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완벽한 행복…거창공동체 ‘자급자족’ 라이프
소박하지만 완벽한 행복…거창공동체 ‘자급자족’ 라이프
  • 이경민 기자
  • 승인 2020.05.28 13:04
  • 호수 35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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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거창 행복한마을 24시

우리가 21세기 벽두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은 ‘나홀로 사회’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코로나19 사태는 개인과 사회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하게 된다’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앞으로 비대면 접촉의 증가, 언택트 소비의 지배, 탈종교의 가속화 등 변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 단절에 따른 불안과 초조가 되풀이 되는 삶, 다가올 미래에 공동체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가족도 아닌 타인과 부러 살을 부비며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 쌓아왔던 부와 명예를 버리고 무소유의 삶으로 들어간다는 건, 그럼에도 화내고 짜증내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살아있는 수행공동체로 꼽히는 거창 '행복한 마을' 주민들. 15세부터 88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입주민 30여 명이 자급자족 라이프를 실천중이다.
살아있는 수행공동체로 꼽히는 거창 '행복한 마을' 주민들. 15세부터 88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입주민 30여 명이 자급자족 라이프를 실천중이다.

#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 출퇴근을 반복하며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일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취업 관문을 통과해 시작한 직장인의 삶,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환경이 바뀌면 달라지겠지 생각했다.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파견을 나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이,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은 공허한 마음을 채운 건 부산 ‘나랑명상센터’ 수업이었다. 마음 수행이나 해보자 따라나선 길, 그곳에서 만난 도파 보살이 “거창에 한번 가보라” 우연히 건넨 말에 행복한마을 문을 두드린 지 벌써 5년. 도앙 법우는 “좋은 가방과 신발 이야기, 연예인이나 주변 사람 이야기 말고 오롯이 내 안을 향한, 마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삶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것 같은 순간 찾아온 첫 만남이었다. 도앙 법우는 말했다. “생전 처음해보는 경험이었다”고. 그 길로 ‘무보수’ ‘무소유’의 삶인 거창 ‘행복한마을’로 거주지를 옮겼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회색 법복의 단벌 수행자가 됐다. 한창 꾸미고 쇼핑하길 좋아하던, 스물아홉이었다.

은산스님이 재가자들과 힘을 모아 설립한 거창 행복한마을은 살아있는 수행 공동체 전형이다. 크게 ‘무보수’ ‘무소유’가 원칙인데, 소소한 생활 청규는 사부대중 모두가 함께 합의해 정한다.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하는 만큼 각기 주어진 소임에 따라 생활하며 24시간 의식주를 모두가 공유한다.

현재 15살부터 88살까지 약 30명의 다양한 연령대 사람이 모여 산다. 학생, 학교 선생님, 학원 강사, 회사원, 은퇴자 등 직업도 출신도 성향도 제각각. 그럼에도 지위고하(地位高下) 막론하고 호칭은 ‘법우’ 하나로 통일해 부른다. 큰 소리 한번 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모두가 약속한 시간

오전5시, 행복한절 법당에 불이 켜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 희미한 인기척이 새벽 고요를 깬다. 심검당, 휴심정, 법당 옆 요사채 등 각 처소에서 나온 주민들이 새벽 예불을 위해 법당에 들어선다. 20명 가까운 대중이 속속들이 들어서자 법당은 금세 온기로 가득찬다. 너나 할 것 없이 종성에 맞춰 매무새를 다듬고 법요집에 따라 예를 올린다. 

개중에는 종교가 없는 이도 적지 않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절하는 모습이 아직 어색한 손미은 법우도 종교가 따로 있지 않은 입주민 중 하나다. 손 법우는 “그래도 아침 예불만은 빠지지 않으려 한다”며 “이 또한 수행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중 모두가 동의한 생활 지침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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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진행되는 공부 시간. 이 시간 동안 주민들은 공동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논한다. 저마다 다른 의견, 갈등 사안 등에 대해서도 꾸밈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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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부 시간, 촌장 은산스님이 중재자 역할로 공부 방향을 짚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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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원실 법우가 최연장자인 만각스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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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행복한마을 주민들은 부산 행복한마을 주민들과도 실시간으로 사안을 공유한다.
어버이날을 맞아 10~30대 법우들이 어른 법우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어버이날을 맞아 10~30대 법우들이 어른 법우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도반과 함께 매일 치르는 탁마

