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현대인의 삶…연기법에 해법 있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거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가고 있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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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1973년,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로렌스 요기 베라 감독의 말이다. 그가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뉴욕 메츠의 감독을 맡았던 시절, 형편없는 팀 성적에 책임지고 사퇴해야 할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 말을 한 후, 기적적으로 팀은 지구 우승까지 차지한다. 원래는 희망의 메시지였던 이 말이 두려움을 주는 불길한 예언처럼 다가오는 요즘이다. 정말 언제쯤이면 이 암흑이 걷히는 걸까. 이제 좀 끝나면 안 되나. 

얼마 전,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의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며, 종식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수십억 개의 백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제 끝나가나 싶던 사람들, 특히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탁월한 수준의 방역 성공을 이뤄낸 우리나라 국민들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올 법하다.

도대체 이 암흑 같은 끝없는 터널을 언제까지 지나가야 하는가. 오랜 코로나 봉쇄조치와 방역,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단적 피로감은 누적되고 있다. 날카로운 경계심은 어느새 익숙한 위기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요즘이다. 현재는 이미 암울하고 미래는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전 세계 누적 확진자 수는 전 세계 20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사망자는 약 73만 명에 이르고 있다.(8월9일 현재) 

이 거세고 혹독한 폭풍이 지나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과연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혹자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세계 경제와 다를 바 없어서 경제 대공황이 예상된다고 하고, 혹자는 자유무역주의의 종언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이제는 이 팬데믹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이런저런 미래 예측의 공통점은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인터넷과 실시간 언론 보도 세대가 겪은 첫 팬데믹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바이러스의 확산과 피해 정도를 동 시간대에 확인할 수 있어서 투명성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심리적 충격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우리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 수많은 시신이 집단으로 매장되는 모습들을 여과 없이 지켜봐야 했고, 심지어는 그 시신들이 안치돼야 할 관이 모자랄 정도였다. 정보가 투명한 만큼 적나라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고,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감염자의 수만큼 매시간 심리적 압박감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가을이나 겨울로 예상되었던 2차 대유행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신규 확신자 수는 다시 치솟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뚜렷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 이제 사람들의 두려움은 코로나 팬데믹 그 자체를 넘어서 그 이후의 상황까지 가 닿아 있다.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미래에서 혹여나 희망을 보고 싶어 하는 미망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

코로나가 얼핏 가라앉는 듯한 추세일 때만 해도,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를 고민하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코로나가 종식되는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 T.H. 찬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만약 백신이 제때에 개발되지 않는다면, 코로나가 2024년까지도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서 더욱 암담한 것은 코로나가 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의 통계는 21세기 들어, 대규모 바이러스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가 연이어 발생했고 또 다른 바이러스의 발생 가능성도 아주 높게 예상하고 있다.

이름만 바뀔 뿐, 새로운 바이러스는 새롭게 생겨나고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한 마디로 코로나가 종식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잠시 또는 임시라고 생각하는 생활방역이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코로나 이후를 얘기하기 전에 현재의 사태를 대하는 우리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최근 통계는 21세기 들어, 대규모 바이러스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가 연이어 발생했고 또 다른 바이러스의 발생 가능성도 아주 높게 예상된다. 이름만 바뀔 뿐, 새로운 바이러스는 계속 생겨날 것이고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코로나와 같은 대 유행병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www.shutterstock.com
최근 통계는 21세기 들어, 대규모 바이러스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가 연이어 발생했고 또 다른 바이러스의 발생 가능성도 아주 높게 예상된다. 이름만 바뀔 뿐, 새로운 바이러스는 계속 생겨날 것이고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코로나와 같은 대 유행병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www.shutterstock.com

뉴노멀(New Normal)

지난봄부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까지 앗아가거나, 바꾸어 놓았다.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매일 학교 가고, 출근하고, 장보고, 친구 만나는 일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는 이제까지 당연시 누려왔던 것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친구를 만나서 식사하고, 웃고 떠들고 하는 일상의 소소함이 이제는 정말 소중해지는 때이다. 외출할 때면 반드시 마스크를 해야 하고, 학교 수업이나 의료, 금융기관의 각종 서비스도 접촉을 제한하거나 아예 차단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소위 ‘뉴노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에 없거나 하지 않았던 삶의 양식들이 이제는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삶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개인의 일상 영역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코로나 사태 초기에 각국이 보여준 국경봉쇄조치를 기억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현재도 이 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 간의 항공기, 선박, 철도 운행이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자국의 안보와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면서, 재화 공급망의 붕괴로 인한 물자 조달이 더욱 어려워져 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암담하게 만드는 건 봉쇄와 폐쇄 또는 분리와 단절이 가장 효율적이고 손쉬운 선택지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에도 언제든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망설임 없이 국가, 지역 간에도 봉쇄와 폐쇄로 치달아 갈 가능성이 크다. 그 효용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말이다. 서로 연결하고 의존했던 나라와 나라 사이뿐만 아니라 공동체 사이에도 국경 그 자체보다 심리적 장벽이 더욱 높고 선명하게 그어지고 있다. 

단절할 것인가, 연대할 것인가

지난 설 연휴가 끝나갈 무렵, 남의 나라 중국에서 발생한 독감 바이러스 정도로 여겼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제 세계적 대 유행병이 되었다. 일부 지역의 고통이 전 세계적 고통으로 번져나가는 모습, 개인의 고통의 집단의 고통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붓다의 연기법을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우리 공동체의 운명이 서로 의존적이며, 우리의 안전이 곧 이웃의 안전에 달려있다는 점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결국 지구 공동체의 인류 전체가 동질성을 느끼는 상황이 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심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전체 공동체를 순식간에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짜 두려운 바이러스는 대중의 분노와 맹목적 불신, 단절과 폐쇄심리에서 오는 공황 상태일 것이다. 즉 정말 심각하고 위험한 것은 코로나 대유행 그 자체보다도 그 속에서 야기되는 인간들의 심리적 야만성일 것이다. 찰스 디킨스는 그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에서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파리와 런던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시선은 대혁명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들의 광기와 폭력에 주목한다.

결국 대유행이든, 대혁명이든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 그 엄청난 변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들의 존망과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제2차 대유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분리와 단절의 선택을 할 것인지, 신뢰와 연대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의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불교신문3605호/2020년8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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