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티끌에 시방세계…가장 작은 것들의 특별함”

“무한히 작은 것의 역할은 무한히 크다.”
-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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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관 속의 나노로봇

‘세포 크기의 잠수정에 사람이 타고 인체 속을 이리저리 탐험한다?’ 이런 종류의 상상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물론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말이다. 특히 어렸을 적 보았던 영화 ‘이너스페이스(INNER SPACE, 1987. 죠 단테 감독)’는 이런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보면 살짝 촌스럽고 유치하긴 하다. 어쨌든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세포 크기의 잠수정이 바로 지금의 ‘나노로봇(Nano robot)’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만 같은 이 ‘나노로봇’ 연구가 현재 전 세계에서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의 경우, 박종오 교수팀은 박테리아를 이용한 ‘박테리오봇’을 개발했다. 캡슐형 구조체로 이루어진 이 나노로봇은 크기가 3마이크로미터(μm)에 지나지 않는다. 캡슐 안에 항암제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치료 약물을 넣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쥐를 이용한 실제 실험에서는, 이 ‘박테리오봇’은 암세포가 분비하는 해로운 물질들을 포착하고 움직이면서 독성물질들을 제거해 나갔다. 이 증상뿐만 아니라 대장암이나 유방암 세포를 실험용 쥐에 이식한 상태에서 자라게 한 후, ‘박테리오봇’을 투입해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한 실험에도 성공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상윤 연구팀이 개발한 마이크로 로봇은 지름이 1밀리미터(mn)에 불과하다. 이 마이크로 로봇은 혈관 속을 유영하면서 병변을 관찰하고, 향후 암으로 전이될 수 있는 혈전을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심지어 이 로봇은 이전의 의료용 ‘나노로봇’과는 달리, 그 미세한 크기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소위 ‘유체 가압 추진방식’으로 혈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기술 수준이다. 그리고 김민준 교수팀은 인체 내의 혈액 등 유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율적으로 자신의 형태를 변형할 수 있는 일명 ‘트랜스포머 나노로봇’을 개발했다. 

여기까지 소개하면, 아무리 작다고 해도 금속성의 물체가 내 몸 속에 들어온다고 해서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노 기술과 바이오 기술이 결합한 형태의 ‘나노로봇’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금속성의 물질이 아닌 생체 친화적인 물질들을 개발하여 로봇 소재로 활용하면서 그 거부감을 없애고 있다. 

실제로 스위스 로잔공대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로봇’은 아예 모터를 없애고 생체소재를 사용한다. 나노 입자 속의 자성을 이용해서 전자기장을 받으면 마치 섬모처럼 스스로 움직이면서 인체 내의 적재적소에 필요한 약물을 운반할 수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로봇은 금 나노와이어에 혈소판과 적혈구 세포막의 혼합체를 코팅해서 만들어졌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코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생체 친화적인 코팅 방식을 통해 생체 거부반응으로 인한 생체 오염으로부터 나노로봇과 인체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나노로봇이 박테리아와 같은 병원체를 붙들어 묶어서, 병원체에서 만들어지는 독소를 흡수하고 중화할 수 있게 된다. 

이 나노로봇은 초음파를 통해 구동되면서 인체를 돌아다니게 된다. 이 연구의 향후 목표는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금 나노와이어 소재도 생체에서 분해되어 자연 소멸하는 소위 ‘생분해(Biodegradability)’ 나노로봇 개발이다. 이쯤 되면 로봇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어색해질 것이다. 나노로봇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유기체로서 탄생하고 자연스럽게 소멸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마치 신이 된 것처럼 그 과정을 설계하고 통제하게 된다. 

➲ 인간이 기계가 되고 기계가 인간이 된다?

세계적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2030년이 되면, 나노로봇이 인간의 생물학적 신경 시스템과 디지털 데이터를 연결하게 되리라 예측한다. 그에 따르면, 나노기술 혁명은 우리 몸과 뇌, 우리가 만나는 세상 전부를 분자 단위로 하나하나 재설계하고 재조립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나노로봇을 통해 인체 세포핵 속의 생물학적 유전 정보를 나노 기술로 만든 신물질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유전 암호를 지닌 RNA, 리보솜, 생물학적 조립에 필요한 컴퓨터 요소들의 활동을 모방하는 기계를 집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나노로봇의 제조 과정에서 정교하게 분자 차원의 통제를 할 수 있다면, 수억 수조 개의 나노로봇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적혈구보다도 작은 크기의 수많은 로봇이 자기 복제를 통해 로봇의 숫자를 늘리고 혈류를 타고 다니면서 암세포와 싸우게 된다. 

