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스님이 들려주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48> 4차 산업혁명과 생체 이식 칩①
[보일스님이 들려주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48> 4차 산업혁명과 생체 이식 칩①
  • 보일스님 해인총림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대행
  • 승인 2020.09.12 12:41
  • 호수 3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다?
인간친화적인 인공지능!

“구전 문화가 글의 도래를 막지 못했듯이, 우리는 사람들이 디지털적 기억을 채택하는 추세를 막지 못한다.”
- 테드 창의 <숨>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중에서 

 

보일스님

➲ 인공지능이 두려운가요?

인공지능은 이제 파죽지세로 인간의 삶의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불과 5, 6년 전과 비교해봐도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이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제 막 고민과 토론이 시작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는 어떨까. 대부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인공지능 연구와 개발을 금지하는 것이 옳은가? 인간은 알 수 없는 새로운 대상에 대해서 취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적대시하거나 아니면 친화되는 것이다. 선택은 각자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등의 배경에 따른 신념의 차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적대시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반대로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인간 친화적인 인공지능 개발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론 머스크이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의 위협을 계속해서 경고해 오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의 개발은 핵무기의 위협보다 더 위험하고 문명에 대한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을 이용해서 사업을 하는 그가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를 이야기하다니. 어쩌면 누구보다도 인공지능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가져올 충격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로 경고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드는 자신의 회사인 테슬라를 포함한 진화된 인공지능을 만드는 회사는 모두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는데, 막상 사고가 터져 규제하려고 하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2030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모든 부문에서 인간을 앞서 나갈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는 어차피 시작된 인공지능 개발기술이라면, 그 기술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오픈A.I’라는 비영리 연구소를 설립해서 인간 친화적인 인공지능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과 인간을 대결 구도 속에서 양자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인공지능과 연결하려는 구상이다. 인공지능 연구 개발과 활용에 관련된 전 영역에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고 개입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려는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야심차지만 위험하다. 불안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연결되고 통합되어가는 것을 상상해 보자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이 경우 과연 자아가 확장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만약 확장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을 통해 확대된 인간 신체 외부의 기능과 능력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과 질문들이 꼬리를 잇는다. 

➲ 생각만으로 작동시키는 대리 로봇 

갑자기 길을 가던 행인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백화점이든 지하철 안이든, 곳곳에서 움직이고 활동하던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도로에는 마치 마네킹처럼 여기저기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시내는 일순간에 혼란과 정적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요하다. 한참 뒤 각각의 집에 있던 부스스한 차림의 인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집 밖으로 어색하게 걸어 나온다. 하나같이 초라하고 남루하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 실내에만 있어서인지 다들 하나같이 창백하고 어두운 표정이다. 무슨 일일까.

이것은 영화 <써로게이츠(Surrogates,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 2009)>의 마지막 장면이다. 미래에 인간들은 자신들의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단지 인간의 뇌파를 이용해 작동시킬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낸다. 애초에는 신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인공신체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인간들의 욕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인간들 자신들의 편의와 안락 또는 쾌락을 위해 이 자신의 대리인 역할을 한 로봇 즉 ‘써로케이트’에 접속해서 일상생활을 한다. 회사나 학교 심지어 여가 생활도 대리 로봇을 보내서 대신하게 한다. 심지어 전쟁이나 사고로 그 대리 로봇이 파괴되어도 그것을 조종하고 있는 사람에게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범죄율은 치솟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상에 너무나 많은 인공신체인 대리 로봇들이 활동하면서 인간들은 이를 거부하며 은둔생활을 하는 집단까지 생겨난다. 오히려 인간이 사회적 소수자가 된 것이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만으로도 현실 세계에서 하고자 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황당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계획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을 컴퓨터나 인터넷에 디지털 형태로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작은 전극을 인간의 두뇌에 이식한다는 구상을 실현하려고 한다. 출처=www.shutterstock.com
가만히 누워서 생각만으로도 현실 세계에서 하고자 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황당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계획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을 컴퓨터나 인터넷에 디지털 형태로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작은 전극을 인간의 두뇌에 이식한다는 구상을 실현하려고 한다. 출처=www.shutterstock.com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리 로봇들은 모두 잘 생기고, 젊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다. 반면 인간들은 자신들의 어두운 방구석에 누워 피폐한 행색이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각자의 대리 로봇에 접속해서, 대리 로봇의 외모를 가꾸는 것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위적으로 인간과 대리 로봇의 연결을 차단했을 경우에 벌어진 광경이다. 놀랍게도 거리나 외부에서 활동하는 있는 존재들 전부가 인간이 아닌 대리 로봇이었던 것이다. 인간들은 그저 자신들의 집에만 틀어박혀 로봇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게 될 시대의 음울한 광경이다. 