행복한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는 아침공부 시간. 오전6시40분부터 8시까지 약1시간 넘게 이어지는 스터디다. 매일 한번 치르는 탁마의 시간이기도 하다. 주민 전원이 법당에 둘러 앉아 그 날 그 날 주어지는 주제에 따라 의견을 나누고 대중 생활에서 생기는 갈등 섞인 마음을 토로한다. 이날은 철학자 켄 윌버의 <무경계> 한 단락을 읽고 자기 마음의 거울을 비추는 시간. ‘경계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데 경계를 하는 순간 우리도 모르는 의식이 일어난다’는 한 문장을 두고 저마다 생각을 펼친다.

“스님, 저도 경계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그동안 ‘척’을 좀 많이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남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잘난 척, 아닌 척, 괜찮은 척. 경계가 없다는 것을 알면 ‘척’ 좀 덜하고 살았을 텐데, 그만큼 괴롭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 “저는 경계라는 게 과연 뭘까 생각해봤어요.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이면 되는 일인데 계속 내가 뭔가를 얻으려하고 의식하려하는 것 자체가 경계였던 것 같습니다.” 

쏟아지는 이야기 속에서 촌장 은산스님이 이날의 배움을 정리한다. “저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을 텐데, 어려워하지 마세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마음을 나누고 대중이 번갈아 도우면 돼요. 별거 아니에요. 저도 별생각 없이 살아요.”

모두의 자식, 모두의 부모님

오전8시가 되자 흩어졌던 주민들이 법당에 다시 모인다. 어버이날을 기념해 10~30대 법우들이 특별 이벤트를 마련했기 때문. “우리 모두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어른 법우들 가슴에 카네이션이 정성스레 달린다. 어버이날 노래를 더듬거리며 부르는 어린 법우들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법우들 얼굴에 웃음과 눈물이 가득하다. 평소 씩씩한 모습만 보여 온 공양간 총 책임자 도주 보살이 민망한 듯 한마디 던진다. “운다고 놀리지 말아요. 노래를 오죽 못하면 눈물이 다 날까.”

직접 심은 상추로 식당 운영까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경제 기반이 필수다. 행복한마을도 ‘자급자족 라이프’로 돌아 간다. 모두 오전9시 각자의 일터로 출근해 정해진 소임에 임한다. 공양간이자 채식 전문 식당인 ‘베지나랑’, 제철 식품과 디자인 용품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나랑’, 책장 등 수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공생발전소’ 등이다. 규모는 작지만 모두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사업체들이다. 

그 중에서도 해가 갈수록 수익이 두드러지는 곳은 ‘베지나랑’. 오전11시와 오후5시께는 공양간으로 운영되고 그 외 시간은 모두 외부에서 들어오는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다. 거창 외에도 부산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지역 뿐 아니라 전국구로 입소문이 나 늦은 시간까지 ‘베지나랑’을 찾는 인파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베지나랑’ 소임자들은 모두 채식 전문 교육 수료자들, 현장에서 최소 5년 이상 근무한 사람만 ‘베지셰프’ 자격이 주어지는데 본점인 거창 ‘베지나랑’의 도주 셰프 또한 7년 경력의 소유자에 속한다.

오신채와 고기를 쓰지 않고 마을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작물과 대만에서 수입한 채식 식품으로만 삼시세끼를 만드는데도 채식 교육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이가 적지 않다. 이왕이면 사회 환원적 의미도 더하고 싶어 수익 사업 외에도 ‘행복한공양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체계적인 공양주 교육을 통해 각 사찰이 겪고 있는 구인난, 처우 개선 등을 위한 프로젝트로 해인사 원당암, 양산 흥덕사 등 곳곳에 공양주를 파견하고 있다.

