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스님이 들려주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54> 인공지능과 액정 화면 속의 자아①
[보일스님이 들려주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54> 인공지능과 액정 화면 속의 자아①
  • 보일스님 해인총림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대행
  • 승인 2020.11.09 13:12
  • 호수 3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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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당신 마음을 데이터로 속속 읽어낸다면?

“정신은 인간 속에 거주하며, 인간을 존재할 수 있게 하며, 그 자체가 몸에 대한 힘의 지배권 행사를 돕는 한 요소가 된다. 정신은 정치적 해부의 효과인 동시에 그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정신은 몸을 가두는 감옥이다.”
-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중에서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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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정 화면에 갇힌 나

스마트폰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일까? 아니면 ‘유리 감옥’일까? 지난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최초의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세계는 열광했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고, 인터넷을 손안에서 검색하게 되면서, 더욱 투명하고 민주적인 세상에 살게 되리라는 희망도 품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인터넷 세상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데이터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꿈을 쉽고 빠르게 실현해 주는 도구가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하게 했다. 스티브 잡스는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먹다 남은 사과를 상징으로 하는 그 회사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매장 앞에서 장사진을 이룬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했던 제품 발표회 이후 10년 남짓한 사이에 디지털 환경은 소용돌이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인터넷은 어느덧 5G 시대로 진입하면서 데이터의 처리 속도도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예전에 집에서 인터넷 쓴다고 집 전화가 불통되거나 인터넷 속도 느려지던 때를 회상해 보라. 인터넷 선을 전화 회선과 공용으로 쓰던 시절 말이다. 그 변화 과정 동안, 구글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같은 글로벌 회사들은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 되었다. 모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류하고 저장한다. 그리고 적절하게 활용한다. 

그게 다일까? 과연 ‘적절하게’ 세상 모든 것들의 데이터가 이용되고 있을까? 이들 기업은 사람들에게 아주 예쁘게 디자인된 메일 계정과 일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된 디지털 달력도 제공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일정 용량의 개인전용 디지털 저장 공간도 제공한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공짜라는 사실이다. 인터넷 디지털 세상이 왠지 나에게 호의적인 것 같다. 기분 좋은 일이다. 이렇게나 유용한 도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니…. 고맙고 왠지 미안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요즘엔 누구나 다 인터넷에서 이메일 계정 하나쯤은 갖고 있다. 그럼 이 인터넷 검색엔진 업체들이 자선단체라도 된단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이런 혜택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빨아들일 목적으로 일종의 파이프라인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어렸을 적 바닷가나 강가에 담가두는 통발 있지 않은가. 전날 미리 설치해두고, 다음 날 아침에 가보면 이런저런 물고기들이 서로 앞다투어 들어와 있다. 애써 일일이 낚시질 할 필요도 없이 물고기들이 알아서 그냥 들어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현재의 인터넷 검색 엔진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기반, 즉 플랫폼이라는 것이 바로 이 통발과도 같다. 한 번 설치해 놓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들어와서 기꺼이 자신들의 인적 사항뿐만 아니라 모든 데이터를 별 거리낌 없이 제공한다.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충분히 고지되지 않은 경고와 고민 없는 동의 결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데이터 회사들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소위 ‘역 감시’ 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전 세대의 논의처럼 이 모든 것이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거나,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식의 단순하고 순진한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데이터 독점 문제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데이터 감시사회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산업의 시대이다. 딥러닝을 장착한 인공지능이 인간들의 마음을 데이터를 통해 속속들이 읽어내는 암울한 미래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인간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데이터의 무더기로 벽을 쌓아올려, 자신을 욕망의 감옥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산업의 시대이다. 딥러닝을 장착한 인공지능이 인간들의 마음을 데이터를 통해 속속들이 읽어내는 암울한 미래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인간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데이터의 무더기로 벽을 쌓아올려, 자신을 욕망의 감옥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누구를 위한 ‘좋아요’ 인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공감하는 뉴스를 읽거나, 친구의 새로운 여행사진을 보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애견동물 사진을 볼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모양의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이 ‘좋아요’ 버튼을 통해 친구나 지인들의 일상에 호감을 표시하는 훈훈함이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좋아요’ 를 클릭하는 순간, 나의 취향과 선호도는 내 친구가 뿐만 아니라 동시에 소셜 미디어 업체에도 전달되는 것이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댓글을 달 때뿐만 아니라, 유튜브, 넷플릭스, 등등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에서도 우리가 클릭한 모든 내용, 시청한 시간, 이용시간 패턴, 특정 지역별, 연령별, 성별, 사람들의 선호도에 대한 데이터를 업체에 몰아주는 형국이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업체가 보유하는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이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을 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딥러닝이 작동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제 적극적으로 당신에게 추천하기 시작한다. 다음에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과 책, 음악 등을 보여준다. 요즘 하는 말로 ‘취향 저격’이다.

