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을 뒤로 하며 걷는 순례단
일출을 뒤로 하며 걷는 순례단

3월5일 인도순례 25일차를 맞아 사다우아를 출발해 쁘아레푸르 코이니를 거쳐 차호히 떡끼를 지나 고팔간즈에 도착했다.

전 오전 행선에 이어 국도를 따라 걷는 길이었다. 23km 거리를 국도로만 걸었다. 대형 트럭이 질주하는 위험한 길이었다.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과 들에서 불어오는 먼지에다 비닐 등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로 걷는 내내 큰 고통을 겪었다. 25일 차 도착지 고팔간즈는 도시였다. 인도인 스탭에 따르면 장군 이름을 딴 도시라고 한다.

원래 숙영지였던 학교는 고위직 공무원 시험이 있는데도 순례단 숙소 사용을 허락했다는 사실이 전날 답사 가서야 알려줘 부랴부랴 대체지를 구해야 했다. 자신의 학교에서 그 같은 큰일이 있는지 모르고 학교장이 허락한 것이다. 무턱대고 가능하다 답부터 하고 막상 일 생기면 회피하는 공무원들의 관행 때문에 순례단 지원팀은 여러 번 낭패를 당했다.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워 공양을 마치고 나면 다들 그늘을 찾아든다.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반결제를 지났다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3일 야영을 더 하고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라를 가면 한국에서 온 불자들과 법회를 봉행한다. 보드가야에 이어 두 번 째 이틀의 호텔 숙박이 기다린다. 보드가야가 순례 본궤도의 시작이라면 쿠시나가라는 후반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한결 마음이 가볍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일어나기 힘든 새벽, 고통스런 걸음, 참기 힘든 더위, 괴로운 잠자리의 반복이다. 한국에서 세 차례 순례를 모두 동참했던 순례객 중에는 이제 마곡사 예비 순례 2일, 동화사에서 시작한 국난극복 자비순례 21일을 마치고 삼보사찰 순례 19일을 시작한 셈이라며 웃는다. 반결제를 지나 마치 거의 다 온 것처럼 풀어지는 마음을 경계하면서, 한국 순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어려운 길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순례단에 텐트를 선물한 이은재 건설공제조합이사장이 3월4일 저녁예불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순례단에 텐트를 선물한 이은재 건설공제조합이사장이 3월4일 저녁예불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누적된 피로와 더위에 지쳐가는데 한국에서 반가운 선물이 들어와 대중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순례 초부터 말썽을 피우더니 아무리 고쳐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던 텐트가 마침내 크고 튼튼한 새 걸로 전부 교체됐다. 봉은사 신도인 이은재 건설공제조합이사장이 텐트를 선물했다. 텐트 가격과 같은 운송 비용을 들인 이은재 이사장 덕분에 힘들게 했던 잠자리가 많이 나아졌다. 텐트는 피자 콜라 라면 초코파이 에너지바 등 간식과 함께 왔다. 이 선물은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 법주사 부주지 각운스님, 봉은사 장영욱 종무실장 손에 들려왔다.

원래 외부 간식은 회주 스님의 지시에 따라 일체 불허됐다. 외부에 부담을 줄 수 있는데다 힘들고 불편한 순례에 간식이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다. 꼭 필요할 때면 회주 스님이 콜라 등 간단한 현지 음료를 내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드가야 법회에 빈손으로 올 수 없었던 한국 스님과 신도 일부가 간식을 챙겨오면서 변화가 생겼다. 도보에 지친 순례단에게 달콤한 과자는 피로 회복에 특효였다. 무엇보다 기자 스태프 인도인 지원팀들이 아주 좋아해 간식이 순례단 뿐만 아니라 지원단 등에 필요함을 느꼈다.
 

간식 선물로 순례단에 큰 힘을 준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과 법주사 부주지 각운스님(왼쪽 2, 3번째)이 저녁예불에 참석했다.
간식 선물로 순례단에 큰 힘을 준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과 법주사 부주지 각운스님(왼쪽 2, 3번째)이 저녁예불에 참석했다.

