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탓할 게 아니라 개척해가는 불자가 되자

오늘 주제는, ‘사주팔자 믿지 말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라!’입니다. 30대 젊은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스님, 어디 가서 물어보면, 저는 사주가 안 좋답니다. 뭐든 다 안 된다고 하니, 제가 살맛이 안 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주팔자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청춘의 기를 죽이는가…?’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주(四柱)란 ‘생년·월·일·시’를 말합니다. 올해가 경자년이면 경자가 연주(年柱)가 됩니다. 이렇듯이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를 세울 수 있습니다. 팔자(八字)란 사주를 세울 때 사용된 천간지지 여덟 자를 아울러 하는 말입니다. 명리학(命理學)에서는 이 사주팔자가 전적으로 운명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수행을 통한 마음공부라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한 마음공부라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여기에는 많은 의아스러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대한민국 통계청에서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1년에 태어난 신생아 숫자는 32만6822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365로 나누면 하루에 895명이 태어나는데, 이 895명을 다시 12지(支)의 12로 나누면 74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즉, ‘사주팔자가 같은 사람이 하루에 74명이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74명이 사는 모습이 같을까요?

아주 탐구심이 강한 어떤 사람이 ‘과연 나와 사주가 똑같은 사람들이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진 뒤 일일이 직접 찾아다니면서 조사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가 아주 딴판이었습니다. 직업이 다 다르고, 성격이 다 달랐다고 합니다. 물론, 부모 복도 다르고, 부부연, 즉 부인을 얻는 것도 다르고, 공부 머리도 다르고, 용모도 다르고, 재물 복도 다 달랐답니다. 그리하여 하던 역학(易學) 공부를 다 집어치웠다고 했습니다.

좀 더 리얼한 얘기를 하나 더 해드리겠습니다.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의 일입니다. 그때 대단한 두 분, 즉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습니다. 선거 당일, 오후 6시가 거의 다 될 즈음 한 방송사에서 전국의 역술인들에게 ‘이번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겠는가?’라고 물은 내용을 발표하였는데, 그 당시 역술인들의 85%가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점쳤습니다. 그런데 개표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더라도 사주팔자만 가지고 운명을 논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사주팔자는 선천운(先天運)을 논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은 후천운(後天運)의 요소들이 함께 작용합니다. 저 개인의 견해로, 후천운의 요소는 다음 여섯 가지입니다.

즉, ‘노력·환경·적선(積善)·성명(姓名)·조상의 음덕’이 각각 5%씩 차지하고, 다른 25%는 ‘마음의 힘’이라고 봅니다. ‘마음의 힘’은 물론,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과거의 업으로 인해 50% 선천운이 사주팔자에 나타났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현재 ‘마음의 힘’이 업으로 연결된 그 선천운을 충분히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 불교적 수행입니다. 가끔, 사주팔자가 안 좋아서 출가했다는 스님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잘 사는 수가 많습니다. 예전에 송광사 방장으로 계시던 구산(九山) 대선사의 전기를 보니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당대의 유명한 역술인이 ‘세속에 살면 일도 안 되고 단명한다’ 해서 출가를 하였는데, 스님께서 오래 건강하셨던 것은 물론이고, 총림의 방장까지 오르셨으니, 이 역시 불교 수행만이 살길임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불교 수행은 ‘마음의 힘’을 키우는 일입니다. ‘마음의 힘’이 운명을 통째로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운명을 감정하는데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모든 불자들은 어떻게 하면 ‘마음의 힘’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마음의 힘’을 극대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 수행이 있습니다. 참선, 정근기도, 사경, 독송, 절 등입니다. 
 

우학스님이 쓴 ‘마음 부처’.
우학스님이 쓴 ‘마음 부처’.

좀 더 확신을 드리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구 선생이 17세 때, ‘어떻게 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마의상법(麻衣相法)이라는 관상 책을 보면서 운명학에 대해 연구를 하였답니다. 수개월 동안 공부를 이어가던 중에 마지막에 적힌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라는 말에 책을 덮었다고 합니다. ‘관상은 몸상에 미치지 못하고, 몸상은 심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의 심상(心相) 역시 ‘마음의 힘’, ‘마음 에너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시 말을 만들었습니다. ‘선천운불여심상(先天運不如心相)’입니다. 선천운, 즉 사주팔자니 관상이니 하는 것은 마음의 상, 즉 마음 에너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마음의 스트레칭을 잘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긍정적 심성(心性) 견지(堅持)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살심을 굳게 가지라는 말입니다. 저의 이론으로, 보살이 가져야 하는 여섯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즉, ‘6대 보살심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덕분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입니다. 이러한 보살심, 긍정적 마음이 자기 인생을 윤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불성(佛性),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굳게 믿고 ‘나는 긍정적으로 살겠다’, ‘나는 긍정적 인생관을 가지겠다’는 생각이 투철해야 합니다.