이용자는 깜짝 놀라게 된다. 친구도 애인도 모르는 내 취향을 ‘어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아줄까’ 하면서 감동을 받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금까지 이용자가 선호하는 영상 장르, 시청 기록, 시청 시간대, 구매 이력 등등을 모든 데이터를 가진 인공지능이 다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전 세계의 수많은 가입자가 데이터를 매일 매 순간 클릭을 통해 만들어 준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린 어쩌면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넷플릭스, 유튜브의 데이터 공급 직원이 되어 가고 있다. 한 푼의 대가가 받지 않는 무급 노동자 또는 자원봉사자인 셈이다. 이용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새로운 데이터를 의도치 않게 제공하게 된다. 항상 강조하는 사실이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가 곧 돈이고, 권력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회사가 살아남는다. 이들 디지털 기반 회사들은 광고 수익이 최종적 목표라기보다는 데이터 수집이 더 큰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활용하는 전체 과정에서 어떠한 대가를 사회적으로 지불하지 않는다. 전기를 많이 쓰면 전기세를 내고, 수도를 내면 수도세를 내듯이 데이터를 많이 수집하고 저장하면 활용하면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일 텐에 말이다. 

➲ 디지털 ‘슬롯머신’ 

지하철 안이나 카페, 학교, 공공장소 어디든 할 것 없이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집중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단순히 통화 용도로만 핸드폰을 들고 다니던 시절에 볼 수 있던 장면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지 불과 몇 년 사이의 변화이다. 

여기서 잘 관찰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손동작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대부분 출시된 스마트폰의 형태는 직사각형 형태이다. 길쭉한 액정화면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읽을거리나 볼거리를 위 아래로 걷어 올리듯이 재빨리 움직인다. 한번 휘리릭 하고 액정 화면 속 내용이 위로 사라지고 나서 다시 내릴 때쯤이면 내용이 수시로 바뀐다.

이용자가 관심 있을 만한 내용으로 말이다. 내 손끝이 머물고 터치를 한 기사나 사진은 빅데이터로 저장된다. 다시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반복적으로 새로운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이용자들은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 특별히 재밌거나 꼭 필요한 정보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혹자는 이것을 슬롯머신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마치 도박장에서 슬롯머신을 작동시키듯이 손가락으로 액정화면을 당겨서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만큼 중독성이 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끊임없이 주목하게 하고,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에서 얻어내는 정보들은 대부분 이용자가 보고 싶어 하거나, 듣고 싶어 하거나,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이용자 맞춤형의 정보인 셈이다. 어쩌면 이 시스템 자체가 이용자가 중독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일 수도 있다. 

지난 2년 동안 연재하면서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아왔다. 과연 인공지능이 미래에 인간을 지배할 것 같냐고 말이다. 만약 그 인공지능이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플랫폼 회사들의 인공지능을 의미한다면 이미 우리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교도라면 이런 논법에 익숙하다. 즉,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지 그 도구 자체는 본래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그 도구가 이미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욕망과 의지를 가진 수단으로써 기능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산업의 시대이다. 딥러닝을 장착한 인공지능이 인간들의 마음을 데이터를 통해 속속들이 읽어내는 암울한 미래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인간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데이터의 무더기로 벽을 쌓아올려, 자신을 욕망의 감옥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불교신문3627호/2020년11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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