봉은사가 시주한 피자, 콜라는 순례단 스님 재가자들 보다 젊은층이 대부분인 기자단 스태프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봉은사는 콜라의 시원함과 피자의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300km 떨어진 파트나에서 얼음을 넣고 밀봉을 해 가져오는 정성을 다했다.

그 정성이 더위에 지치고, 밤 소음에 잠 못 이룬 순례객들을 다시 일으켰다. 또 순례단 안전을 위해 새벽부터 애쓰는 인도 경찰, 음식 준비에 분주한 인도인 요리사 등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스님과 신도들 덕분에 이날 하루 활짝 웃고 힘을 냈다.
 

■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원을 소개합니다

- 세번째 제6조 비구니 스님조

비구니 스님 조
비구니 스님 조

순례 25일 차 행선이 끝나고 점심 공양 전 숙영지에서 비구니스님들을 만났다. 참가자는 모두 11명. 걸어서 부처님 성지를 찾는 순례를 일생 일대 유일한 기회로 여기고 매일 기도로 합격을 기원할 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참가해, 정말 열심히 걷고, 적극 참여한다. 열악한 환경, 낯선 우바새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미는 카메라, 인터뷰 등 비구니스님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는데도 씩씩하고 밝다. 인도에 처음 왔다는 스님도 있고, 스승과 제자가 함께 참여한 스님도 있다. 참가 동기는 다양했고 느낀 바는 달랐지만 수행, 부처님, 불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밝혔다.

침묵하며 합장한 도연스님(봉화토굴)을 제외한 10명의 6조 비구니스님들의 참가 동기와 느낀 점 등을 소개한다.
 

선해스님
선해스님

선해스님(한국선학회 재무이사, 행복한 행복 선문화원 원장)

삼보사찰 순례를 일이 있어 참가하지 못해 다음에는 꼭 참가하겠다고 결심하던 차 인도순례를 공지를 보고 ‘인도에서 부처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참가 신청했다. 회주스님부터 8조 까지 앞에서 이끄는 대로 함께 행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일심이고 수행이고 사부대중 불교를 꽃피우는 구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부처님 이운 행운을 얻어 정말 기뻐서 이운 전에 삼배를 했다. 정말 이런 기회를 주신 큰스님과 몸을 주신 부모님과 사부대중께 감사를 드렸다. 이운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는데 부처님께서 저를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 같은 느낌이어서 시간이 금방 갔다. 순례 수행을 삼승에 비유하면 국난극복 자비순례는 성문, 삼보사찰 순례는 연각, 인도 순례는 보살의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귀국하면 일승으로 회향하여 자타가 하나되는 순례의 길을 이루고 싶다. 행선이야말로 이 시대 필요한 수행이라 생각하며 너무 거룩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원해스님
원해스님

원해스님(서래암)

여행을 하면서 부처님 자취 서린 성지를 가고 싶었는데 너무 아름다고 평화롭고 길도 좋고 생명존중 불교 중흥 염원으로 걷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순례의 길 되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부처의 길을 걷다’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순례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해스님
지해스님

지해스님(교구본사 봉선사)

한국에서 1회부터 3차 삼보사찰 순례 까지 계속 참가했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해 우리나라 국토 순례도 하고 싶었었다. 처음에는 반겨주는 주민들을 보고 환희의 눈물 감동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

바이샬리에서 부터는 그 같은 감정은 가라앉고 조금 무거워진다,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라 까지 가시던 부처님께서도 복잡한 마음이지 않았을 까?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회주스님도 그 당시 부처님 마음과 같지 않았을 까? 어떻게 한국 불교를 중흥할 것이며 대중을 낙오 없이 이끌어 갈까? 부처님 고민과 어른 스님 고민을 생각하며 저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숙제를 안고 있는 길이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 중흥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따라와야 하니까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하게 걸었으면 한다.
 

