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스님의 유튜브불교대학] ⑤ 좋은 이름과 개명(改名)
[우학스님의 유튜브불교대학] ⑤ 좋은 이름과 개명(改名)
  • 우학스님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 회주
  • 승인 2020.09.10 10:07
  • 호수 3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에너지 극대화가 좋은 운 부르는 최선의 길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면
설령 이름이 좀 좋지 않다 하더라도
현재 당면하는 여러 문제 극복하고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

어떤 분이 제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스님, 제가 개명(改名)을 하려고 하는데, 개명을 하면 사는 것이 좀 나아질까요? 어디 가서 물어보면, 모두 이름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건가요?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요즘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개명, 즉 이름을 바꾸려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 견해로는 이름이 운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5% 정도라고 봅니다. 우리의 운명을 형성하는 요소에 대해 이미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전생과 현생을 반반으로 보고 이 현생 50% 가운데, 마음 에너지가 25%요, 환경, 노력, 적선, 조상의 음덕, 이름이 각각 5%로 생각합니다.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이름의 기운이 우리 운명에 큰 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니 개명을 해서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유념할 것은 설령 이름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당장 기운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을 바꿨다면, 적어도 3~4년 정도는 그 이름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새로 받은 이름, 즉 개명한 이름을 하루에 108번씩은 써야 합니다. 마치 사경하듯이 써야 합니다. 그러면 겨우 그 기운을 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답답하니까 개명도 해보는 것이지만, 연세가 60이 넘었다면 신중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름 하나 바꾸는 것이 예삿일이 아닙니다. 개명하게 되면 주민등록증, 여권, 은행 통장까지 싹 다 바꿔야 하는 거니까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필자 우학스님이 도표로 만들었다.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필자 우학스님이 도표로 만들었다.

한편, 이름으로 운명을 감정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더러 ‘이름으로 운명을 감정한다’ 해서, 성명 석 자(때로는 두 자~넉 자)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다 쓸데없는 일입니다. 이름이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 5% 정도로 미미한데, 이것으로 운명을 감정한다면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으로 자기 운명을 딴 사람에게 절대 감정을 의뢰해서는 안 됩니다. 연세가 든 사람들은 제 얘기를 잘 귀담아 듣고, 개명으로 요행수를 바라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대신에, 신생아 즉 새로 태어난 아이의 작명(作名)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누가 이름을 지어도 지어야 하는 거니까, 제대로 작명하는 사람에게 맡길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자기가 다니는 절의 스님이 작명에 대해서 조예가 있다면, 그 스님에게 맡기는 것이 최상책입니다. 포교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그러합니다.

작명학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학문입니다. 좋은 이름은 상당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작명에 대한 경험과 기본 지식이 있는 스님이라면, 새로 태어난 아들, 딸 또는 손자, 손녀의 이름을 그 스님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작명학의 입장에서 유념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첫째는 현시대의 분위기에 맞는 이름을 지어야 합니다.

둘째는 발음상, 부르기 쉽고 놀림감이 되지 않는 이름이라야 좋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친척이나 집안의 어른들과 중복되지 않는 이름이라야 합니다.

셋째는 획수가 잘 맞아야 합니다. 성명이 주로 석 자라고 보면, 초·중·끝 자의 서로의 합한 수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즉, 초자와 중자의 합한 수, 초자와 끝 자의 합한 수, 중자와 끝자의 합한 수, 초·중·끝 자를 다 합한 수가 잘 나와야 합니다.

옛날부터 작명학에서는 이 글자들의 합한 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왔습니다. 이 합한 숫자가 ‘수리적으로 좋은 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숫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1, 3, 5, 6, 7, 8, 11, 13, 15, 16, 17, 18, 21 23, 24, 25, 29, 31, 32, 33, 35, 37, 38, 39, 41, 45, 47, 48, 52, 58, 61, 63, 65, 67, 68, 73, 75, 81.

이 숫자는 태극도식(太極圖式)에서의 수리(數理)이므로 다른 작명학의 경우에는 좀 다를 수도 있으나 대동소이합니다.

아무튼 성명 석 자의 각 글자의 획수를 이리저리 합했을 때, 위의 숫자가 나와야 좋습니다. 이런 숫자 개념을 고려하지 않았을 경우, 나중에 본 아이가 커서 어떤 일이 생겨, 어디 가서 물었을 경우에 ‘작명이 잘못되어서 그렇소’라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불자들은 ‘어디 가서 묻지 말라’ 해도 잘 묻는 수가 많으니 강조해서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신생아 이름은 반드시 정통 작명학의 입장에서 짓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신생아의 경우에는, 운명에 있어서 이름 5%의 비중도 적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아무튼 작명학은 획수를 많이 따집니다. 이름에 죽을 사(死)가 들더라도 획수가 맞으면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획수만 좋으면 다 좋다’는 게 작명학의 대세이니 잘 참고해야 합니다.

또 획수를 따지는 데 있어서 예외 조항도 있으니 좀 복잡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쓰는 ‘삼 수(氵)’변 이것은 ‘삼 수(氵)’ 이렇게 쓰고, 4획으로 처리합니다. 이런 글자들이 많습니다.

