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 자현스님 논설위원 · 중앙승가대 교수
  • 승인 2019.07.30 18:33
  •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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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한글 창제의 일등공신인 신미스님을 조명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지난 7월24일 개봉했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기존의 정설과는 다른 접근인데다가 최근 급속도로 냉각된 한일관계까지 더해지면서 영화 나랏말싸미는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다.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자현스님이 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기고문을 730일 본지에 보내왔다. 자현스님의 기고문 전문을 게재한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16건이나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국가다. 16건 중 1997년 가장 먼저 등재되는 게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이 한글에 대한 설명서라는 점에서, 이 책의 핵심은 단연 겨레문자인 한글에 있다. 실제로 한글은 창제목적과 제작원리 등이 명확한 세계 유일의 문자라는 점에서, 언어학적인 독특한 위상을 확보한다.

설명서가 세계유산이라는 것은 본 품인 한글이 인류 문명사에서 얼마나 위대한 가치인지를 잘 나타내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글에는 창제자에 대해서만은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배운다. 그러나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한 사람의 천재성을 넘어서는 집단지성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세종이 주도한 한글 창제에는 필연적으로 실무집단에 대한 의문이 따라붙게 된다.

<훈민정음>의 찬술자는 세종을 필두로 하는 정인지·성삼문 등의 집현전 8학사이다. 이는 세종을 도운 집단지성을 집현전 학자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세종실록> 103 등의 훈민정음 반포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한글 창제를 집현전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 했을 뿐더러 반포도 극렬하게 반대했다. 때문에 1999KBS역사스페셜42회에서는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기도 한다. , 한글 창제의 실무에 집현전이 관여하지 않은 것이다.

세종 때 집현전이 아니라면, 실무공백을 채울 수 있는 집단지성은 불교밖에 없다. 특히 훈민정음의 반포 이후 간경도감을 통해 불경이 언해 된 점이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이 <상원사중창권선문>이라는 점은 핵심인물로 신미대사를 대두케 하기에 충분하다.

신미는 제자인 학렬·학조와 함께 세조에게 삼화상으로 존중받은 분이며, 세조의 창병 치료를 위해 상원사의 중창을 주창해 왕실과 사대부의 후원 속에 낙성되도록 한 인물이다. , <훈민정음>의 반포 이후에 신미는 한글과 관련된 핵심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창제와 관련해서 신미의 연관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종의 한글 창제가 애민을 기반으로 하지만, 여기에는 조선 초라는 시대 상황에 따른 왕권 강화의 필연성도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은 정도전에 의해서 사대부의 나라를 표방한 국가다. 이런 정도전의 야심은 이방원에 의해 꺾이지만, 그가 잡아 놓은 체계는 상당 부분 지속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중을 끌어들여 사대부를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측면이 발생하는데, 이런 흐름 속에 세종의 한글 창제도 존재한다. 때문에 사대부들은 반발하며, 초기 언해 역시 유교가 아닌 불교 경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글은 표의문자인 한자와는 다른 표음문자다. 또 한자와 변별력을 가지는 독립문자의 창안에서 다른 문자에 대한 검토는 필연적이다. 이때 대두될 수 있는 것이, 당시 불교를 통해 전래해 있던 표음문자인 인도어이다. 실제로 14991504년에 찬술된 성현의 <용재총화> 10에는 한글의 형태가 인도 글자를 본떠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한글과 인도어의 연관성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신미가 한글의 창제자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한글 창제에 승려가 관여했다는 점만은 충분한 타당성을 가진다.

혹자는 세종대왕 혼자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한다. 언어학상 가장 뛰어난 인물이 프랑스의 샹폴리옹이다. 그는 3개월에 하나의 언어를 익혔다는 천재며, 로제타석을 통해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한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샹폴리옹조차도 가능한 측면이 아니다.