묘수스님
묘수스님

묘수스님(교구본사 봉선사)

코로나 전 보드가야에서 기도를 하다 이 자리 위를 부처님이 수천년 전 가셨다는 생각에 인도 성지를 걸어봤으면 막연히 생각하다가 인도 순례를 보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동참했다.

바이샬리에서 아난다만 기다리고 있고 사자상 석주 북쪽만 보고 있는 것 보고 슬펐다. 쿠시나가라에는 부처님이 어디에 계실 까? 저 강에서 과연 발우를 보냈을 까? 부처님의 슬픔 등 여러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평소 경전을 읽는데 대장경을 소설 같이 다시 읽어야겠다. 이제 경전 흐름을 알겠다. 왜 이 때 사성제를 설했고 <법화경>을 여기서 설하시고, 열반경을 했는가 등. 경전으로만 보았던 제 소견이 잘못되고 무엇보다 부처님이 정말 위대한 분이라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들 근기에 맞게 법문하신 부처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이번에 순례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현조스님
현조스님

현조스님(보국사 주지)

6일 차에 다쳤다.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 버스 타면서 축원 많이 한다. 다른 대중들은 버스에 타지 않도록 해달라고. 대중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 전법륜이 굴러가는 듯 했다. 대중이 걸어가며 큰 법회를 여는 것 같은 환희를 느낀다. 포기할 까 생각했었는데 회주 스님께서 휠체어를 타서라도 다 같이 회향한다는 말씀에 환희심을 느꼈다. 인도에 와서 굉장한 공부가 됐다. 하심도 했다. 이 나라가 정말 부처님 나라구나, 환희심이 일어나는 나라구나 배웠다. 한국 가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출가 동기를 다시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생각한다.
 

정혜스님
정혜스님

정혜스님(국제포교사회 회장, 고창 마하사 주지)

인도 순례 공고를 보고 신청을 한 뒤, 부처님께서 걸으신 곳을 걷는다는데 모든 원력을 쏟으며 3년을 살았다. 순례를 하면서 대중이 부처님이구나 배우고 느꼈다, 나 혼자 못 걷는 길을 대중이 이끌어주었다. 영축산 올랐을 때 큰 환희심을 느꼈는데 이 역시 내 복이 아니고 대중이 나를 이끌어주었구나 감사를 느꼈다. 인도인들이 박수 치고 환영하는 것 보면서 순례단이 한국불교 중흥은 물론 인도불교 중흥, 세계 불교 중흥을 이룰 수 있겠다 환희심 났다.

부처님을 모셨던 제자처럼 우리도 진실한 제자가 되고 싶다. 저는 열반지를 제일 가고 싶었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두고 노파심으로 걸어가셨을 그 마음이 어땠을까? 리차비족 두고 혼자 가실 때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그 생각만 하면 걸으면서 밥 먹으면서 환희심과 정진 못한 참회와 이제 정말 진실한 제자가 되겠노라 하면서 부처님이 발 밑에 연꽃 받쳐줄 것이라 생각하면서 한 발 한 발 걷는다.
 

해인스님
해인스님

해인스님 (영광 행복숲 마하사주지)

출가한 스님인데 인도를 처음 왔다. 기회가 안 닿았다. 화두 참선 먼저 만나서 그런지, 부처님 완전한 법 만났으면서도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은 그렇게 없었다. 그래도 스님이 됐는데 인도 한번 안 가는 것은 그렇다 싶어 하던 차에 걸어서 간다는 만행결사 있다고해서 걸어서 부처님 만나고 성지 가는 것 보다 좋은 것 없겠다 싶어서 은사 스님과 함께 왔다. 가장 많이 본 것은 쓰레기다. 평생 못 본 똥이라는 똥은 다 보고 많이 보았다.

보드가야 가니 정말 아름다운 꽃과 가사를 부처님께 올리는데 그 주변 불가촉 사람들의 삶은 비참했다. 그 대비되는 현실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온전히 부처님께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걷다 보니 제가 보였다. 아버님을 미워한 마음 참회를 했고 제게 다가오는 아이들 보면서 잘 살고 못 살고 떠나서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 했던 기본 사회복지는 해야하는데 하는 한다는 생각이 떠났다. 밝은 모습은 많게 가졌다거나 적게 가졌다거나 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는 가에 달렸구나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졌다.