넷째로는 ‘불용(不用) 한자’라고 해서, 작명에 쓰지 않는 한자가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 생각에는 불용 한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불용 한자는 이를테면, 계절을 나타내는 춘(春), 하(夏), 추(秋), 동(冬)과 같은 글자들과 또 완벽이나 아주 최상, 좋은 것을 나타내는 글자들로 곧을 정(貞), 용 용(龍), 범 호(虎), 학 학(鶴), 아름다울 미(美), 날 일(日), 달 월(月), 별 성(星), 어질 인(仁) 같은 경우가 그 예입니다.

저의 속명에 ‘기쁠 희(喜)’가 들어있는데 정통 작명에서는 이 글자도 불용 한자로 분리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희(喜) 자는 항렬이기 때문에 어쩔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불용 한자는 조금 참고만 하면 됩니다. 

한편, 잘 아는 스님이 이름을 지었는데 인터넷 등에 불용 한자라고 나와 있으면 ‘음양오행의 다른 기운을 맞추기 위해서 이 글자를 썼겠지’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작명이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요인을 고려하는 수도 있습니다.
 

경주 감포에 위치한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 세계명상센터의 해변 부처님들.
경주 감포에 위치한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 세계명상센터의 해변 부처님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신생아의 작명은 공부를 한 전문가나 스님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에 이미 쓰고 있는 이름을 바꾸려면, 한 3-4년 이상 사경하듯이 새 이름을 ‘자기 것 화’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이유로 개명을 했다면 다시는 이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현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큰 비중인 마음 에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정진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에너지, 즉 마음의 상, 심상(心相)만 잘 쓰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 참선하십시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시면, 설령 이름이 좀 좋지 않다 하더라도,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고, 얼마든지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존재들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갖가지 방법이 동원됩니다. 이미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좋은 환경, 조상의 음덕, 적선, 부단한 노력, 멋진 이름 그리고 마음 에너지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마음 에너지입니다. 이 마음 에너지만 잘 쓰면 고착화된 전생의 업장도 녹일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수행정진하면 현재의 모든 한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최종 결론입니다. 지금 쓰는 이름 때문에 마음이 심히 찝찝하면, 40세 이전의 경우는 개명을 고려할만합니다. 하지만 50~60세 이상은 크게 소용이 없습니다. 한편, 신생아의 경우에는 정통 작명학의 기준대로 짓는 것이 좋습니다. 

작명이 보통 인식의 비중에는 너무도 크므로, 불교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지만,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정통 수행을 열심히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좋은 운을 부르는 최선의 길입니다. 

* 이 글에 대한 내용은 한국불교대학 유튜브불교대학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無一 우학 한자성어 ⑤ 蚊不被叮 最上策(문불피정 최상책)

모기에게는 물리지 않는 것이 최상책이다

산중의 절은 어디든 모기가 많습니다. 물론 이곳 무일선원 무문관의 모기들도 기질이 대단합니다. 한 번 물리면 가려운 것은 물론 퉁퉁 부어오릅니다. 그래서 2013년도, 제1차 천일 무문관 청정결사에 들어갈 때 포행 공간에 구문초(驅蚊草)를 심었습니다.

구문초는 모기 퇴치 식물 중의 하나입니다. 향도 좋고 꽃도 예쁜데, 모기는 아주 싫어해서 근접하지 않습니다. 그래선지 첫해는 모기가 많이 접근하지 않아 그런대로 살만했습니다. 두 번째 해에는 구문초를 심지 않았더니 모기가 극성을 부렸습니다. 뿌리는 모기약으로 미리 접근을 차단해 보았지만 실효성이 없는 데다, 공간에 있던 모기가 스프레이를 피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종이쪽지로 모기장 하나를 넣으라고 주문했습니다. 무문관은 모든 연락을 메모지로 하는데, 의사전달이 잘 되어 큼지막한 모기장, 즉 방장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모기장을 치고 걷는 것이 번거로웠으나, 익숙해지니 1~2분이면 해결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범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늦봄이 되면 으레, 지난해 간수해 두었던 모기장을 칩니다. 간혹, 모기장 안으로 모기가 침범할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스님이 돼서 체면 없이 모기와 싸우는 일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다 나올 지경인데, 이제는 만족스럽습니다. 모기장 안에서 좌선도 하고 때로 글도 씁니다. 물론 잠도 잘 잡니다. 

사실, 번뇌라는 것이 모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화두’로써 모기장을 치고, ‘관세음보살 불명호’로써 모기장을 치면 될 일을, 모기와 싸우듯 번뇌와 싸우는 수가 있으니 모든 불자는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또 한편, 모기처럼 평온한 내 삶을 콕콕 찔러대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경우에도 싸울 생각을 말고 내버려 두십시오. 대신 수행(修行)의 모기장을 내 마음 안팎에 잘 치고 상대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 방법이야말로 모기 같은 존재에 물리지 않는 최상책입니다.

[불교신문3612호/2020년9월9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