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4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경전으로 본 부처님 자비희생 정신


부처님 전생담 ‘자타카’ 등
다양한 경전에 생생히 기록
뭇 생명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육신까지 과감히 던져

위대한 깨달음 얻으신 부처님
아승기겁동안 생을 거듭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며 공덕 쌓아
깨달음으로 가다 장애 만나도
좌절이나 포기 말고 정진해야

희생과 보시를 상징하는 부처님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불자들에게 회자되며 감동을 선사했다. 인도 아잔타 석굴, 실크로드 주요 거점에 조성된 키질석굴, 돈황석굴 등에서는 부처님 본생담을 그린 벽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동국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209호 보협인석탑에는 시비왕전생도가 새겨져 있다. 허벅지 다리를 자르는 시비왕의 모습과 저울을 들어 비둘기와 무게를 재보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희생과 보시를 상징하는 부처님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불자들에게 회자되며 감동을 선사했다. 인도 아잔타 석굴, 실크로드 주요 거점에 조성된 키질석굴, 돈황석굴 등에서는 부처님 본생담을 그린 벽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동국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209호 보협인석탑에는 시비왕전생도가 새겨져 있다. 허벅지 다리를 자르는 시비왕의 모습과 저울을 들어 비둘기와 무게를 재보는 모습. ⓒ불교신문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인류역사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소중한 일상을 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만한 얘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긴 원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인간의 욕망 때문에 빚어진 참사라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개발과 편리를 목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 존재를 위협받은 자연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바이러스의 역습인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절감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적확성이다. 지난겨울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세계로 확산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서로 연기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나라고 지칭할 그 무엇도 없고, 늘 변하며,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떻게 부처님께서는 2600년 전 이런 가르침을 남기셨나 하고 놀라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설한 진리는 사는 곳이 다르고, 성별이나 나이가 달라도,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제자들이 부처님을 추앙하고 더 나아가 신화화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특히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어 위대한 성인이 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쌓았으리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현생에서 6년간 고행의 결과로 깨달은 게 아니라 전생에 선업을 쌓은 결과로 부처가 됐다는 믿음은 빠알리어로 쓰인 <자타카(Jatak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타카>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보살이었을 때의 행적을 담은 가장 이른 경전이다.

보살은 어느 때는 왕이나 왕자로 태어났고, 때로는 바라문으로 수행하며 선업을 쌓았다. 뿐만 아니라 토끼, 사슴, 원숭이, 코끼리 같은 동물로 태어나 다른 생명을 위해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보살은 아승기겁동안 생을 거듭하며 고통을 이겨내고,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한 결과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수승한 깨달음을 얻었다. 윤회를 믿었던 당시 인도인들은 부처님 전생설화를 접하며 불교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자타카>가 한역된 후 부처님 과거생에 대한 이야기는 한역경전 곳곳에서 확인된다. 부처님 일대기를 서술한 <과거현재인과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이 과거 어느 세에 선혜보살로 있을 때 보광여래로부터 수기를 받은 후 여러 생을 반복해 정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교화했다고 서술돼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되기 전 생에 보살은 한량없는 공덕을 닦았는데, 태어남과 동시에 가장 소중해진 목숨까지 내어놓는 보시행을 실천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는커녕 환희심을 갖고 보시했다는 내용은 경전에 흔히 등장한다.

한역경전 중에도 부처님 전생을 기록한 경전이 여러 종류다. 오(吳)나라(223-253) 때 월지국 출신의 학승 지겸(支謙)스님이 한역한 <보살본연경(菩薩本緣經)>이 있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 육바라밀로 부처님 전생담을 분류한 <육도집경(六度集經)>도 있다. 부처님이 현세에 겪은 일을 전생의 일화를 통해 그 인연을 설한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이 있고, 불교 3대 비유경이라 불리는 <현우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 부처님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전생담 속 주인공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은 ‘시비왕’이다. 워낙 유명한 탓에 <보살본연경> <육도집경> <현우경> 등 여러 경전에서 확인되며, 부처님 전생을 그린 그림에도 자주 등장한다. 인도 아잔타 석굴을 비롯해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었던 키질석굴과 둔황석굴 벽화로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국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209호 ‘보협인석탑’에도 시비왕본생도가 새겨져 있다.
 

북위시대 돈황254굴에 그려진 시비왕본생도. 불교신문 자료사진
북위시대 돈황254굴에 그려진 시비왕본생도. 불교신문 자료사진

시비왕은 생명의 경중을 따지는 현대인에게 큰 울림을 주는 보살이다. 어느 날 비둘기로 변한 비수갈마가 시비왕에게 날아들어 매에게 쫓기고 있다며 살려달라고 청한다. 매로 변한 제석천이 자신의 먹이를 내놓으라고 청하니 시비왕은 자신은 일제중생을 제도하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에 비둘기를 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매는 자신 또한 일체중생으로 먹이가 없으면 살 수 없다며 비둘기를 달라고 재청했다.

왕이 비둘기 대신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주겠다고 하자, 매는 비둘기와 똑같은 무게로 살을 베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왕이 아무리 살을 베어내도 비둘기 무게보다 한 없이 부족했다. 결국 왕은 저울 위에 올라서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를 보시하겠다고 말했다. 제석천이 왕의 희생을 찬탄하자 시비왕의 몸은 이전으로 돌아갔다. 시비왕은 바로 부처님 전생으로,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해 신명을 돌아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잡보장경>에는 자신의 살을 베어 굶주린 부모를 살리는 아이의 이야기가 전한다. 왕자간 싸움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한 왕자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 7일분의 식량을 챙겨 달았는데, 10일이 넘도록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서 세 식구는 아사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의 살을 베어 부모를 공양한다.

