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간존중의 보편가치 실현의지 가장 강하다"
"불교는 인간존중의 보편가치 실현의지 가장 강하다"
  •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 승인 2020.05.31 15:15
  • 호수 35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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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특별기고 / 코로나19 사태로 본 불교의 공동체 정신


모든 생류 행복 도모하는 불교
승가공동체 운영에서 확인돼

승가규범 ‘율’ 통해 질서유지
구성원에 도움 되면 실천하고
해가 되는 행위 철저히 근절

화합 통해 승가 유지한 전통
이웃과 함께한 불교의 원동력

부처님 바이샬리 역병 창궐 때
한 걸음에 달려가 위로했듯이
불교의 이타정신 활약 기대돼
이자랑
이자랑

2019년 12월 중국 우한 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일명 ‘코로나19’는 불과 4개월 여 만에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심지어 냄새로 구분할 수도 없는 바이러스는 상상 이상의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 이렇게 광범위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인명 피해가 나오게 될지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똑같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질환이 갖는 특성을 잘 파악하여 현명하게 대처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간에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뛰어난 대응 능력으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해내고 있지만, 감염원이 될 수 있는 것과의 ‘접촉’ 차단이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대처하는 기본 행동 수칙이라는 점을 망각한 일부 단체 내지 개인의 가벼운 행동으로 지금도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불교는 일찌감치 선제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있어 주목된다. 부처님오신날 행사 연기, 각종 법회 중단, 불교대학 개강 연기, 산문 폐쇄 등 신속하게 이루어진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은 코로나 확산 방지에 크게 일조하였다. 불교의 신속한 판단과 실천은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와 방법을 새삼 돌이켜보게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공동체의 일원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당연한 일이지만, 각 공동체에 대한 소속의식이나 이로 인한 역할의 완수, 나아가 기여도는 개인적 차이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공동체가 최고의 가치를 갖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종교공동체 혹은 국가공동체가 더 가치 있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경우이든 특정 공동체의 가치를 지나치게 앞세워 다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상식적 차원의 처신을 저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 과정에서 특정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한 결과 자신이 속한 또 다른 공동체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를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사회나 국가와 같은 대규모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상식을 무시해버린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한편, 불교계가 이번에 취한 적절한 처신은 불교가 일반사회의 상식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종교이자, ‘인간[生類] 존중’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강한 종교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특정 개인이나 공동체의 이념 내지 이익을 우선시하며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모든 생류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방법을 모색하는 종교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정 도그마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모든 생류의 행복을 도모하는 불교의 입장은 승가공동체의 운영 속에서 이미 활용되어 왔다. 불교의 출가자들은 부처님 당시부터 승가라 불리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생활했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트러블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부처님은 ‘율(律)’이라는 승가규범을 마련하여 질서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율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승가공동체의 존재 방식이 바로 화합승(和合僧)이다. 왜 화합의 실현이 중요한가 하면, 승가에 입단하는 목적은 불도 수행인데, 화합이 깨지면 수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화합은 더불어 살며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 승가가 공동체로서 추구하는 이 가치가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도 발현되었다고 생각된다.

화합을 실현하는 방법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도 율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이번 사태에서 일부 공동체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미 검증된 사안들을 자신들이 신봉하는 교리나 관습을 근거로 부정하면서 일반사회와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승가의 규범은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아도 합리적이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위생 혹은 청결의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율장에서는 위생과 관련하여 개인적인 차원에서 혹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범을 세심하게 규정한다.

예를 들면, 식사 전에 손발을 씻을 것, 양지(楊枝)를 사용한 후에는 씻어서 말릴 것, 이발을 하고 손톱을 깎을 것, 귓속의 때나 설태를 제거할 것, 정기적으로 목욕할 것, 침구는 볕에 말린 후에 사용할 것, 다른 사람에게 물을 건넬 때는 손을 씻은 후에 병을 잡을 것 등이다.

또한 방청소나 침구 정리 등도 엄격하게 규정한다. 의복이나 침구는 깨끗하게 빨아서 손질해서 입을 것, 방은 항상 정리정돈하며 냄새가 날 때는 환기시킬 것, 침구는 볕에 말린 후에 사용할 것, 방석은 사용 후에 깨끗하게 정리해 둘 것 등이다.

위생 혹은 청결의 유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유익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할 경우에는 쾌적한 공간의 조성으로 다른 구성원과 트러블 없이 생활할 수 있게 해준다. 자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이며, 다른 이념이나 기준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공공의 생활 수칙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 아쉽게도 이렇게 당연한 일을 소수가 무시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나 하나쯤 괜찮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 혹은 특정 공동체로부터 나온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신념, 이로 인해 발생하지 않아도 될 피해가 발생하였다.

결과의 유익성이 자명한 생활수칙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유로 무시된 것이다. 위생은 전염병의 예방 내지 확산 방지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으며, 평상시에도 쾌적한 생활을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의심할 여지없는 생활수칙이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상식이며,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다.
 

불교의 출가자들은 부처님 당시부터 승가라 불리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생활했는데, 화합이 깨지면 수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화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화합은 더불어 살며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 승가가 공동체로서 추구하는 이 가치가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도 발현됐다. 사진은 함께 모여 포살법회를 하는 스님들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불교의 출가자들은 부처님 당시부터 승가라 불리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생활했는데, 화합이 깨지면 수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화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화합은 더불어 살며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삶을 실현하는 것으로, 승가가 공동체로서 추구하는 이 가치가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도 발현됐다. 사진은 함께 모여 포살법회를 하는 스님들 모습. ⓒ불교신문

코로나는 인간의 이기적인 판단과 탐욕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는 것을,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상식적인 행동을 멈추지 못한 한 순간의 선택이 초래한 혹독한 대가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똑같은 오류를 되풀이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율이라는 규범을 세워 기본부터 철저하게 관리해 온 승가공동체의 운영 방식은 현대사회에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주는 행위라면 철저하게 실천하지만, 만약 해가 되는 행위라면 기본부터 철저하게 근절하는, 자비로우면서도 절도 있는 태도야말로 불교가 이 어려운 시기에 승가공동체의 이익만을 탐하지 않고 고통 받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하게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근년에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여러 번 한국에서 유행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만큼 한국종교계에 파장을 일으킨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종교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에 비해 독선적인 교리나 이념, 신념 등을 고집하며 공공의 가치를 저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자칫 종교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행복으로 이끄는 가르침이 아니라면, 도그마에 사로잡힌 독선에 불과하다. 종교가 의학이나 과학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망상이며, 이 양자의 상호보완이 이루어질 때 인류의 행복도 증진한다.

불교는 코로나 발생 초기에도 적절하게 잘 대응했지만, 그 후에도 코로나19 대응에 앞장선 의료인이나 관련 공무원을 위로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의사를 밝히기도 하는 등 조금씩 적극적인 대응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로서 불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이제 정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에도 경험하였듯이, 종교는 재난을 마주한 상황에서 옥석이 가려지는 것 같다. 부처님이 당시 바이샬리라는 대도시에서 역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가 사람들을 위로하며 고통을 함께 했듯이, 이제 불교계도 고통 받는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로 한 달 연기되었던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가 다가오고 있다. 모든 생류의 이익을 도모하는 불교공동체의 이타(利他)적 정신이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낼지 다시 한 번 불교계의 활약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불교신문3586호/2020년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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