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부패에 대한 공분, 개혁 불씨 지피다
권력의 부패에 대한 공분, 개혁 불씨 지피다
  • 이경민 기자
  • 승인 2019.06.28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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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종단개혁 25주년 톺아보기 ① 새 시대의 서막

직접적 원인은 서의현 원장 3선 시도였지만
종권과 정권 결탁에 대한 반감 맞물리면서
부패 없애고 자주적 종단 만들려는 움직임
1994년 3월21일 검찰청 앞에서 상무대 비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중앙승가대 학인 스님들.
1994년 3월21일 검찰청 앞에서 상무대 비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중앙승가대 학인 스님들.

 

1994년 종단 개혁은 권력의 부패에 대한 대중적 공분과 저항 의식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직접적 원인은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서의현 원장의 3선 시도였다. 서 원장의 무소불위 권력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정부 권력으로부터 자주성을 찾기 위한 불교계 저항 의식과 맞물리면서 종단은 새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1994년은 서의현 총무원장의 임기가 끝나는 해였다. 1986년 제25대 총무원장을 시작으로 임기를 시작한 서의현 원장은 실질적인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1988년 있었던 종헌개정이다. 서 원장은 1988년 제92회 임시중앙종회에서 종단 대표자를 총무원장으로 하는 총무원장 중심제를 구축한다. 총무원장이 총무원 직원을 비롯해 사찰 주지 임면권, 종단을 비롯한 사찰 재산 감독 및 처분 승인권, 징계·사면·복권 그리고 직영사찰 운영권까지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서 원장은 1990년 8월 제26대 총무원장에 뽑히며 ‘재선’이라는 종단 사상 전례없는 기록을 세워간다. 실제로 서 원장 이전까지 4년 임기를 모두 채운 총무원장은 단 한명도 없었다. 때문에 재선에 이은 서 원장의 3선 연임은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이때만 해도 총무원장은 중앙종회에서 선출했다. 전국 24개 교구에서 직선으로 2명씩 선출한 48명과 간선의원 27명 등 총 75명의 중앙종회의원들이 총무원장을 선출할 수 있었다. 당시 직선 의원들은 겸직이 가능한 본사 주지와 주요 사찰 주지였는데 본사 주지 임면권은 총무원장에게 있었다. 간선의원을 선출하는 간선선출위원회 위원장 또한 총무원장이 맡고 있었다. 75명의 중앙종회의원 대부분 서 원장 영향 아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총무원장 선출과 관련한 선거법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서 원장의 3선 연임은 과반수 이상 찬성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투표 또한 거수로 이뤄졌기 때문에 종회가 열리기만 하면 서 원장의 3선은 거의 기정 사실이었다. 다만, 종헌종법에 명시된 종헌 제43조 “총무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단, 중임할 수 있다”는 조문이 걸림돌이 됐다.

이 조문은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최고 8년까지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지만 서 원장은 ‘중임’이라는 문구를 ‘거듭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뜻을 굽히지 않은 서 원장은 결국 1994년 3월30일 제27대 총무원장으로 3선을 거머쥐게 된다. 서 원장의 권력독점도 개혁 세력의 반감을 불렀지만 그 근본적 배경엔 종권과 정권과의 결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종단은 10·27법난이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1980년대를 시작했다. 1700년 한국불교가 신군부 군홧발에 짓밟히고 사회적으로는 ‘파렴치한 소굴’로 낙인찍힌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그러나 서 원장은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재임 기간 동안 17회에 걸쳐 청와대 등에서 대통령과 여권 대표 등을 만나 친정부적 발언을 쏟아냈다.

서 원장의 버팀목이었던 노태우 정부가 1993년 막을 내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불교계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장로 대통령이 들어선 뒤 첫 정부 내각, 공공기관 등에서 불자가 소외되는 일이 왕왕 벌어졌다. 17사단 전차대대에서 대대장이 군법당 불상을 훼손하는 사건도 이때의 일이다. 

정부에 대한 불교계 반감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불자들 편에 서야 할 서 원장 지도부가 정부 편에 서면서 불은 지펴졌다. 여기에 1993년 11월 조계종 전 종정 성철스님 열반 후 전국적으로 일어난 추모 열풍은 종단 청정가풍을 복원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수행하고 화합하는 종단을 위한 자성의 열기는 정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주적 종단, 민주적 종단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상무대 비리가 터져나왔다. 군사시설인 상무대 이전공사에서 수주업체인 청우건설 조기현 회장이 공사대금 233억원을 유용했다는 수사 발표가 나온 것. 전국신도회장이자 서 원장 측근인 조 회장이 이 가운데 80억원을 서 원장이 주지로 있던 대구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 건립금으로 시주했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민주당은 이 돈이 1992년 대선 당시 민자당 대선 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권과 종권의 결탁, 언론에 비춰지는 불교에 대한 의혹과 불신, 대중적 공분이 종단 개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교신문3499호/2019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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