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생명 불어넣는다는 마음 뿐입니다”
“부처님께 생명 불어넣는다는 마음 뿐입니다”
  • 어현경 기자
  • 승인 2019.06.14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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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상구보리 하화중생’ 현장②
출가 60년, 불복장 전통 잇는
나주 심향사 주지 성오스님

 

스님들 사이에서 1000년을 넘게 전해온 불교의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복장작법(佛腹藏作法)이다. 불복장작법은 불상이나 불화를 봉안할 때 불상 내부 또는 불화 틀 사이에 사리나 여러 가지 물목(物目)을 넣는 의식을 말한다. 물목은 사람의 오장육부를 상징하는 물건들로 이뤄져 있는데 불복장작법은 행함으로써 불상과 불화는 비로소 생명을 얻고 예경의 대상이 된다.

장엄한 불복장작법이 지난 4월30일 불복장작법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됐다. 관리단체로 지정된 ‘대한불교 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이하 보존회)’에는 나주 심향사 주지 성오스님도 있다. 1959년 13세 어린 나이에 은사 봉하장조(峰霞長照, 1887~1978)스님을 만나 입산했다는 성오스님은 어느새 법납 60년을 맞았다. 

출가해 20여 년간 은사 스님을 시봉하며 불복장을 익힌 성오스님은 지난 60년간 복장의식을 행해왔다. 입적한 은사 스님과 60살 차이가 난다는 스님은 이제 자신이 출가했을 때 은사 스님과 같은 나이가 됐다. 60갑자가 흘렀지만 기억은 뚜렷하다. 은사 스님은 불교중앙학림을 졸업하고 내외전에 능통했다. 백양사에서 ‘엘리트’로 통하며 많은 스님들을 가르쳤는데, 성오스님에게는 “중노릇 잘하라”는 말씀만 했다고 한다. 또 책이나 공책에 따로 적어두면 언제 찾느냐 늘 머릿속에 기억해두라고 엄하게 가르쳤다.

밀교의식인 복장의식은 <조상경(造像經)>을 근간으로, 스님들 사이에서 은밀히 전수돼 왔다. 재가자는 물론 사미나 막 구족계를 수지한 스님들에게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스님들만 있는 공간에서도 병풍으로 가린 뒤 증명법사와 아사리 등 소수 스님만 참여해 점필의식을 행할 정도다. 성오스님 또한 은사 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눈으로 익힌 게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불복장작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문화가 없었다. 그저 어른 스님 어깨 너머로 복장의식 준비과정에서부터 의식진행까지 보고 배우는 게 전부였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감히 한눈 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복장에 들어가는 물목을 준비할 때부터 소홀함이 없어야 했다. “복장에는 오시화(五時花)라고 해서 다섯 가지 꽃이 들어간다. 어느 날 은사 스님을 따라 꽃밭으로 갔다. 가지가 꺾였지만 꽃모양이 좋아 얼른 땄는데, 그걸 본 은사 스님이 부처님 전에 올리는데 가장 좋은 꽃을 따야지 않겠냐고 다른 꽃을 따라고 했다. 은사 스님은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신심을 담아야 함을 일러주고 또 그런 과정을 몸소 보여줬다.”

성오스님은 은사 스님에게 전수받은 대로 지금까지 복장에 들어가는 물목을 손수 마련한다. “후령통만 해도 비단 위에 풀을 발라 한지 붙이기를 여러 번 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표구상 같기도 하고 공작수업을 한다고 할 정도의 작업”이라고 스님은 설명한다. 후령통은 불상이냐 불화냐에 따라 다르다. 불상은 원형의 후령통을, 불화는 사각의 복장낭을 봉안하는 게 일반적이다. 

뿐만 아니라 후령통에 들어가는 진심종자, 오륜종자, 입실지 등 전부 손으로 쓰고, 발원문도 직접 쓴다. 혹자는 인쇄해서 쓰기도 한다지만 스님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쓰는 것부터 만드는 것, 채집하는 것까지 모두 직접해내는 스님은 복장을 종합예술이라고 불렀다. 비단에 한지 배접하는 것부터, 비단을 재단해 후령통을 만들고, 후령통에 넣을 물목에 일일이 글씨로 써야 한다. 또 오보병 안에 넣을 14가지 종류의 물목을 마련하기 위해 산으로 들로 채집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령통이나 오보병을 만드는 등 재단에 필요한 시간은 1달이지만, 복장에 들어갈 물목을 준비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길게는 1년가량이 필요하다. “오곡(五穀) 중에 피가 있다. 논에서 피가 자라면 뽑아버리기 때문에 잘 팔지도 않는다. 가을 논에서 보이는 데로 채취해야 한다. 오보리수엽(葉)이라고 해서 나뭇잎도 준비해야 하는데 한 겨울에는 나뭇잎이 떨어져 구할 수 없지 않나. 제철에만 구할 수 있는 제물들이 있어 원칙적으로 1년은 걸린다는 의미다.”

이렇게 준비된 복장물들은 7~8시간의 의식을 거쳐 불상에 봉안된다. “의식 중에 108번 진언을 외고, 또 108번을 2번 반복할 때도 있고, 12번 반복해야 하기도 한다. 7~8시간 봉안의식 후에 이튿날 점안법회를 봉행한다. 