요즘엔 공양주들 덕분에 사찰 분위기까지 달라졌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린다. 도주 쉐프는 “공양주 일이 오죽 힘들면 내 법명이 도망가지 말라는 뜻의 도주 보살일까”라며 “공양주 일이 힘들지만 그 한사람으로 인해 수행자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바뀌고, 몸과 마음이 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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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면 곳곳에서 명상 수행이 이어진다. 사진은 스님에게 소참 법문을 청해 듣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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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 라이프 기반은 농사다. 주민들이 먹는 모든 농산물은 거의 스스로 재배한다. 농사팀이 상추 모종 심기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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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보다 홈스쿨링을 택하는 10대 법우들이 있다. 학교 교사, 학원 강사 출신의 주민들이 어린 법우들과 의논해 자체 수업을 하며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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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행복한마을 곳곳에는 명상 명당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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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SNS 등을 통해 외부에 공동체 삶의 가치를 알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콘텐츠 제작 및 기획에 대해 의논하는 NPR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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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1번,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뽑는다. '만클릭' 이벤트에 당첨된 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148만원 후원금을 원하는 곳에 기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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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대중 운력을 하는 모습.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

공양간 안에서 교육과 음식 개발이 이뤄지는 동시에 밖에서는 상추 모종 심기가 한창이다. 조경팀이 일군 흐드러진 꽃밭 옆으로 농사팀이 뜨거운 햇볕 아래 구슬땀을 흘린다. 농사팀 팀장은 준석 법우로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학교 보다 공동체 삶을 스스로 택했다고 했다. 종일 고된 노동이 이어지지만 스스로는 ‘영농후계자’라는 꿈을 이미 이뤘다고. 준석 법우는 “몸을 많이 써야하는 일이지만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며 “아직 서툴지만 하나하나 조금씩 배워가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준석 법우 아래 유일한 팀원은 진성 법우(58). 은퇴 출가를 꿈꾸다 조계종 교육원 출가 상담사인 은산스님과 맺은 인연으로 행복한마을 입주를 택했다. 나이로 따지면 팀장님 준석 법우가 아들뻘에 해당하지만 스스럼없이 팀장 지휘에 충실히 따른다. 깻잎, 방아, 상추, 케일, 비트, 레디쉬 등 ‘베지나랑’에서 쓰이는 각종 농산물들도 모두 이 농사팀 작품이다.

학교 보다 공동체 마을에서 교육받길 원하는 10대를 위한 행복한마을 ‘홈스쿨링’은 효율적으로 자녀를 돌볼 수 있는 품앗이 교육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을 원치 않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와 학원 강사 출신의 법우들이 매일 영어, 수학 등 교과목 마다 일대다(1:N) 수업을 하는데 ‘만족도’는 기대 이상.

엄마 아빠 품을 떠나 홀로 공동체 마을로 들어와 중졸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원실 법우(15)는 “교실보다 집중이 잘되고 사람도 많지 않으니 개인 과외 수업을 받는 기분”이라며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모르는 것이 나올 때마다 바로바로 편하게 물어볼 수 있어 홈스쿨링을 택했다”고 했다. 

세상의 속도에 발맞춰

자급자족 라이프는 농사 등 기본적 의식주에만 초점이 맞춰져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발맞춰 유튜브, SNS 등을 통해 공동체 삶이 지향하는 가치를 전파하는 팀도 있다. 10~30대 법우들로 이뤄진 ‘NPR(Narang Public Relations)’ 팀의 하루 수면 시간은 4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원정, 원행 법우가 매일 사진과 영상을 찍어 콘텐츠물을 만들면 원소 법우가 편집을 맡는다. 기획과 완성 단계에선 신랄한 평가도 이어진다. 유튜브 채널 '나바세바 공생TV'에 주 3회 업로드 되는 영상들 모두 오전과 오후 끝없는 회의의 결과물. 이날 오전9시30분 시작한 NPR팀 회의도 점심 때를 한참 지나서야 끝났다. 

행복한마을의 중심은 ‘명상수행’

오전 일과를 마무리한 오후, 마을 곳곳에서는 매일 명상 모임이 이어진다. 하늘과 가까운 옥상 정원이 있는 심검당, 제철 음료로 갈증을 날려주는 카페나랑, 다실이 있는 제너홀 등 많게는 수십명까지 앉을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마련돼 있는 덕이다. 각자의 소임을 보고 잠시 쉬는 시간, 간단한 안부 인사와 함께 마음챙김 명상, 스님과의 차담, 소참 법문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이 펼쳐진다. 서로의 방식을 존중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수행을 공유하며 저마다 택한 수행에 자유롭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혼자선 살 수 없다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가족도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데 남과 24시간을 공유하는 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일까. 행복한마을에 입주하기 전만 해도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고 집안일 한번 해 본적 없다는 도연 법우는 입주 후 초단위로 발생하던 증오와 분노, 짜증, 편견 등 자신을 내모는 감정을 어느 정도 다잡을 수 있다고 했다.

