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벤허…댓글에 주저앉은 신미대사

영화 좌절 소식에 불자들 한숨
역사왜곡 논란 대응 못한 불교
조직적 방해 세력에 발만 동동

9월5일 개막 ‘싯다르타’도 걱정
첫 부처님 뮤지컬 기대 불구
불교 지원 없어 어려운 처지

신미스님이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을 창제했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의 실패는 불교문화의 현 주소를 돌아보게 만든다. 오는 9월5일 막 올리는 부처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싯다르타’ 역시 영화와 같은 길을 걸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나랏말싸미’ 한 장면.
신미스님이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을 창제했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의 실패는 불교문화의 현 주소를 돌아보게 만든다. 오는 9월5일 막 올리는 부처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싯다르타’ 역시 영화와 같은 길을 걸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나랏말싸미’ 한 장면.

세종을 도와 신미대사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관객 100만을 넘기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한다는 보도를 보는 불자들의 마음은 몹시 아프다.

스포츠조선은 최근 보도에서 “‘나랏말싸미’는 개봉 첫날 그동안 극장가를 휘어잡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라이온 킹’(존 파브로 감독) ‘알라딘’(가이 리치 감독)을 제치고 흥행 1위에 오르는 등 모처럼 한국 영화 흥행을 예고했지만 이튿날 곧바로 ‘라이온 킹’에 밀려 2위로 하락했고 이후엔 ‘알라딘’ ‘레드슈즈’(홍성호 감독)의 역주행까지 시작되면서 계속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며 “등 돌린 관객을 잡지 못한 ‘나랏말싸미’는 올여름 잡음만 만든 채 극장가를 떠나게 됐다”고 전했다.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송강호와 박해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도 100만을 넘기지 못하고 조기에 내린 것은 충격이다.

‘나랏말싸미’ 조기 종영

실패한 이유를 놓고 여러 말이 나온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는 역사왜곡이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가 만들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신미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영과 해외보급을 금지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나왔다.

뉴시스는 지난 7월29일 “영화 ‘나랏말싸미’상영 금지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9일 ‘나랏말싸미 상영 및 해외보급 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는 글이 게재됐다. 하루도 안 돼 청원 참여인원이 4400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게시자가 “현재 인기리에 상영중인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과정을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는 역사적 근거가 매우 빈약한 스님이 한글창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을 강조, 세종대왕을 무능한 왕으로 그리고 있다”며 “물론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보호돼야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헌재의 판결에도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왜곡 논란은 영화 관객을 불러 모으는데 긍정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일부러 제작사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내용이든 시비가 일어야 관객을 모으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영화는 영화적 상상이 더해지는 창작이기 때문에 역사왜곡 시비가 붙기 마련이다.

광해군을 대신해 왕 노릇을 했다는 영화 ‘광해’, 연산군의 폭정을 그린 ‘왕의 남자’, 수양대군의 역심(逆心)을 관상으로 파악한다는 내용의 ‘관상’,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부인을 뛰어난 활솜씨로 구했다는 ‘활’ 도 역사에 상상력을 더한 영화다. 이 영화들은 모두 천만 관객을 넘기는 이른바 ‘대박’을 쳤다. 역사물이 극장에서 끊이지 않는 이유다.

특정 종교세력 조직적 방해?

영화 완성도나 흥미 등 다른 요소가 뒤떨어진 것도 아니다. 제작비도 100억 이상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다. 흥행 요소를 모두 갖추고 흥행 보증수표 두 주인공을 내세우고도 참패한 이유는 그래서 역사왜곡 논란이 아니라 다른데 있다는 것이 불자들의 생각이다. 가장 많은 공감대를 얻는 분석은 특정 세력의 조직적 방해다.

불교신문 등 불교계 매체 홈페이지에 올라온 댓글은 주로 이와 관련된 견해로 가득하다. 영화의 역사왜곡 논란을 다룬 자현스님(중앙승가대학교수) 글에 한 네티즌은 “나랏 말싸미 역사 왜곡이라고 특정 종교인들이 많이 말하는데 한마디 한다. 신미대사를 모르면 공부 좀 하고 역사 왜곡 정확하게 무엇인지 근거를 말하시오”라며 특정 종교가 조직적으로 역사 왜곡논란을 일으켰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같은 내용은 다른 불교계 매체에서도 많이 보인다. 특정 종교인들이 조직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영화를 폄훼하는 글을 올려 결국 조기 종영을 불러왔다는 것이 많은 불자들의 생각이다.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은 본지에 실린 칼럼에서 “불교의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도 눈에 띈다. 댓글 중에 특정세력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거부감이나 질투가 적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불교 내부의 대응 부족을 지적하는 견해도 많다. 한 네티즌은 불교신문 댓글에 “요즘 한창 시시비비에 휘말린 나랏말싸미, 하나의 문자가 탄생하기까지는 저렇게 큰 진통이 따라야 하고 겪어야 함을 느끼며 감명 깊게 잘 본 영화! 어렵게 탄생한 불교영화(佛敎映畵), 그런데도 불교계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만하고 놀고만 있네. 참으로 안타깝다”고 썼다. 물론 종단을 비롯해 불교계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총무원장 스님을 비롯해서 종단 부실장 스님과 종무원들이 단체 관람하고 사찰에 관람을 독려하는 등 영화의 성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쳤다. 이러한 독려 방식은 그러나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2000년대 SNS가 발달하기 전에는 총무원이 나서 관람을 독려하는 방식이 큰 힘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한 때 불교상업 영화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영화 ‘달마야 놀자’ ‘보리울의 여름’에다 독립영화 ‘길 위에서’의 성공이 그 예다. 모두 총무원장 스님이 직접 관람하고 사찰과 신도들에게 관람을 독려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번에는 SNS가 성패를 갈랐다. 영화가 간판을 걸기도 전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한글 창제 역사를 왜곡했다는 식의 음해성 글이 포털 댓글과 블로그 카페 등을 장식했다.