제물준비가 까다롭기 때문에 스님은 필요한 물목들을 구비해놓았다. 그래서 스님 방은 만물상 같다. 나뭇잎, 꽃잎을 따서 말린 것은 물론 오약(五藥)이라고 해서 인삼, 감초 같은 것은 물론 비상이나 부자 같이 구하기 어렵고 관리가 까다로운 약재들도 있다. 금값보다 비싼 우황은 물론 바닷가에 1000년은 묻혀야 된다는 침향도 있다. 복장에 봉안되는 제물들이 방안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우리 몸속에 오장육부가 있듯이 복장에도 이 같은 이치로 물목이 봉안된다”고 설명하는 스님은 오곡과 오보(五寶) 오약, 오향, 오황, 오길상처, 오색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들려줬다. “사람이 먹어야 살 듯 오곡은 먹을 것을 주고, 오보는 사는 데 필요한 재물을 의미한다”며 “오약은 건강, 오향은 몸에서 품어나는 향기 즉 인품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다섯 가지 번에는 각각 부처님 명호가 적혔는데 이처럼 기도한다는 의미며, 오색실은 잡스러운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결계, 오보리수와 오길상초는 수행, 양산과 같은 오산개는 깨달음을 상징한다”며 “결국 불복장에 봉안하는 물목들은 원초적인 생활에서 출발해 생사를 뛰어넘어 깨달음까지 연결되는 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해석을 내리기까지 수차례 복장의식을 행했다. 고불총림 백양사 사천왕과 제5교구본사 법주사 팔상전, 공주 동학사, 완주 송광사, 나주 심향사, 세종 영평사, 마하보리사 등에서 불복장작법을 설행했고 오는 20일에도 세종 학림사 관음보살상에 복장을 봉안할 예정이다. 스님은 어릴 때 은사 스님을 시봉하며 불복장을 배운 것은 전생의 인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담양 호국사 복장 봉안의식을 행할 때 1660년에 조성됐다는 조성발원문을 확인했는데 당시 증명법사 법명이 저와 같은 성오(性悟)였다”며 “또 심향사 부처님 복장에서 나온 기록을 보니 저와 법명이 같은 성오스님이 이번엔 정통 소임을 맡고 있었다. 불복장에 나온 기록마다 성오스님을 찾아내다보니 전생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스님은 내가 부처님을 모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행할 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불복장작법을 하진 않는다고 한다.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작법인 만큼 후학들에게 전수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기회가 닿지 않았다. 요새 스님들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지 배우려는 스님이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부처님 불복장 하고 싶은데 얼마냐”고 묻는 시대이기도 하다.

성오스님은 “경전만 읽어서는 불복장작법을 행하기가 어렵다. 신심을 갖고 불복장작법을 익히고자 하는 스님들이 생겼으면 한다”며 “사찰도 신심으로 복장불사를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나주=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  성오스님은… 

1959년 백양사에서 봉하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9년 백양사에서 서옹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백양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하고 광주 마하보리사 주지,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와 11대, 12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나주 심향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대한불교 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가 불복장의식을 재현한 모습. 사진 아래쪽이 서방법사 성오스님이다. 사진=문화재청
‘대한불교 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가 불복장의식을 재현한 모습. 사진 아래쪽이 서방법사 성오스님이다. 사진=문화재청

■ 불복장작법은…

불복장작법이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됐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후기 불상에서 불복장 유물 다수가 확인된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조상경>을 근거로 불복장의식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상경>은 1575년 담양 용천사 판본, 1677년 고흥 능가사 판본, 1746년 김룡사 판본, 1824년 금강산 유점사 판본 등이 전해진다. 조선 후기 <조상경> 발간이 확대된 것은 불복장작법이 그만큼 대중화됐음을 의미한다. 또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보존회에는 성오스님 외에도 해인사 한주 무관스님과 광주 복암사 주지 도성스님, 서울 경국사 주지 경암스님, 태고종 담양 용화사 주지 수진스님 등이 활동 중이다. 종단이 빌간한 <전통불복장의식 및 점안의식 학술보고서>를 보면 5명 스님이 행하는 불복장작법의 원류는 고불총림 백양사임에도 스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양사 화담법인스님에서 비롯돼 금해관영스님을 거쳐 묵담성우스님으로 전해진 맥은 1980년대 무관스님과 수진스님으로 이어졌다. 두 스님은 묵담스님 필사본을 저본으로 의식을 행한다. 화담스님, 금해스님과 환응스님에 이어 만암종헌스님의 맥은 수산스님을 거쳐 1976년 경 도성스님에게 전해졌다. 백양사 환응탄영스님에서 시작돼 봉하장조스님으로 이어지는 맥은 1970년대부터 성오스님이 잇고 있다. 

성오스님은 “아리랑이 지역마다,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듯 복장의식도 스님마다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간행 시기는 가장 늦지만 여러 의식을 집약해 활용도가 높은 유점사본에 따라 의식을 행한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495호/2019년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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