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정진으로 모든 것 쏟아내자는 마음뿐”
“목숨 건 정진으로 모든 것 쏟아내자는 마음뿐”
  • 진각스님 상월선원 입승
  • 승인 2020.03.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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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선원(霜月禪院) 무문관 동안거를 마치고

유례없는 청규를 지키며 수행했던 위례 상월선원 입승 소임을 맡았던 봉은사 총무 진각스님이 본지에 수행담을 보냈다. 추운 겨울 난방도 하지 않은 채 하루 한 끼 공양하며, 삭발 목욕도 하지 않은 채 옷 한 벌로 하루 14시간 정진한 아홉 명의 스님은 천막 안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겨울을 보냈다. 진각스님은 코로나19로 회향법회가 취소돼 동안거 내내 천막 밖에서 응원하고 정진해온 대중들을 직접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전하며 대신 지면을 통해 인사했다.

진각스님
진각스님

상월선원(霜月禪院)

“밤이 이슥하도록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아 정진하는 곳.”

지난해 11월11일 위례 남한산성 서쪽 산자락으로 아직도 늦가을 단풍이 온산을 붉게 물들인 산색을 보며 겨울 같지 않은 조금은 이른 동안거(冬安居)를 맞이하며 특별한 노천천막결사(露天天幕結社)에 입방하였다.

원근각지에서 오신 스님들과 신도님들의 환호와 안타까운 얼굴을 뒤로 한 채 상월선원 무문관(無門關)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굳게 닫힌다. 문은 닫혔지만 여전히 밖에서는 아쉬움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차마 돌려지지 않는 듯 “힘내세요!” “건강하십시요!” 등 수 많은 응원의 목소리와 인사말을 남겨둔 채 발자국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우리 아홉 스님들은 모두들 각자 텐트와 좌복을 정리하고서 결연한 마음으로 저녁정진부터 날선 칼날 같은 죽비소리와 함께 묵언(黙言)으로 90일간의 기나긴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선원 안은 숨소리마저 얼어붙은 듯한 공간 속에 목숨 건 서릿발 같은 정진 기상만이 감돌았다. 

난방이 없는 하우스천막에 저녁부터 온도가 내려가면서 습도가 냉기로 바뀌어 추위가 옷 속을 파고들며 뼛골을 후비는 것 같다. 마치 냉동실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다. 이미 죽기를 각오한 몸. 두렵지 않았다. 정진에다 모든 것을 걸어 놓고 텐트 속에서 쉬었다 나오니 차가운 얼음물속에 들어가 있다가 나온 느낌이다.

오후시간대부터 기온이 올라가면 20~30도씩 온도차가 나면서 땀까지 흘리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신심과 결연한 의기를 꺾어 놓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극한 상황이 더욱 신심을 일으키게 하고 더 발심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선원 앞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대형 트럭이 내는 경적소리, H빔 박는 소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굉음이 들렸지만 모두가 화두라는 쇳덩이를 두드려서 황금으로 만드는 점철성금(点鐵成金) 탁마의 소리로 들렸을 뿐이다.

심지어는 개울건너 민가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마저 모두가 공부에 자양분을 주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튿날부터 찾아오기 시작한 많은 신도님들과 스님들의 기도정진열기와 아홉 스님들의 무탈하게 회향하시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서서히 위례벌판을 울린다. 

자그마한 창문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것이 보일 때 쯤 이제 이곳 천막생활환경도 적응되어가면서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들이 얼굴을 가리고 씻지 못한 초췌한 모습들이지만 눈빛만큼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상월선원 무문관 결사를 회향하고 세상으로 나온 아홉 명 스님들은 천막 밖을 나오자마자 맨바닥에서 삼배를 올렸다. 삼천대천세계에 모든 불보살님과 시은(施恩)을 받은 모든 분들에게 예경을 표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어떤 말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불교신문
상월선원 무문관 결사를 회향하고 세상으로 나온 아홉 명 스님들은 천막 밖을 나오자마자 맨바닥에서 삼배를 올렸다. 삼천대천세계에 모든 불보살님과 시은(施恩)을 받은 모든 분들에게 예경을 표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어떤 말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불교신문

어느 시점부터 밖에서 외호해 주시는 분들과 기도와 응원을 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뜨겁게 전해오면서 상월선원정진결사는 우리 아홉 스님들만의 결사가 아니라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결사라는 생각이 사무쳐 오면서 4대결사 구호로 하나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이곳 상월선원을 찾아주신 사찰들을 맞이하여 인례(引禮)보는 스님들께서 상월선원결사취지를 설명하고 결사구호를 외칠 때마다 우리 아홉 스님들도 비닐 천막으로 가려져 서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수없이 따라서 같이 외치곤 하였다.