밖에서 생활할 때만 해도 아주 사소한 일에도 분심이 났다던 도연 법우는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갈등이 왜 없겠냐”면서도 “이곳에서 매일 자신의 마음 거울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며 대중 속에서 탁마를 하다보면 어느새 증오라는 감정이 굉장히 사소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세계적 심리학자, 사회학자가 가장 중요한 행복의 원천으로 꼽는 건 ‘사람과의 관계’다.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는 ‘풍부하고 만족스러운 사회적 관계의 존재 유무’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이 없는 삶은 행복하기 쉽지 않다. 지금 당장 죽을 만큼 힘들어도 사회적 연대와 신뢰만 있다면 사람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너 또한 나만큼 아프고 힘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쉽지 않지만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 매일 절차(切磋)하고 탁마(琢磨)하며 ‘모두가 행복한 마을’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바꾸고 있는 거창 한 작은 마을에서 ‘인류 행복은 공동체 실현에 있다’는 희망을 본다.
 

■ 행복한마을은...

거창 ‘행복한마을’은 촌장 은산스님이 2008년 설립했다. 서울 관음포교원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재가자들과 마을 공동체를 구상했고 이를 공간으로 풀어내기 위해 생각을 공유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마음만 맞는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공유 주거지가 될 터전을 오랫동안 물색했다. 2006년 거창 남하면 대야마을에 건립한 ‘행복한절’을 시작으로 2008년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행복한마을’ 프로젝트의 닻을 올렸다. 

행복한절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행복한마을은 약1만6000평 규모의 공유 주거지다. 감토산을 등에 업고 황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아늑함과 온화함이 느껴지는 분지형 토지 위에 스님을 위한 숙소 ‘심검당’과 재가자를 위한 ‘휴심정’, 채식 전문점 ‘베지나랑’과 강연 및 회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제너홀’ 등이 들어서 있다. 마을 공방, 카페, 공동텃밭 등 자급자족의 기반이 되는 터전 외에도 노래방, 영화관 등 생활 편의시설도 모두 갖춰져 있다. 개인 공간은 비교적 작게 만들고 세탁, 요리, 독서와 명상 등을 위한 공간은 함께 쓸 수 있도록 해서 주거 공간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나이, 성별, 직업 상관없이 누구나 입주가 가능하다. ‘무보수’ ‘무소유’를 원칙으로 운영되며  공동체 질서를 흐트리지 않고 주어진 소임에 충실히 임하며 자급자족의 삶에 따르겠다고 동의하는 것이 유일한 입주 조건이다. 아침 예불, 채식, 유기농업, 교육 사업 등이 기본적으로 진행되지만 모두의 합의에 의해 생활 규칙이 정해지는 만큼 강요도 없고 이탈도 없다. 

행복한마을은 부산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4인 가족이 100평 규모 한 채에 함께 머물며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부산 ‘행복한마을’, ‘베지나랑’ 부산점 등 조금씩 외연을 넓히고 있는데 목표는 하나. ‘공생의 삶을 통해 진정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세상에 행복을 전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과 이익이 되는 일을 행함으로써 모두 함께 행복해진다’다.

혈연을 넘어선 공동체가 세계 곳곳에 생겨나면서 국내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들이 만들어졌지만, 아직까지도 금전적 어려움이나 부족한 신뢰 관계 등으로 진정 살아 숨 쉬는 공동체를 만나기 쉽지 않다. 행복한마을이 10년 넘게 유지되고 점차 역량을 넓혀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 은산스님은 그 이유로 ‘무소유’와 ‘대중’의 존재를 꼽았다. 

“수행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는 무소유의 삶이 필수다. 가진 것이 없으면 수행 외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모두 가진 것이 없을 때 자연스레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 주인이 없다는 건 결국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런 공동체 속에서는 특별한 청규도 필요 없다. 대중이 가장 무서운 어른이기 때문이다. 출가자인 나 스스로로 가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대중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내가 가진 경계의식을 끊임없이 깨트리려고 한다. 행복한마을 사람들은 서로 그런 사이고 그런 관계여야만 한다.  그래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거다.”

거창=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불교신문3586호/2020년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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