둘째, 우주적 심성 견지입니다. 우주적으로 심성을 굳게 지니려면, <금강경> 수행이 꼭 필요합니다. 금강경을 항상 독송하고 사경하면 좋습니다. 금강경 첫머리에 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즉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리라’라고 서원 세우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서원을 세워야 깨달음도 얻고, 인생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적 심성 견지, 즉 우주적으로 그 마음을 굳게 지니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을 내가 다 제도하겠다’, ‘내가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서 살겠다’, ‘내가 지옥 중생까지 다 제도하겠다’ 이 얼마나 스케일이 큰 일입니까. 

이처럼 우주적으로 크게 마음을 내면, 우리의 삶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근원적,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힘이라면 과거 전생의 나쁜 업도 다 녹여가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주적 심성 견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 이해가 되리라고 봅니다.

마지막 셋째, 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셋째는 결정적 심성 견지입니다. 우리는 결정심(決定心)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결정심 또는 결정적 심성이란, ‘수행을 통해서 나의 업을 모두 갈아엎겠다’는 것입니다. ‘다부지게 수행하여 전생부터 쌓아온 이 업을 갈아엎고, 전혀 새로운 나로 태어나겠다’라는 서원이 결정적으로 그 마음 가운데 자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한 결정심입니다.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리면,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과거의 업까지 녹일 수 있는 마음공부를 아주 다부지게 하겠다’라는 결정심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전혀 다른 빛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행은 곧 음식을 숙성시키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중생의 나’를 잘 숙성시키면 ‘부처의 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숙성이란 현재 나의 기질을 완전히 죽이는 것입니다. ‘대사일번 절후소생(大死一番 絶後蘇生)’ 입니다. 즉, ‘크게 한번 죽어야 다시 태어난다’ 라는 이 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세간에 흔히 쓰는 말로 절처봉생(絶處逢生)이 헛말이 아닙니다. 막다른 길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사는 것이 좀 힘드네….’ 또는 ‘나는 업장이 좀 두텁네…’ 등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죽는 것을 각오하고, 삼천 배라도 수십 번 해볼 일입니다. 아니면, 무문관에 틀어박혀 몇 개월이고 스님들처럼 면벽참선도 해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 전체를 완전히 갈아엎을 수가 없습니다.

180도 달라진 삶은, 불퇴전의 용기를 가지고 부단히 정진할 때 가능합니다. 수행은 절대 일회성 내지는 말뚝 신심으로는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연한 각오로 꾸준히 하기만 하면 사주팔자, 관상의 선천운은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세 가지를 마음속 깊이 잘 받아들인다면 분명히 성공적인 인생을 구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창조주입니다. 

심시조주(心是造主)! 제가 지어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운명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운명을 창조해가는 불자 되시길 기도 축원 드립니다.  

* 이 글에 대한 내용은 한국불교대학 유튜브불교대학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無一 우학 한자성어 ④ 柵隙狍掠(책극포략)

울타리에 구멍이 나 있으니, 고라니가 노략질 한다

무일선원 무문관이 있는 경주 감포의 연대산에는 고라니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고라니가 심어 놓은 작물을 해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절 아랫동네 한 신도는 며칠 전에 고라니가 옥수수 밭을 작살내는 바람에 농사를 다 망쳤다고 푸념하는 소리를 해댔습니다.

이 한자성어를 만들 즈음은 고구마 순이 올라올 때였습니다. 그물망으로 울타리를 쳐두었는데도, 한번 농장에 나갔더니 고라니가 고구마 순을 죄다 잘라먹었습니다. 고라니가 울타리 작은 틈새를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절 사람들은 ‘고라니 이놈!’ 하고 씩씩대지만 이것은 고라니 탓이 아닙니다. 고라니는 본래 천성적으로 그렇게 살아갈 뿐이므로 울타리를 완벽하게 치지 않은 우리 잘못입니다.

우리 선가에서는 예로부터 ‘벽극풍동 심극마침(壁隙風動 心隙魔侵)’이라는 말을 씁니다.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듯,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침범한다’ 라는 뜻입니다. <금강경>에서는 ‘항복기심(降伏其心)’으로 표현됩니다. 그 마음이 곧 울타리 구멍이요, 벽의 틈입니다. 수행하는 우리 불자들은 남의 탓을 하기보다는 먼저 자기한테 문제가 없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특히 마음을 잘 부릴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세운 ‘사역기심 팔법(使役其心 八法)’입니다. 첫째,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라(入觀其心). 둘째, 그 마음을 잘 알아라(善解其心). 셋째, 그 마음을 항복시켜라(降伏其心). 넷째, 그 마음을 흔들림 없이 하라(不動其心). 다섯째, 그 마음을 얽어매지 마라(不絆其心). 여섯째, 그 마음을 활기차게 써라(活用其心). 일곱째, 그 마음을 즐겨라(遊戱其心). 여덟째, 그 마음을 잘 유지하여 지켜라(維持其心). 

결론입니다. 마음이 자기를 다스린다고 하지만, 수행을 통하면 지혜가 나타나 마음을 다스립니다(智顯使心). 더욱더 나아가면 마음과 지혜가 원융한 자리로 들어갑니다(智心圓融). 공아(空我), ‘진리적 나’가 춤을 춥니다.

[불교신문3610호/2020년9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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