이제 반을 넘어서 갔지만 또 제 안에 또 다른 환희심 나는 일을 만날 것으로 생각하며 걷겠다.
 

원준스님
원준스님

원준스님 (강화 교동도 화개사 주지)

KBS ‘차마고도’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2100km를 삼보일배 보고 항상 순례를 생각하다가 불교신문 광고 보고 신청했다. 꺼져가던 신심이 다시 일으킬 계기가 되어서 얼른 신청했다.

‘공양게송’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많은 인도인들 보면서 ‘모든 생명에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하소서 사바하’라는 공양게를 저절로 한다. 부처님 길 걸었으니 목숨을 걸고 순례했던 혜초스님의 길을 가고 싶다.
 

수문스님
수문스님

수문스님(금성사 주지)

순례를 간절히 원했다. 부처님 제자 답게 흉내라도 내면서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덕진스님
덕진스님

덕진스님(용인 법륜사 대중)

만일 기도 중이다. 3차 천일 기도 중 700일이 지나서 불현듯 법화경 설한 곳을 가보고 싶다, 보드가야에서 한 달간이라도 정진하고 싶다는 원력을 지니게 됐는데, 회향 두 달을 앞두고 정말 우연하게 기회가 왔다.

상월결사라는 말도, 국내 순례 한다는 말도 그 전에는 전혀 몰랐다. 내 기도가 통했나 싶어 정말 신기했다. 발표 날 까지 엄청 기도했다. 되게 해달라고, 심지어 같이 기도 동참한 분들에게 까지 내 원력 되게 같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환희용약’이라는 말을 이런 때 쓰는구나 처음 알았다. 저녁 예불 내내 부처님께 감사합니다며 울면서 기도했다. 은사스님께서 비용을 전액 흔쾌히 부담해주셔서 한 푼도 안들이고 왔다. 정말 감사드린다.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을 가장 좋아해 상불경보살 닮고 싶구나, 저런 삶을 살게 되면 깨달음이 다른데 있지 않겠다. 제가 최대 노력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웃어주고 상냥한 말 한 마디다. 그렇게 지내다 여기와서 먼저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주니 좋아하는 구나 많이 느꼈다. 인도인들 참 초롱 초롱한 맑은 눈을 가졌다, 소 개 사람 똥이 지천인 곳에서 짐승과 한 집에서 사는데도 맑고 밝은 모습을 보고 내가 너무 나를 높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법화경 독송한 영축산에서는 계속 가슴이 뛰고 울렁대는 가슴을 잠재울 수 없었다. 많은 아라한과 천신들이 모두 내려온 듯한 빛을 느꼈다. 아, 부처님이 정말 계시는구나. 그렇게 해서 다시 믿게 됐다.

바이샬리에서 카스트보다 더한 굴레 속에서 살던 여성들의 출가를 허락해주셔서 내가 이렇게 비구니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비구니 사찰도 다시 발전하고 남방불교에 비구니 계단이 다시 설 수 있도록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바이샬리 대림정사 터에 선 비구니 스님
바이샬리 대림정사 터에 선 비구니 스님

 

위험했던 새벽 행선
위험했던 새벽 행선
따뜻한 수프로 추위를 달랜 아침공양
따뜻한 수프로 추위를 달랜 아침공양
걷는 순례단
걷는 순례단
합장인사하는 인도인
합장인사하는 인도인
쓰레기를 태우는 고약한 냄새와 연기가 나는 위험한 구간을 지나는 회주스님과 순례단
쓰레기를 태우는 고약한 냄새와 연기가 나는 위험한 구간을 지나는 회주스님과 순례단
이발소를 지나는 순례단
이발소를 지나는 순례단

인도 비하르 주=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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