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비출 때

고훈실

나는 늘 놀이터를 내려다본다.

“아이참, 이런 달동네까지 왔는데 조금 더 주셔야지.”

택시 기사가 동네 사람들과 자주 실랑이했다. 달동네가 무슨 뜻이지? 달이 가까운 동네라는 뜻일까. 달동네의 바쁜 아침이 지나가면 할머니들이 놀이터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 동네가 좀 높아서 그렇지 경치 하나는 최고야. 시내가 다 보이잖아.”

“그럼. 내 80 평생 살아도 이렇게 시원한 동네는 없어.”

할머니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나는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에 먼 곳을 볼 수가 없다. 밤이 되자 여학생 무리가 내 아래로 모여들었다.

“저 별들 좀 봐. 어쩜 저렇게 반짝일까.”

“반달도 너무 예쁘게 떴다. 곧 보름달 되겠지?”

여학생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끝없이 재잘거렸다. 별과 달이 궁금해서 나도 위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음날. 노란 옷을 입은 아이가 엄마와 함께 왔다. 작은 가방을 매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다 걸음을 멈췄다.

“엄마. 하늘이 파래서 바다 같아요.”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위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러네. 꼭 바다 같은 하늘이야.”

잠시 후 유치원 차가 아이를 태우고 떠났다. 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할 수만 있다면 숙인 고개를 쭉 펴서 위를 실컷 보고 싶었다.

‘누가 내 고개 좀 펴 줘요,’

웅웅 외쳤지만 아무도 답이 없었다. 아래로 숙인 고개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놀이터로 왔다. 아이들이 뛰어다닐 때 햇살 냄새가 퐁퐁 났다. 놀이기구에 싫증 난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래밭으로 갔다. 아이들이 편을 갈라 모래 싸움을 시작하면 나는 걱정이 앞섰다.

“받아랏.”

모래가 날아와 내 몸을 세게 쳤다. 모래가 할퀸 곳마다 쓰리고 아팠다.

“그만 좀 해.”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웅웅하는 쇳소리로 들릴 것이다. 악동들이 한바탕 놀이터를 휘젓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내 얼굴에 환한 불이 켜지면 아이들은 약속처럼 집으로 돌아갔다.

‘흥. 못살게 구는 녀석들을 비추고 싶지 않아.’

내 심통에 가끔 불이 안 켜졌다.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계단에서 넘어지곤 했다.

“이 가로등 고장이 너무 자주 나는데.”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느님. 정말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느 날, 술에 취한 아저씨가 하늘에 삿대질하며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랐는지 앞 동 빌라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빌었는데, 왜 안 들어주십니까.”

아저씨는 나를 발로 꽝 찼다. 몸통 여기저기에 시커먼 발 도장이 찍혔다. 밝은 회색이 검은 잿빛으로 변했다.

‘흐엉. 이게 뭐야.’

나는 가로등인 게 싫어졌다.

‘내가 왜 이런 사람들을 비춰야 하지? 억울해.’

고개를 숙여야 하는 하루하루가 지겨웠다. 이 동네도 사람들도 떠나고만 싶었다.

어느 날 아침, 인부가 흰 팻말을 세웠다.

‘동우 3동 환경개선 공사’

부르부릉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내 옆으로 커다란 포크레인이 왔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뭐 하는 거지?’

포크레인은 이리저리 재다 내 발밑을 마구 파고들었다.

“가로등 잘 뽑아. 제자리에 그대로 세울 거니까.”

공사 반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참에 다른 가로등으로 바꾸지. 이건 고장이 자주 나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앗 조심해!”

인부의 고함이 들렸다. 동시에 방향을 돌리던 포크레인 통이 내 허리를 세게 쳤다.

“으악.”

허리가 우지끈 반으로 접혔다. 머리는 바닥에 닿을락 말락 쳐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더는 못 쓰겠구먼.”

접힌 허리는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공사 반장이 나를 함부로 걷어찼다.

“폐기물 트럭에 옮겨.”

트럭에는 찢어진 현수막부터 의자, 헌 자전거까지 허름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어디로 가는 거지?’

트럭은 시내를 벗어나 달리다 한적한 곳에 멈췄다. 철로 만든 높은 창고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인부들은 잡동사니가 널브러진 창고에 나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아이쿠.”

