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개발 기상예측 디지털 전반까지 다른 세상으로…”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보일스님
보일스님

➲ 주판에서 양자컴퓨터까지 

어렸을 적에 아버지로부터 ‘주판’을 배운 적이 있었다. 주산을 할 때마다 손때가 묻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유약이 잘 입혀져서인지는 몰라도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주판알이 꽤 신기했던 것 같다. 엄지와 검지로 주판알을 튕겨낼 때마다 손끝에 전해지는 그 촉감을 아직도 손가락은 기억하고 있다. 통통 튀는 듯 경쾌한 주판알 소리도 좋았다. 어느 정도 주판이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주판 없이 빈 책상 위에 손가락을 휘적이며 암산을 곧잘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산수를 정확하고 빨리 할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어느 동네이든 학교 근처에는 주산학원 하나쯤은 어딜 가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샌가부터 전자계산기나 컴퓨터가 주판을 대신하게 되었고, 주산학원이 있던 자리는 PC방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이제 주판은 컴퓨터에 밀려서 우리 주변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 물건 중 하나가 되었다. 아마도 현재 디지털 세대들은 ‘주판’의 존재마저도 모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는 지난 50여 년 동안 기기 자체의 비약적 발전뿐만 아니라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퓨터를 통해 인간을 우주선에 싣고 달에 보낸 것은 물론 현재는 화성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연구와 탐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컴퓨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명 중 하나라고들 말한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형태의 컴퓨터가 처음 개발된 이후 지금까지 갈수록 소형화, 가속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컴퓨터에 아무리 최첨단 성능이 집적되어 있다고 해도, 논리소자를 원자 수준 속에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예측하기 까다로운 원자 단위의 미시 세계를 제어하기에는 아직 기술상의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기존의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고안하게 되었는데 바로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이다. 한 세대에서 주판과 양자 컴퓨터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세상이다. 세상의 변화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 양자역학과 딥러닝의 만남 

양자컴퓨터 하면 무엇보다도 월등하고 압도적인 연산 능력이다.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디지털 컴퓨터가 이진법, 즉 0과 1이라는 두 가지의 상태로 정보를 구분한다면,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상태도 정보로 처리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어떻게 0과 1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양자 물리학자 닉 허버트(Nick Herbert)는 말했다. “양자적 실체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고 이 두 가지 속성이 (동시에) 관찰되기 전까지는 완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이것은 동시에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고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맴돌고 있다. 이 내용이 바로 양자 영역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양자역학의 기묘한 특성들의 요점이다.” 

실제로 양자 세계에서는 농담 같은 황당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양자론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일상적 감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하나의 전자가 벽을 꿰뚫고 지나가기도 하고, 텅 빈 공간에서 갑자기 생겨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또는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문을 통과하기도 한다. 이쯤 듣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양자역학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이제까지 알거나 익숙한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일이 양자 세계에서는 벌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양자론을 이상하게 또는 신비하게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도 양자론 덕분에 반도체를 이해할 수 있고, 휴대전화 같은 디지털 기기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양자론은 실험실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주변에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양자역학은 어렵다. 누군가 양자역학에 대해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의심해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분야의 대부분의 천재가 그렇게 비슷한 말들을 해 왔다. 이들의 태도는 대개가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양자 컴퓨터’를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이 ‘양자 컴퓨터’가 딥러닝 기술의 개발로 인한 인공지능의 비약적 성장과 맞물린다는 점이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인공지능은 폭발적 수준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추게 된다. 

물론 당장에 각자가 이 ‘양자 컴퓨터’를 스마트폰에 탑재하고 다니거나, 집집마다 가정용 컴퓨터로 활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대와 미래 세대 변화의 엄청난 동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양자 컴퓨터’와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의 비약적 성장은 서로 맞물린다. 이 두 기술이 결합한다면, 기존의 컴퓨터를 가지고 계산한다면 수 백 년 이상 걸려야 풀 수 있는 암호 체계나 복잡한 연산도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면 매우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양자 컴퓨터를 탑재한 인공지능은 폭발적 수준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선보이게 될 것이고, 세상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양자 컴퓨터’와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의 비약적 성장은 서로 맞물린다. 이 두 기술이 결합한다면, 기존의 컴퓨터를 가지고 계산한다면 수 백 년 이상 걸려야 풀 수 있는 암호 체계나 복잡한 연산도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면 매우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양자 컴퓨터를 탑재한 인공지능은 폭발적 수준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선보이게 될 것이고, 세상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비트와 큐빗

우선 기존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디지털 컴퓨터는 2진법 논리 회로 즉, 0과 1로 표시되는 방식이다. 스위치를 켜면 1, 끄면 0인 상태로 전기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는 상태이다. 이 정보를 처리하는 최소 단위를 ‘비트(Bit)’라고 한다.