시사회를 보고 호평을 했던 언론들도 덩달아 돌변해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옹호하는 글은 그러나 불교신문을 비롯 불교계 매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포털의 댓글에도 옹호하는 글은 양도 절대적으로 적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화 제작을 전폭 지원하고 함께 했던 범종스님(총무원 호법국장, 전 안동 광흥사 주지)은 “조직적으로 왜곡 논란을 일으키는 댓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의 융단폭격 비난

‘나랏말싸미’의 조기종영은 영화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한글창제를 둘러싼 다양한 학문적 연구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 더 아프다. 집현전 학자가 아니라 신미스님 등 스님들이 한글창제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학술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중국을 사대하는 유학자 집단이 세종과 한글 창제를 대놓고 싫어하고 방해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조선은 한글 창제와 보급 뿐만 아니라 국난 극복에 앞장선 불교 역할 자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공식 기록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자현스님은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신미대사가 한글의 창제자라는 영화의 설정은 현존하는 자료만으로는 검증될 수 없다. 그러나 불교가 한글 창제에 결정적인 조력자이며, 신미스님이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논리적이며 차분하게 진행됐다면 우리 사회도 한층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집단’이 불교를 폄하 비하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비난하면서 역사를 풍부하게 할 좋은 기회마저 놓친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마주한 ‘불교문화’가 처한 현실은 올 여름 다시 한번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5일에는 부처님 일대기를 그린 최초의 뮤지컬 ‘싯다르타’가 올림픽 공원 내 우리금융아트홀에서 막을 올린다. 싯다르타는 부처님 일대기를 다룬 첫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1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여 아이돌 출신 가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연습이 한창이다.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다.

일부에서는 예수의 삶을 그린 세계적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같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어둡기만 하다. 제작사 측은 부처님 일대기인 만큼 조계종 등 불교계의 공인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년여 간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공동주최하겠다는 종단 유관 기관을 찾지 못했다. 실패했을시 져야 할 책임 때문에 모두 몸을 사렸다.

제작사 측이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공을 들인 총무원은 처음에는 직접 행사가 아니면 주최하지 않는다는 내부 규정을 들어서, 그리고 이후에는 시나리오 저작권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제작사측이 종단과의 공동 주최에 매달리는 이유는 사찰 협조 때문이다.

부처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뮤지컬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게 제작사는 사찰에 플래카드 하나 내거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단의 공식 인가 여부는 그만큼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싯다르타 제작사 엠에스엠시 김면수 대표는 “뮤지컬 성공의 성패는 불자들이 얼마나 많이 극장을 찾느냐에 달렸는데, 종단 협조를 받지 못하다 보니 사찰 도움을 얻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기독교 영화는 초강세

불교문화가 맥을 못추는 반면 기독교는 양적 질적인 면에서 문화 예술계를 주도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기독교관련 영화는 양적으로 풍부하고 흥행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미국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들이 몇 해 전부터 기독교 영화를 공격적으로 제작하고 큰 성공을 거둬 더 확산되는 추세다.

기독교 영화의 성공에는 극장에 잘 가지 않는 50~70대의 기독교 인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기독교 내부 평가다. 이 때문에 한국 기독교인들을 겨냥해서 성경에 기반한 영화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기독교 방송(CBS)은 시네마국을 신설해 영화를 자체 제작 보급하고 롯데엔터테인먼트, UPI 등 일반 배급사들도 기독교 영화 시장에 진출하는 등 활황세다.

기독교 측은 성경에 기반한 기독교 영화의 성공이 예술성 작품성보다 종교성에 너무 초점을 맞출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영화 뿐이 아니다. 올 여름 뮤지컬 예매율 1위도 기독교 작품 ‘벤허’다. 인터넷 예매에서 ‘벤허’는 라이센서 작품 ‘시라노’ ‘맘마미아’, 독립운동가를 그린 ‘영웅’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대표적 기독교 영화를 뮤지컬로 창작한 벤허를 1위로 만든 힘은 교회에서 나온 집단관람객들이다. ‘인터파크’에는 주말 휴일 단체 좌석은 매진됐다는 공지가 떠나지 않는다. 불자들에게 더 더운 여름이다. 

[불교신문3511호/2019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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