제가 이뤄지는 1443년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또한 신미스님 역할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삭발을 한 뒤 절에서 스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등 힘겨운 노력을 펼치기도 했다.
 

7월16일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언론시사회에서 배우 송광호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7월16일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과 함께 영화 ‘나랏말싸미’ 언론시사회에서 선 조철현 감독은 “신미스님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해인사 앞 대장경 테마파크의 ‘대장경 로드’와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글의 발명>을 통해 신미스님의 한글 창제를 확신할 수 있었다”면서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자막을 넣었지만 나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이라고 말했다.
 

법주사 복천암 소장 신미스님 진영.
법주사 복천암 소장 신미스님 진영.

■ 혜각존자 신미스님은 누구?

신미스님(1403∼1479년)은 유학자 김훈의 맏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수성(守省). 사대부 집안 가문에서 태어난 수성은 성균관에서도 총망받던 인재였으나 옥구진병마사로 있던 아버지가 조모상을 치르지 않고 임지를 떠났다는 이유로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해 가족은 해체됐고 모친을 따라 피신하던 중 법주사 복천암에 출가한다. 이후 강화 정수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에서 수행하며 다양한 경전을 공부하며 학문을 통달했다.

게다가 대장경에 심취한 신미스님은 한문경전이 불법을 이해하는 데 미흡함을 느껴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몽골 파스파 문자 등을 직접 익혀 경전을 공부했다. 동생 김수온이 관직에 나가 있던 관계로 자식과 왕비를 잃은 세종대왕과 인연을 맺고 궁궐 내에 내원당(內願堂)을 짓고 법회를 주관한다.

특히 법주사 복천암을 중수하고 이곳에서 머물던 신미스님은 세종을 도와 산스크리트어를 기반으로 한글창제에 앞장섰다. 이후 신미스님은 세종과 문종의 여러 불사를 도왔을 뿐 아니라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전을 번역, 간행했을 때 이를 주관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석보상절>의 편집을 실질적으로 이끌었고 방대한 양의 <원각경>을 비롯해 <선종영가집>, <수심결> 등을 한글로 번역하기도 했다. 문종은 선왕의 뜻을 이어 신미스님을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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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래 2019-08-07 11:19:01
한글을 쓰고 있는
이 나라 國民들이라면 봐야할 영화
"나랏말싸미"

大韓民國의 佛子들이라면
반듯이 한번은 봐야만할 名畵

佛敎를 사랑하고 믿는다면
口頭禪으로만 떠들지를 말고
行動으로 실천을...

世宗大王께서 신미대사께 내린 시호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
나라(國王)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祐國利世가 큰 여운으로 다가오네요.

王朝時代에 임금이 내리는 시호라면
아무렇게나 내리지는 않을 텐데...

“나랏말싸미”의 흥행으로
우리나라의 佛敎세를 가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두번 관람했네요.
한번 더 보고 싶습니다.

역사왜곡 노노 2019-07-23 14:30:22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런 역사왜곡 영화를 만들다니, 충격이네요.

깨불자 2019-07-17 12:50:11
우리절에서는 단체관람 예약했습니다.
영화속 불교이야기에 우리 불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관람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