아이폰을 만든 것은 스티브 잡스지만, 이의 완성에는 의당 잡스를 도와준 집단지성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사기>에서 한신은 한 고조 유방에게 군주는 지휘관을 부리는 사람이지, 말단을 주관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세종 역시 한글 창제의 필연성을 제기하고 일이 되도록 주관했지, 직접 모든 실무를 처리했다고까지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글 창제에 승려가 개입되었다는 주장은 결코 세종의 위대성을 폄하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종은 국가를 위해서는 불교마저도 포용하는 원융의 리더십을 보인 군주라는 긍정 평가마저 가능하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 논란은, 영화를 통해서 한국사의 시각이 보다 풍부해 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닫힌 결말이 아닌 열린 결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나랏말싸미는 이설(異說)의 환기를 통해서 사고의 지평을 열도록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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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9-08-07 10:27:12
이두를 만든 사람
일본의 가나를 만든 사람

다 언어적 전문성을 가진 승려집단에서 만들었다고 보면
신미스님의 한글 창제 기여는 너무 합리적 추론 아닌가?

조윤래 2019-08-06 21:47:10
한글을 쓰고 있는
이 나라 國民들이라면 봐야할 영화
"나랏말싸미"

大韓民國의 佛子들이라면
반듯이 한번은 봐야만할 名畵

佛敎를 사랑하고 믿는다면
口頭禪으로만 떠들지를 말고
行動으로 실천을...

世宗大王께서 신미대사께 내린 시호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
나라(國王)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祐國利世가 큰 여운으로 다가오네요.

王朝時代에 임금이 내리는 시호라면
아무렇게나 내리지는 않을 텐데...

“나랏말싸미”의 흥행으로
우리나라의 佛敎세를 가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두번 관람했네요.
한번 더 보고 싶습니다.

정찬주 2019-08-05 08:18:08
아래 댓글에 이어서

‘국왕(나라)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했다’라는 뜻인 바, 한글창제 말고는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지 않은가.
결국 병약한 문종은 박팽년 등의 극렬한 반대를 받아들여 '우국이세'는 삭제하고 '혜각존자'는 '혜각종사'로 위상을 격하시켰다. 이는 한글창제 역사 속에서 일부 집현전 학사들의 세종 친제를 못 박고 신미스님 지우기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적인 상상력이, 서두에서 예를 든 두 부분에만 갇혀 있는 일부 학자들에게 벼락같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찬주 2019-08-05 08:14:52
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을 부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논리는 실록의 두 부분이다. 첫 번째는 이른바 군왕중심사관으로서 세종의 친제(親制)로 모든 공을 돌리는 ‘임금이 (1443년에)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라는 부분과 두 번째는 ‘세종대왕이 병인년(1446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었다.’라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신미스님이 한글창제에 간여했다는 주장은 허구이자 역사왜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부분은 집현전 학사출신 사관들의 의도적인 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 지우기일 수 있다. 한글창제 반포 이후에 세종이 신미스님을 만났다고 해야만 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종이 세종의 유언에 따라 신미스님에게 우국이세(祐國利世)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존호를 내리려 할 때 집현전 학사 출신인 하위지와 박팽년이 사생결단하듯 반대한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우국이세는 ‘국왕(나라)을 도

조윤래 2019-08-04 21:21:03
한여름 몹시 무더운 어제
서울극장에서 “나랏말싸미” 영화관람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 신미스님께서
궁궐 內佛堂에서 訓民正音 창제에 참여한 내용의 영화
'나라(國王)를 도와 世上을 이롭게 한다는 祐國利世

요즘 한창 시시비비에 휘말린 나랏말싸미
하나의 문자가 탄생하기 까지는
저렇게 큰 진통이 따라야 하고 겪어야 함을 느끼며
감명 깊게 잘 본 영화!

어렵게 탄생한 佛敎映畵
그런데도 불교계에서는

멀건히 江건너 불구경만하고 놀고만 있네.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