인가에 도착하기 직전 오직 세 점의 살만 남았을 때 부모가 각각 한 점씩 공양하고, 아이는 마지막 남은 살점을 굶주린 이리에게 내어줬다. 이 모습을 지켜본 석제환인은 “아이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몸의 살이 도로 생겨 예전과 같이 되고 후회한다면 여기서 곧 죽을 것”이라 했는데 아이의 몸은 회복돼 본래와 다름없게 됐다. 부모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명까지 던지는 희생을 보여준 아이가 바로 전생의 부처님이다.

<금광명최승왕경> ‘사신품(捨身品)’에는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호랑이를 위해 몸을 살타태자가 나온다. 삼형제 중 막내인 살타태자는 형들과 함께 숲에 갔다가 어미 호랑이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일곱 마리 새끼 호랑이를 보았다. 먹지 못해 앙상한 어미 호랑이가 안타까웠던 살타태자는 그 앞에 몸을 뉘였으나, 보시행을 지켜본 호랑이는 차마 입을 대지 못했다.

다시 태자는 높은 곳에 올라 몸을 던졌으나, 신선들이 왕자를 받아 다치지 않았다. 결국 태자는 마른 가지로 자신의 목을 찔러 피를 내 호랑이 먹이로 자신을 내어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부모는 태자가 남긴 몸의 사리를 거두어 공양하고 탑 속에 넣었다. 살타태자의 헌신으로 부처님은 위없는 진리를 더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고 찬탄했다.

살타태자의 일화 역시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도 널리 회자됐다. 중국 석굴벽화에도 살타태자 이야기가 전해지며, 일본 호류지 소장의 다마무시즈시(玉蟲廚子)에 그려지기도 했다.
 

일본 호류지 소장 다마무시즈시에 그려진 살타태자 이야기.
일본 호류지 소장 다마무시즈시에 그려진 살타태자 이야기.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동물로 태어났을 때도 정법을 전하며 자기를 희생했다. <보살본연경> ‘토품’에는 보살이 토끼의 몸으로 태어났을 때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혜가 성취된 토끼왕이 토끼들을 위해 설법하는 것을 한 바라문이 들었다. 세속을 여의고 출가해 법을 닦은 바라문은 토끼왕을 찬탄하며 함께 수행하고 싶지만 숲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탓에 떠난다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이별을 안타까워한 토끼왕은 선지식을 위해 작은 공양을 베풀겠다며 바라문에게 내일 아침 다시 오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날 밤 마른 섶을 많이 모아 놓은 토끼왕은 아침이 되자 불을 붙인 섶으로 뛰어들었다. 빈궁해 보시할 게 없으니 자신의 몸을 보시한 것이다. 토끼왕의 죽음을 슬퍼한 바라문은 죽은 토끼를 안고 자신 또한 불구덩이로 뛰어들며 내세에 토끼왕의 제자로 태어날 것을 발원했다.

<불설구색록경(佛說九色鹿經)>은 부처님께서 전생에 아홉 빛깔의 털에 흰 뿔이 달리 사슴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실은 경전이다. 어느 날 사슴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 은혜를 갚겠다는 이의 청을 사양한 사슴은 자신이 이 물가에 산다는 걸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때 한 왕이 병에 걸린 부인을 위해 아홉 가지 색깔의 털과 흰 뿔을 가진 사슴을 찾으며,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상금을 걸었다.

사슴으로부터 목숨을 구한 바 있는 이가 왕을 찾아와 사슴이 사는 곳을 알리니, 그 자리에서 그는 병을 얻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이 사슴을 만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이야기를 듣고 은혜를 저버린 이를 크게 꾸짖고, 사슴을 보호하라고 명했다고 한다. 이 사슴이 부처님 전생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가 제바닷다라고 한다.

본생담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한 사람은 선한 결과를, 악한 사람은 악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매 이야기마다 인과응보의 결말을 선사하면서,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본생담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이야기마다 인과응보로 결말을 지으면서, 선한 사람은 선한 결과를, 악한 사람은 악한 결과를 얻는다는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또한 위대한 성인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겪었던 희생과 헌신을 보며,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장애를 만나더라도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아승기겁을 수행하면서 부처님은 주변의 사람은 물론 동물들까지 모두를 위해 보시했고, 인욕 했고, 심지어 목숨을 버리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때로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극단적인 희생을 하기도 하지만, 보살은 생을 거듭하며 선업을 쌓았다. 보살은 고통을 인내하고 희생하며 무한한 공덕을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을 성취했고, 부처님께서는 그 결실을 중생들에게 회향했으며, 마침내 대자유인으로 열반에 이른 것이다.

브라흐만교를 통해 윤회와 업을 믿었던 인도인들에게 계급을 부정하고 중도와 연기를 설한 부처님은 생소한 존재였을 것이다. 전생담은 부처님과 불교가 중생들에게 다가가는 매개가 됐으며, 이를 토대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더 나아가 부처님 전생담은 문학의 장르가 됐고, 불교미술로 재탄생했다.

인도 산치대탑이나 바르후트대탑에 본생담 이야기가 부조로 조각됐고, 실크로드를 따라 조성된 수많은 석굴사원과 사찰에 벽화로 남았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타인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희생하는 부처님의 삶을 떠올리며, 지혜를 닦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불교신문3586호/2020년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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