순간, 나는 반으로 동강 나고 말았다. 내 반쪽은 좁은 틈 사이로 속절없이 떨어졌다.

“어떡해 흐엉.”

나는 펑펑 울었다. 나를 크고 훤칠하게 만들어 주던 반쪽이었는데.

다음날 창고 문이 열렸다. 연두색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들어왔다.

“쓰레기소각장으로 보낼 것들 빨리 실어요.”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쓰레기?’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난 쓰레기가 아니라 가로등이라 구요.”

“이건 쇳소리가 왜 이렇게 커.”

면장갑을 낀 손이 나를 신경질적으로 뒤적이다 구석에 던져버렸다. 이것저것 뒤섞인 물건들이 파란 자루에 실려 나갔다. 점점 주변의 것들이 줄어들었다. 누군가 내 목덜미를 집어 들었다.

‘허걱’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고물상에 팔면 돈 좀 되겠는데.”

눈가에 주름이 많은 인부가 이리저리 나를 살폈다. 그러고는 바닥에 따로 내려놓았다.

‘휴우, 살았다.’

인부는 나를 작은 트럭으로 옮겼다. 나는 작은 트럭에 뒤집혀 실렸다. 처음으로 바닥이 아닌 위를 쳐다보았다. 파란 바탕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에 흰 솜뭉치 같은 구름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햇빛이 느껴졌다. 온 세상을 다 비추는 해는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셨다. 사람들이 말하던 하늘이었다. 나는 하늘을 보고 또 보았다.

‘참 아름답다.’

트럭은 고물이 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 나를 부려놓았다. 고물상 안쪽에는 시뻘건 녹물이 흘러내리는 고철로 가득했다.

“끊어진 가로등인데 아직 쓸 만해요.”

인부는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흥정을 했다.

“에이. 그래 봤자 고철인데요 뭘.”

고물상 주인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나를 훑어보더니 인부에게 지폐와 동전을 건넸다. 나는 뒤집힌 채로 다시 고철 더미 위에 얹혀졌다.

밤이 되었다. 밤하늘은 온통 검은 빛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반짝이는 것들이 무수하게 보였다. 여학생이 말한 별이었다.

“밤하늘이 별 밭이네.”

나는 신기해서 꿈쩍 않고 별을 쳐다보았다. 멀리서 빛나는 별은 누군가의 꿈을 조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있으니 둥근 것이 떠올랐다. 여학생이 말한 달이었다. 달은 세상 모든 것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조곤조곤 귓속말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비춘다는 건 아름다운 거구나.’

생각해보니 별과 달처럼 나도 많은 것을 비췄다. 동네와 놀이터를 그리고 내 아래 있는 사람과 강아지를.

나는 다시 가로등이 되고 싶었다. 고개를 숙여 내가 싫어했던 것조차 환하게 비추고 싶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겠지.’

반으로 동강 난 몸통 위로 달빛이 쏟아졌다.

고물상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 제철소 가는 날이니까 서둘러.”

나는 제철소란 말에 꽂혔다. 나를 가져 온 인부와 고물상 주인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제철소 가면 아직 쓸 만한 철도 다 녹여버리잖아요.”

“난 시뻘건 불을 볼 때마다 께름칙해. 꼭 쇠 무덤 같아서.”

‘녹인다. 불. 쇠 무덤.’

별과 달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무언가를 비추고 싶은데. 불길한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자자, 서둘러.”

고물상 직원들이 고철을 트럭에 실었다. 세상에서 쓸모를 다한 쇠붙이들이 짐칸에 텅 터엉 쌓였다. 나도 질질 끌려 나와 짐칸 귀퉁이에 실렸다. 부릉부릉 시동이 걸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엎어진 자세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있는 힘껏 몸을 뒤챘다.

“잠깐.”

다급한 목소리가 차를 세웠다.

“이거 내가 찾던 건대.”

꽃무늬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나를 가리켰다. 고물상 주인이 차에서 내렸다. 둘은 한참 얘기하더니 나를 끌어내렸다.

“딱 안성마춤이야.”

할아버지는 나를 이리저리 살피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러고는 낡은 오토바이 앞뒤로 길게 묶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달리는 오토바이에 매달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낯선 곳들을 지나 집이 드문드문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길가에 가로등도 별로 없었다. 한참 뒤 도심에서 떨어진 마을에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제일 안쪽 집에 멈췄다. 파란 지붕 아래 석류꽃이 빨갛게 피어있는 집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놓고 눈대중을 했다.

