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종단개혁, 한국불교 근현대 100년을 바꾸다
94종단개혁, 한국불교 근현대 100년을 바꾸다
  • 이경민 기자
  • 승인 2019.08.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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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종단개혁 25주년 톺아보기’ <끝>
③ 종단개혁 성과와 한계


겸직금직ㆍ3원 체제 정립
불교자주화ㆍ제도개혁
인적청산 3대 과제 기반
정권ㆍ종권 결탁 벗어나
‘자율 목소리’ 내기 시작
1994년 4월13일 범불교도대회 직후 개혁회의 집행부가 총무원 청사에서 진행한 개혁회의 현판식. 불교신문 자료사진.
1994년 4월13일 범불교도대회 직후 개혁회의 집행부가 총무원 청사에서 진행한 개혁회의 현판식. 불교신문 자료사진.

 

오늘날 종단 체제와 운영의 모든 부분이 1994개혁회의로부터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단 비상기구로 출범한 개혁회의는 1994329일 구종법회와 410일 승려대회를 통해 서의현 총무원장 8년 체제를 무너트리고 418일 총무원 청사에서 현판식 가진 뒤 본격적 활동에 들어간다.

활동 기한 8개월, 1895년 도성출입금지 해제 후 100여 년 동안 이어진 종단 유구한 근현대사를 단숨에 바꾸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개혁회의는 불교 개혁을 위한 5대 지표와 10가지 실천공약, 3대 개혁과제에 근간을 두고 1994년 종단개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종단 모든 제도와 관행에 대해 대대적 수술을 가한다.

불교자주성 확보는 개혁회의가 가장 집중한 사안이었다. 이전만 해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나 종로경찰서 관계자들이 총무원장실을 출입하며 총무원장과 독대하는 등 불교계 위상은 매우 낮았다. 그럼에도 서 원장은 끊임없이 정권과 결탁, 불교의 자율적 활동을 가로막는 행위를 자행했다.

개혁회의는 이같은 작폐부터 근절시키고자 했다. 개혁회의는 먼저 서 원장 3선 반대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공권력 난입사태(329법난)에 대해 정부에 책임을 직접적으로 물었다. ‘최형우 내무장관 퇴진과 김영삼 대통령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1300여 대중이 검찰청사를 찾아 책임자 고발 운동을 전개했다. 전국 사찰에는 정부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결국 616일 최 내무장관이 총무원을 방문,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다.

자주성 확보를 선제적으로 내세웠던 개혁회의가 동시에 집중한 사안은 제도개혁이었다. 개혁회의 제도개혁의 핵심은 참종권 확대,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 종단 재정 확보 등에 있었다. 개혁회의는 공청회, 세미나 등을 수차례 열며 30여 개 종법 제개정에 착수, 이를 하나씩 정비해 나간다.

종단 주요 소임자 상호 겸직을 배제하는 겸직금지 조항을 종헌에 분명히 명시해 소수에 의한 종단 운영의 독점을 막은 것도 이때다. 같은 의미로 진행된 총무원장 직선제는 이견이 일면서 난항 속 중앙종회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개혁회의는 중앙종회를 독립적 의결기관으로 세우는 한편 기능을 강화해 총무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나갔다.

사설사암의 종단등록 의무화를 통해 삼보정재 유출을 방지하는 법안, 기초에서 기본교육 등으로 이어지는 승가교육 체계를 제도화한 것도 이 때의 성과다. 사부대중의 참여와 열망으로 이뤄진 개혁이었기에 개혁회의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 속에서 이를 종헌종법 제도 안에 차분히 반영해나간다.

그러나 8개월이라는 한시적 기한은 종단개혁을 이루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외부 문제보다 내부 개혁에 보다 집중하기 위함이었다고는 하나 329법난 사태와 관련해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하고 타협점을 찾은 부분은 지금까지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있다. 인적 청산에 있어 명확하지 못했던 부분도 한계로 남았다.

개혁회의를 구성한 99명의 개혁의원 속에는 서 원장 3선에 가담한 인물도 포함돼 있었다. 인선에 있어 특정 문중이 중심이 됐고 정작 구종법회, 승려대회에 참여했던 비구니 스님들 참여는 적었으며 재가자가 소외됐다. 이 또한 개혁회의가 이후 주도권을 잃고 세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됐다.

1994년 종단개혁은 도성출입금지 해제 후 100, 해방 후 5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한국불교 근현대사 속 종단을 옥죄고 있던 오랜 숙제들을 청산한 주역이었다. 단지 부패한 종권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간 지속돼왔던 정부 부당한 개입, 정권과 유착돼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종권의 한계를 비로소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사회적 문제에 불교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일대 전환기이기도 했다.

1994년 종단개혁이 이뤄낸 토대 속에서 종단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 출발을 기약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의 자주화, 민주화를 실현해 낼 수 있었다.

[불교신문3514호/2019년8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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