오전11시 봉국사(奉國寺)에서 사찰음식봉사팀에서 정성들여 준비해준 도시락이 들여올 때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내 덕행으로 편안히 앉아서 받아먹을 수 있는가? 이 한 톨의 쌀이 내 입안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수많은 노고를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쓰라리게 저며 오며 목이 매여 밥이 넘어 가지를 않는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시은(施恩)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처음 출가 했을 때의 순수함은 잊어버리고 아만(我慢)만 키웠던 것이다. 다시 초심(初心)으로 시간이 되돌려진 것 같다.

행자 때 배운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구절에 “금생미명심, 적수야난소(今生未明心 滴水也難消)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였는데 물 한 방울도 녹이기 어려우니라.”

이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초심을 잊어버리고 지냈던가? 이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중이랍시고 헛된 아상(我相)을 내세우며 허세를 부려왔던가? 내 스스로도 속이고 남에게 위선을 떨며 자신을 잊어버리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저 수많은 분들의 응원의 소리에 정신 차리면서 눈시울을 붉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남모르게 좌복에서 참회의 눈물을 수없이 흘렸다.

함께 정진하는 아홉 스님들의 탁마의 인연과 바깥에서 외호해주시는 스님들과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불자님들, 이 모든 분들의 고마움을 무엇으로 보답하며 위로는 불보살님께 어떻게 은혜를 갚아나가야 하겠는가? 수미산보다 더 큰 은혜와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인연들을 생각하며 오로지 목숨 건 정진으로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버리자는 마음뿐이었다. 

시계 톱니바퀴같이 정미(精微)로운 정진으로 시간들이 흘러가면서 훌쩍 반철(양력 12월25일)이 지나갈 즈음 아무 일 없이 지내려니 했는데 해제(解制)를 한 달여 남짓 남겨놓고 어느 날 새벽시간에 긴급히 119를 불러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한 스님께서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지자 모두들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다급한 마음에 비상구 문을 걷어차고서 밖으로 후송조치를 하고자 하였으나 당사자 스님께서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서 힘겹게 작은 글씨로 ‘보드판’에 “상월선원결사정신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 죽어서야 나가지 이대로 실려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에 찬 글을 읽고서 우리 모두 눈시울을 적시면서 다시 한 번 철석같은 탁마의 정을 느끼면서 결속을 다지며 당당하게 무문관 문을 나서자는 무언(無言)의 약속을 걸었다. 

그렇게 섣달 그믐달이 지나가면서 정월 보름달이 남한산성자락으로 비춰 올라올 때쯤 마지막 일주일 용맹정진을 끝으로 정진죽비를 놓았다. 회향을 앞두고 바깥세상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심각한 분위기라고 들려온다. 당초에 십만대중이 회향식 날에 동참한다고 예정되었지만 전염성 우려로 행사가 취소되고 종정예하께서 우리 상월선원 천막 안으로 들어오셔서 친히 법어를 내려주셨다. 이때만큼은 BBS불교방송과 유튜브 담당 스님만 들어와서 생중계로 방영하였다.

코로나19 때문에 회향식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 생방송으로나마 회향의 기쁨을 함께하여 부처님의 밝은 기운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소멸하여 봄날 따스한 햇살 같은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을 되 뇌이면서 사회 보는 일감스님의 호명에 따라 회주 스님부터 무문관 밖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먼저 삼천대천세계에 모든 불보살님과 시은(施恩)을 받은 모든 분들에게 맨바닥에서 삼배를 올렸다. 참으로 북받치는 감격과 기쁨이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려 내렸다. 무문관 안에서 한 번도 밖을 보지 못했던 울타리에 걸린 수많은 소원등을 보면서 마치 내 가슴속에 매달린 느낌이 들었다.

나이 드신 노보살님께서 얽은 손으로 매단 등이며 어린아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묶어 놓은 소원들 모두 앞으로 부처님 전에 참배드릴 때마다 원만성취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드려야겠다는 발원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이 뿐만 아니라 상월선원정진결사에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이 내 몸 부처님 같은 위없는 큰 깨달음을 이룬다면 가장 먼저 이분들에게 달려가서 그 기쁨을 함께 나누리라”는 큰 서원(誓願)을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깊이 새기면서 무문관 문을 나섰다. 

입춘(立春)을 갓 지난 정월해가 기지개를 켜면서 서서히 서편하늘로 기울 무렵 3개월 만에 다시 봉은사에 돌아오니 종루 앞에서 주지 스님을 비롯한 국장 스님들과 신도 임원진들께서 열렬히 맞이하여 주었다.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 드리고 방에 들어서니 벽장 안에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이 환한 미소로 화답하여 주시고 주인 없는 방을 지키던 묵은 달력은 지난 해 11월을 가리키며 세월이 멈춘 듯 그대로 걸려있었다.

[불교신문3567호/2020년3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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