반면 양자역학 원리에 기반한 ‘양자 컴퓨터’는 소위 ‘불확정성 원리’를 응용한다. 즉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상태의 중첩에 의해 측정값이 확률적으로 주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정보의 최소 처리 단위를 ‘큐비트(Qbit)’라고 하는데, 이 양자비트는 비트 하나 값으로 0과 1의 두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 컴퓨터가 1이든 0이든 어느 하나의 상태만을 표시하는 것이 1비트라면, 양자 컴퓨터에서는 1큐비트가 1과0 두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양자 컴퓨터에서 2개의 큐비트가 있으면, 모두 네 가지의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의 수(00, 01, 10, 11)를 중첩할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은 데이터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 큐빗이 커질수록 동시에 처리 가능한 데이터의 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기존의 컴퓨터를 가지고 계산한다면 수백 년 이상 걸려야 풀 수 있는 암호 체계나 복잡한 연산도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면 매우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 속도 차이에서 최근 연구 개발한 구글의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 처리 속도의 1억 배에 이른다고 하니, 말문이 막히는 수준이다. 

➲ 1억배 빠른 컴퓨터

지난 2015년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구글은 그들의 야심찬 연구 결과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들 연구팀이 발표한 내용은 다름 아닌 양자컴퓨터의 성능 테스트 결과였다. 소위 ‘D-wave 시스템’이라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보다 무려 1억 배 빠른 성능을 보여주는 시스템을 세상에 공개한 것이었다. 비현실적인 내용이니 숫자만이라도 기억해 두자. 자그마치 1억 배라고 한다. 1억 배. 느낌이 오지 않는다. 굳이 환산해 보자면,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컴퓨터가 계산하는데 3년 2개월 걸리는 데이터 처리 속도를 단 1초 만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실 ‘양자 컴퓨터’라는 개념은 1980년대에 처음 고안된 이후, 본격적으로 상용화 단계까지 가려면 금세기 후반 정도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D-Wave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이 ‘양자 컴퓨터’가 놀랍게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소위 ‘인공지능의 겨울’을 지나다가 갑작스레 딥러닝 기술을 통해 인공지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 흡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양자 컴퓨터’의 등장과 딥러닝의 등장 시점은 묘하게 겹친다. 이 기자회견 후 정확히 3개월 뒤, 서울에서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다. 

➲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 그리고 양자 컴퓨터… 

그런데 이토록 빠른 컴퓨터가 왜 필요할까? 과거와 현재까지의 컴퓨터를 ‘고전 컴퓨터’라고 했을 때, ‘고전 컴퓨터’는 소위 ‘조합 최적화 문제’, ‘머신러닝 학습’, ‘양자화학 계산’ 등에서 아직은 기대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양자 컴퓨터가 바로 고전 컴퓨터가 지닌 난점을 극복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중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성능 변화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양자화학 계산은 신소재 개발이나 신약 개발에 효율적이다. 요즘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필요한 경우, 수많은 반복적 실험과 계산, 즉 시뮬레이션을 통해 성분 간 최적의 조합을 도출해 내야 한다. 이 경우 기존의 컴퓨터로는 데이터 양이 늘어날수록 시뮬레이션에 드는 시간이 비례할 수밖에 없다.

양자 컴퓨터가 이를 대신할 경우, 최단 시간에 최적의 효율을 보이는 조합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다면, 학문 자체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의학이나 기상 예측, 디지털 산업 전반에 걸쳐서 엄청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딥러닝에서도 획기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딥러닝 기술을 통해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다고 해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계산량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양자 머신러닝에 관심을 두고 양자 알고리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군사 안보 분야나 온라인 인터넷 뱅킹, 신용카드 등에 사용되는 암호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축해야 할 것이다.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연산하면 현재 수준의 암호체계가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하더라도 이 시스템을 해킹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 될 것이다. 

[불교신문3623호/2020년10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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