만일 신체가 건강한 경우에는, 독소를 제거하고, DNA 오류를 수정하고, 세포막을 수선하면서, 동맥경화증을 완화하거나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일들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커즈와일의 이 상상력은 현재 빠른 속도로 실현되어가고 있거나, 구체화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되어 간다면, 결국 인간의 생물학적 뇌나 육체는 그것이 생체친화적이든 아니든 간에 부지불식간에 기계와 결합하거나 또는 대체되어 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노로봇의 제조 과정에서 정교하게 분자 차원의 통제를 할 수 있다면, 수억 수조 개의 나노로봇 복제가 가능해진다. 이 경우, 적혈구보다도 작은 크기의 수많은 로봇들이 자기 복제를 통해 로봇의 숫자를 늘리고 혈류를 타고 다니면서 암세포와 싸우게 된다. 만일 신체가 건강한 경우에는, 독소를 제거하고, DNA 오류를 수정하고, 세포막을 수선하면서, 동맥경화증을 완화하거나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일들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앞으로 나노로봇의 제조 과정에서 정교하게 분자 차원의 통제를 할 수 있다면, 수억 수조 개의 나노로봇 복제가 가능해진다. 이 경우, 적혈구보다도 작은 크기의 수많은 로봇들이 자기 복제를 통해 로봇의 숫자를 늘리고 혈류를 타고 다니면서 암세포와 싸우게 된다. 만일 신체가 건강한 경우에는, 독소를 제거하고, DNA 오류를 수정하고, 세포막을 수선하면서, 동맥경화증을 완화하거나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일들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나노와 극미 

‘나노’ 하면 떠오르는 것이 불교 전통 속에서는 ‘극미(極微)라고 할 수 있다. 불교 전통에서 물질에 대한 정확한 통찰은, 단순히 외부대상 세계의 존재론적 위상을 수립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으로서 수행론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전제일 수밖에 없었다. 불교의 물질 개념에 처음부터 원자론을 논의한 것은 아니었다. 아비달마 전통이 발전하면서부터 이 내용이 구체화 되었다. 이 세상 물질의 궁극의 구성요소까지 분석해 들어간다고 할 때, 최종적으로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기본 입자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몇 가지 종류의 기본 입자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구사론> 전통에서는 이 세상 물질세계는 ‘인식하는 오근(五根)’과 ‘인식되는 오경(五境)’의 열 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영역은 모두 ‘극미’라는 소립자로 되어있고, 이것은 ‘사대종’과 ‘소조색’로 나뉜다. 사대종은 지·수·화·풍이라는 네 종류의 입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하나가 독자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묶여서 조합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사대종(四大種)’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소조색(所造色)’이라고 하는 입자는 인식하는 물질인 감각기관과 인식되는 물질인 외부대상이 포함된다. 소조색은 4대종과는 달리 상황에 의존해서 드러나는 것도 있고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간 장미꽃을 본다고 했을 때, 눈에 안근이라는 극미의 작용으로 장미꽃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눈 이외의 장소에는 안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극미가 작용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빨간색’이라는 입자를 눈으로 보고, ‘빨간색’을 마음과 연결된 인식하는 시각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대종’이라는 조합은 모든 물질세계에 걸쳐 한결같이 두루 나타나고, 소조색은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국 <구사론> 전통에서 물질이라는 것은 ‘사대종’과 ‘소조색’의 복합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실 이 ‘극미론’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일단 구사론 전통에서 이해하는 세계가 서양의 ‘물질’이나 ‘정신’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당장에 ‘극미가 무엇인가’에서부터 극미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불교 사상사 내에서 수많은 논쟁이 오랫동안 전개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미론은 불교 철학 전통 속에서 인식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잘 보여주며, 이것은 단순히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수행론과 직결된 실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중요한 주제이다. 

➲ ‘작은 것들을 위한 시(詩)’와 법성게

방탄소년단은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 노래한다. “사소한 게 사소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너라는 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특별하지.” 워낙 유명한 곡이니, 굳이 이 노래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생뚱맞게도 나노기술을 떠 올린다. 나노기술이야말로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사소하지 않게 만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미세한 것들조차도 모두 특별함을 느끼게 한다. 

나노 단위가 이럴진대, 하물며 미물 중생이라 할지라도 어찌 특별하지 않겠는가. 의상조사는 <법성게(法性偈)>에서 노래했다.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 담겨있고, 모든 티끌 속의 낱낱 세계 또한 그러하네(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티끌 하나에도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말이 단순히 종교적 감성에서 나오는 수사나 은유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를 설파하고 있음을 나노기술은 보여주고 있다. 

한때 광고를 통해서 ‘은 나노’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은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가격 때문에라도 손쉽게 일상에 활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노기술을 활용해서 은을 나노 단위로 아주 얇게 썰어 낼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같은 부피라도 자르면 자를수록 표면적은 늘어나게 되는 이치이다. 계속 자르고 잘라서 표면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그에 비례해서 외부 환경과 접촉면은 넓어지게 된다. 

즉 최소량의 은을 가지고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 요즘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는 때에, 이 항균 효과를 사용하여 옷감, 세탁기, 물통 등등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물건에 활용한다면 더욱 유용할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 사소한 것들이라고 해서 그것을 고정적 또는 확정적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변하기 쉽고, 외부 조건과 부합되는 인연을 만나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의 역할을 해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나노기술은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방편이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나노 기술은 어쩌면 이 세상은 작은 것들의 특별함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작고 미미한 것들이라고 해서 사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말했듯이 “무한히 작은 것의 역할은 무한히 크다.”

[불교신문3621호/2020년10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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