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종단개혁 25주년 톺아보기 ② 들불처럼 번진 개혁운동

조직력 갖춘 젊은 승가 주축 돼 범종추 결성
집행부, 공권력·폭력배 동원하며 3선 강행
정부에 진상규명 촉구, 서 원장 퇴진 운동 확산

1994년 3월23일 중앙승가대에서 개최된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 출범식. 이날 출범한 범종추는 개혁종단의 중추였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1994년 3월23일 중앙승가대에서 개최된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 출범식. 이날 출범한 범종추는 개혁종단의 중추였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1994년 종단 개혁 중심엔 조직력을 갖춘 젊은 승가가 있었다. 1980년대 민중불교운동과 사회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젊은 승가에게 서의현 총무원장의 연이은 3선 시도, 상무대 비리로 터져 나온 종권과 정권의 결탁, 정치 권력에 예속된 종단 문제 등은 더 이상 변화 흐름을 외면할 수 없게 했다. 직접적 계기는 서 원장 연임 시도였기만 그간 종단 내 쌓여있던 적폐와 구조적 모순을 자각하고 새 시대를 열고자 했던 사부대중 열망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종단 개혁 중추였던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범종추) 결성은 이 같은 열망 속에서 탄생했다. 199414일 실천승가회, 선우도량, 전국승가대학인연합 등 대표자 21인은 한국일보 송현클럽에서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승가 제단체 신년 인사회를 갖는다. 이들은 서 원장 3임을 저지하는 데 뜻을 모으고 225일에는 범종추 명칭을 확정,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범종추가 서 원장 체제를 무너트리는 중추가 될 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종단 집행부는 예정대로 “330일 예정된 제112차 중앙종회 임시종회에서 총무원장 선출의 건을 다룬다고 공고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범종추는 3238개 단체 결성을 발표하고 종정 서암스님을 비롯한 원로 스님들을 찾아 뜻을 전한다. 선우도량 상임대표 도법스님, 전국승가학인연합의장 희문스님 등 대표자 5인이 직접 봉암사 등을 찾아 호소에 나서자 원로, 중진, 종회의원 등 곳곳에서 서의현 3임 반대와 현 종단개혁을 위한 구종법회에 뜻을 실었다.

재가불자와 언론 지지도 잇따랐다. 범종추 결성에 앞서 322상무대 비리 진상규명과 서원장 3선 반대를 위한 재가불자 1천인 선언이 나왔고 한겨레, 경향, SBS 등 언론들도 이들 목소리를 전달했다. 326일 조계사에서는 서 원장 3선 반대를 촉구하는 구종법회가 열린다.

서 원장은 자신의 3선 연임을 반대하는 범종추 세력과의 갈등을 폭력배를 동원해 해결하려 했다. 무소불위 권력을 지키기 위한 무리수였다. 329일 서 원장은 상좌인 총무원 규정부장 보일스님 등을 통해 폭력배 300여 명을 동원, 조계사에서 농성중이던 범종추 스님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종로경찰서는 서 원장의 폭력배 동원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다. 선거 당일 오전10, 경찰 호위를 받고 들어온 종회의원 58명은 제112차 중앙종회를 개최, 단독 출마한 서 원장을 거수 투표로 찬성 55, 기권 1, 퇴장 1, 무효 1표로 통과시킨다. 선거 후 집행부 반대 세력은 경찰에 연행된다.

상황은 일단락 된 듯 했지만 변화의 불길을 그때부터 번져나갔다. 서 원장 측이 폭력배를 동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번진 것. 범종추 수뇌부는 3·29 폭력사태를 제2의 법난으로 간주한다. 331일 국무총리와 내무부 장관실을 방문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전 종도들의 궐기를 촉구했다.

불교계가 정부를 향해 이처럼 강력하게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는 일은 종단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범종추 투쟁 노선에 정부를 규탄하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김영삼 정부는 서 원장 집행부로부터 등을 돌린다. 불교계와 국민 여론을 인지한 법무부는 관련자를 출국금지하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한다.

개혁 흐름은 서 원장 3선 반대에서 종단 개혁 및 불교 자주화로 바뀌었다. 410, 전국 스님 2500여 명, 재가불자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승려대회가 열린다. 참석 대중은 이날 종정 서암스님 불신임과 서 원장 체탈도첩을 결의, 종단 개혁회의 출범 등 7개 항을 결의한다. 결국 3일 뒤 서 원장은 총무원장 사퇴 성명을 발표한다.

415일 조계종 제10대 중앙종회는 임시회를 개최, 서 원장 불신임과 멸빈을 결의하고 모든 권한을 개혁회의에 이양한다. 개혁회의는 이날부터 10월까지 6개월 간 각 개혁안을 입법하고 해종행위자를 징계하는 등 획기적 성과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사태, 징계자 문제 등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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