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도입 쟁점화…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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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노동력 부재의 시대, 4차 산업혁명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팬데믹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정책과 시스템이 시도되고 있다. 이 ‘이중충격’은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던 상황들을 현재 시점에서 경험하게 한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대량실업을 우려하던 차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대량실업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코로나 팬데믹 이전 4%였던 실업률이 올해 안에 30%가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쯤 되면 거의 대공황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즘 두 번째 대규모 코로나 확산 사태 속에서, 소상공인은 물론 국민들 상당수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도치 않게, 인공지능으로 인한 실업 충격을 코로나 팬데믹 충격으로 선행학습하게 된 상황이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자국의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앞 다퉈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기본소득’이 우리나라에서도 소개가 되기 시작했고, 정치권에서도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사실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은 비슷한 듯하지만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전 국민에게 개개인에 나눠준 재난지원금 수급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기본소득이라는 쟁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작이 어떻든 간에 4차 산업혁명의 영향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에 대한 고민마저 앞당기게 된 것이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어쩌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선뜻 인정하기 어려운 말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 또는 위정자라면 국민을 먹여 살릴 의무가 있는 것이다.

특히 당장 도움이 필요한 국민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같은 경제 공동체 속에서 소득 불균형이 심하고 양극화가 발생한다면,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도울 것이냐이다. 이에 대해서는 기본소득 도입 찬성과 반대의견이 날카롭게 대립한다. 이 글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좌파, 우파 중에 한쪽 주장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서 야기될 문제라는 관점에서 기본소득이 어떤 의미인지 논의해 보고자 한다. 어차피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정부는 지난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국민 경제 전반에 걸친 피해를 복구하거나 완화하기 위함이었다. 일시적 성격의 긴급구호 목적과 함께, 개개인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고 소상공인의 매출을 늘려줌으로써 국민 경제의 말단까지 효과가 미치기를 기대한 제도이다. 

이에 비해, 기본소득은 ‘아무런 구분 없이, 대상을 심사하지 않고, 세대주가 아닌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이 없으면 소득도 없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동’과 ‘소득’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관점이다. 즉 노동 없어도 소득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일해야만 그리고 그 노동이 가치가 있어야만 인간으로서 살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 로봇세

토지나 건물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에게 세금을 매기는 것은 어떨까. 로봇세는 인간이 노동하려는 의지가 있는데도 로봇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 로봇을 사용하는 업주가 그 부가가치에 대해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 로봇세를 통해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노동시장 잠식 속도를 조절하고, 인간들이 실업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령자 직업 교육이나 학교 설립 등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원래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만들어내는 서비스나 제품은 다시 로봇을 생산하기 위해 재투자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대량실업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고, 인간이 경제적으로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2033년까지 인간 일자리의 약 50%가 로봇에 의해 대체되리라 전망한다. 기본소득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로봇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업이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로봇세를 부과하게 되면, 기술개발에 걸림돌이 될 것이고, 경제성장에 저해 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로봇인 것과 로봇 아닌 것 또는 인공지능인 것과 인공지능 아닌 것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문제가 있다. 한 마디로 어디까지를 인공지능이라고 규정할 것인가이다. 구글 같은 인터넷 검색엔진을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일일이 세금을 부과한다는 발상은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만약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집에서 육아에 더욱 집중하거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무료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자아를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이 노동이나 직업에 대한 의욕이나 의지가 상실된 세상을 그려볼 수도 있다. 회사나 일터에 소속되어 일하는 ‘소속욕구’나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는 ‘인정욕구’는 이제 그냥 포기해도 좋은 가치일까. 출처=www.shutterstock.com
만약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집에서 육아에 더욱 집중하거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무료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자아를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이 노동이나 직업에 대한 의욕이나 의지가 상실된 세상을 그려볼 수도 있다. 회사나 일터에 소속되어 일하는 ‘소속욕구’나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는 ‘인정욕구’는 이제 그냥 포기해도 좋은 가치일까. 출처=www.shutterstock.com

➲ “헬리콥터 머니”

헬리콥터에서 프로펠러가 돌아가듯이 돈을 사방에 무차별적으로 뿌린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기본소득 제도가 가지는 무조건적 성격과 무차별성 때문에 국민의 혈세를 마구잡이로 ‘뿌린다’고 비난한다.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는 원래 케인스가 일으킨 소위 ‘케인스 혁명’에 저항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고안한 개념이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통화를 공급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이 통화를 발행하여 시중에 유통한다는 의미이다. 

프리드먼은 공중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천 달러 짜리 지폐를 뿌리는 상황을 가정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유동성 공급의 방법으로 시도되지만,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거나 채권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지적된다. “헬리콥터 머니”는 적극적으로 통화를 시중에 방출하기 위해 정부나 국민에게 직접 주는 방식이다. 정부에서는 부채 증가 없이 재정지출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실 기본소득 논의가 정치적으로 좌, 우파의 이념대립으로 전개되면서,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좌파의 전유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은 우파 입장의 경제학자였고, 기본소득에 찬성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기본소득 문제를 단순히 정치적 좌파나 우파 논리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 기본소득 도입 공방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공방이 뜨겁다. 일단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사회보장 원리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무차별적으로 국민 혈세를 뿌리는 형태의 지원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의 문제는 복지제도로 해결해야지, 일시적 현금 지원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이다. 

구체적으로는 복지정책의 손길의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 해소가 중요한데, 당장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각지대 밖에 있는 사람한테까지 일률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아직 4차 산업혁명의 가져올 변화 즉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노동시장 잠식을 현실적 위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장은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중심으로 전 국민 고용보장제도 등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강화하는데 복지예산을 우선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고집할 경우, 결국 기존 복지제도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이에 반해 찬성론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는 단순히 복지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경제정책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11% OECD 평균은 22%이다. OECD 평균 조세부담률은 25%,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7%(최대 20%로 보는 통계도 있다)이다. 

이 차액에 대해 새로운 복지제도의 수립 없이도 기본소득으로 충당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기본소득으로 충당하면 기존 복지제도에 손대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복지 지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전망이 있다면, 기본소득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기본소득 이후, 인간의 삶

만약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앞으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다시 말해,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까. 긍정적 측면으로는 집에서 육아에 더욱 집중하거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무료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자아를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주장하듯 한 마디로 노동에서 해방돼 비로소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일까. 노동은 노예 부리듯이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맡기고서 말이다. 반면 부정적 측면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인간이 전혀 노동이나 직업에 대한 의욕이나 의지가 상실된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 

노동이 사라진 미래는 인간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회사나 일터에 소속돼 일하는 ‘소속욕구’나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는 ‘인정욕구’는 이제 그냥 포기해도 좋은 가치일까. 결국 다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불교신문3611호/2020년9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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