누구나 한 번쯤 출근하기가 싫다. 학교 가기가 싫다. 나 대신 누군가가 해줬으면 하는 상상 누구나 했을 법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인간이 하기 싫은 일이나 궂은 일 또는 위험한 일은 이미 로봇이 대신 하고 있거나, 준비되고 있다. 당장 극도의 힘든 노동이나 전쟁터를 생각해 보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직접 해보고 싶지만, 신체적, 정신적 한계 때문에 망설여지는 경우도 대리 로봇을 통해 과감해 수 있다. 게임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현실 생활에서 말이다. 

➲ 인간 대 기계? 

인간은 인공지능 로봇에 비해 느리다. 인간의 업무수행 능력을 인공지능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세돌을 눈물 흘리게 했던 ‘알파고’의 하루를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환산한다면 인간의 35.7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 당시의 ‘알파고’는 이미 업계에서 화석 취급을 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임에 특화된 인공지능인 ‘알파스타(AlphaStar)’는 전문 프로게이머와 총 11번의 ‘스타크래프트2’ 게임을 해서 10대1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알파스타’는 게임이라는 특성상 반응속도와 입력 속도 수준을 인간 수준으로 낮추는 핸디캡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했다. 이 게임을 앞두고 ‘알파스타’는 자신을 상대로 1억2000만 번의 연습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은 쉬지 않고 191년 동안 게임을 해야 채울 수 있는 연습량이다.

이 정도인데도 인간을 인공지능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온당할까. 인간 대 기계라는 대결 구도 속에서 인공지능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불합리한 이유이다. 이 관점에서 인간 친화적인 인공지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매달리지 않고, 인공지능과의 연결과 통합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길 수 없으니, 같은 편이 되는 게 낫다는 전략인지 모를 일이다. 

➲ 뇌와 인터넷 연결하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만으로도 현실 세계에서 하고자 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황당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계획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을 컴퓨터나 인터넷에 디지털 형태로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작은 전극을 인간의 두뇌에 이식한다는 구상을 실현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신호를 얻고 이 신호들을 대량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 신호를 컴퓨터와 인터넷 세계에서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 생각이 실현 가능한지를 예상해보려면, 구체적으로 인간의 신호 전달 체계에 대해 간단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몸에서 느낀 감각을 말초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뇌는 이 감각을 받아들인 후에 다시 말초에 명령을 내리거나 운동을 하거나 생체 기능을 조절한다. 이때 명령을 내리거나 감각을 전달할 때 모든 정보가 뇌 안의 ‘뉴런(neuron)’이라는 신경세포를 통해 전달된다. 뉴런은 약 860억 개나 존재하는데, 마치 복잡한 그물처럼 얽혀있으면서 생체정보를 전류의 형태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뉴런에서는 나트륨 이온, 칼슘 이온 같은 물질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농도 차이를 발생시켜서 일종의 전압이 생긴다. 전압이 생기면 전류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 흐름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뉴런이 다음 뉴런으로 정보를 전달할 때 서로 떨어져 있는 구간을 ‘시냅스(synapse)’라고 한다. 바로 여기서 전기신호를 화학물질로 변환해서 다음 뉴런으로 정보를 보내면, 다음 뉴런은 그 화학물질을 받아서 다시 전기신호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뉴런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전기장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때, 그 사이에 전극을 집어넣어서 전기장 신호를 중간에서 가로챌 수 있다면, 이 신호들을 분석해 각각의 신호의 의미와 결과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현재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로부터 뇌파를 수집하고, 기계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불교신문3613호/2020년9월12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