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이 정당한 권원(權原) 없이 점거중인 순천 선암사에서 총 50점 이상 성보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조계종 25개 교구본사 중 가장 많은 수치로 관리 부실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계종이 발행한 <불교 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에 따르면 지금까지 선암사에서 사라져 찾지 못한 성보는 총 18건으로 48점에 달한다. 선암사 산내 암자인 대승암 등에서 없어진 불교회화까지 더하면 총 50점에 이른다. 이는 조계종 25개 교구본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조계종 ‘도난백서’와 비교해 도난 건수가 보다 적게 집계되는 문화재청 ‘도난 문화재 목록’만 봐도 선암사가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청 도난 문화재 목록에 따르면 선암사 성보 도난 건수는 총 8건 38점으로 확인된다. 그간 유실 또는 회수된 건을 제외하더라도 눈에 띄는 수치다. 선암사를 제외한 24개 교구본사 중 18개 본사의 문화재 도난 건수는 0~1건에 불과하다. 다른 4개 본사는 2~3건에 그쳤다. 최대 도난 건수를 기록하고 있는 나머지 2개 본사도 각각 4건과 5건에 그친 데 비하면 선암사 도난 건수가 2배 이상에 달한다. 지역을 고려해 선암사와 같은 권역에 있는 조계산 송광사만 살펴봐도 문화재 도난 및 분실 건수는 단 1건에 불과하다.
도난 당한 선암사 성보는 불교 회화부터 석조물, 공예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선암사 ‘팔상전 삼십상 조사도’는 석가모니부처님과 33조사를 그린 것으로 1753년 제작, 존자별로 상호 표현이 두드러지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총 11폭 중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7폭을 제외한 4폭이 없어져 지금까지 회수되지 않고 있다. 1742년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선암사 고승 ‘상월당 대사 진영’, 18세기 제작된 선암사 동종 등 그밖에도 적지 않은 문화재가 도난 및 분실 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60년 가까이 선암사에서 실거주하고 있는 태고종 측 입장을 물었다. 태고종 선암사는 명백한 관리 소홀 책임을 인정했다. 태고종 선암사 주지 시각스님은 “도난 문화재가 유독 많다면 보존 관리를 잘 했어야 하는데 허술한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사실상 항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도난 문화재 존재조차 몰랐다는 시각스님은 “사찰 운영이 체계적으로 잘 되고 있다면 모를까 조계종과 달리 도난 문화재를 관리할 여력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선암사가 전국 교구본사 중 최다 도난 건수를 기록하고 있는 데는 이를 수수방관해 온 태고종 측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선암사에 대한 법적 소유권은 조계종에 있지만 태고종 측의 장기간 무단 점유로 조계종이 직접적인 관리 점검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보가 사실상 방치된 셈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계종은 2011년 태고종과의 분규 종식 합의를 맺으며 ‘성보 일제조사’를 시행, 상시적으로 도난 문화재에 대한 관리 점검 및 회수 노력을 해오고 있다. 조계종이 참여한 일제조사 이후 도난 및 분실 건수는 아직까지 확인되거나 보고된 바 없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스님은 “도난 건이 한두 건도 아니고 다른 사찰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데는 조계종의 일제조사 이전까지 불교 성보가 사실상 버림받다시피 방치돼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성보를 실질적으로 관리해온 태고종 측은 물론이고 재산관리권을 갖고 있던 순천시 역시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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