“보자, 조금 잘라야겠어.”

‘쇠톱으로 토막 낸다고?’

나는 나쁜 상상에 시달렸다.

‘앗!’

할아버지는 쇠톱을 내 몸통에 댔다. 싸각싸각 소리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쯤이 좋을까.”

할아버지가 대문 기둥 여기저기에 나를 갖다 대었다. 몽땅해진 내 모습이 이상했다.

“으흠. 여기가 딱이야.”

할아버지는 대문 오른편에 나를 매달았다. 그러고는 나무까지 덧대어 단단하게 묶었다. 온몸이 조여 왔다. 내가 무엇이 됐는지 궁금했다. 할아버지가 흡족한 표정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팟!

내 얼굴에 불이 들어왔다.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다시 가로등이 되다니! 너무 기뻐서 펄쩍 뛰고 싶었다.

“빛도 은은하니 좋구만.”

나는 더 힘껏 노란 불빛을 밝혔다.

“올 때가 되었는데…….”

어둑해진 마당을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딸그락 딸그락

멀리서 소리가 올라왔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할머니가 카트를 끌고 나왔다. 할아버지가 한걸음에 달려가 카트를 받았다.

“저건 언제 달았수?”

나를 가리키는 할머니한테서 달달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할멈 장사하고 오는데, 밤길 밝히라고 달았지.”

“꼭 달고나 국자 같네.”

나는 노랗고 둥글게 할머니를 껴안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 빛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 아래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내가 비춰야 할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마당 귀퉁이 황토 화분에 보라색 꽃이 한 아름 피어있고 그 옆에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운동화 한 켤레, 하늘색 우산, 대문 밖 계단들. 모두 작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가만히 비추었다.

니야옹

고양이가 잠투정하는지 뒤척거렸다. 내 불빛 아래서 모두 단꿈을 꾸는 밤이었다.

다정한 글 인연들에게 감사하다

■ 동화 당선소감 / 고훈실

도서관에서 나와 집에 가는 길이었다. 가로등이 고개를 숙인 채 일렬로 서 있는 게 보였다.늘 보았던 풍경인데 순간, 가로등도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숙인 머리 때문에 목도 아프고 짜증도 날 것 같고…. 거기에서 이 동화가 싹 텄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는 청개구리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미인은 거울을 싫어하지 않을까? 종이컵은 커피가 아니라 구름을 담고 싶을지도 몰라 등 가로등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순간은 슬프게도 고철로 팔려 나가는 트럭 위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추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고개를 숙여 세상을 둥글게 껴안는 일이 진짜 행복한 일임을 거기서 깨닫게 된다. 고통의 쓸모는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 나의 어린 친구들도 가로등처럼 자신의 가치를 알아가면 좋겠다.

시인의 길을 걷다 동화라는 샛길로 접어든 지 3년이 됐다. 쇠미산 딱따구리와 벽오동 나무, 그 곁의 해송이 친구가 되어 동행했다. 샛길에서 만난 직박구리의 소란, 구름의 합창, 나무들의 허밍이 귓전을 맴돈다. 따뜻하고 행복하다. 작년 이맘때 낙선의 눈물을 씻겨 준 것도 나무와 새 친구들이었다. 코 한번 팽 풀고 어깨 펴고 가라고 쏴아아 휘이잉 딱따다다…. 푸른 잔소리를 해댔다. 동화의 씨실과 날실은 지금도 직조 중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겨울 방어처럼 생생하게 풀어 놓을 것이다. 아름다운 뒷배가 되어주는 가족과 손 내밀어준 다정한 글 인연들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야기 전개 솜씨 일품인 작품

■ 동화 심사평 / 방민호 서울대 교수

동화는 매우 어려운 장르다. 작가의 생각이 맑고 깨끗해야 하고 이를 짜임새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구성력이 있어야 하며 문장을 간결하게 쓸 수 있는 수련도 필요하다. 첫 줄 첫 문장부터가 큰 실험이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압축적이고 시원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상징이나 비유 같은 숨겨진 의미들이 그 안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내가 너를 비출 때’가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이를 간명하게, 알기 쉽게 썼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도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제목도 좋고, 그것이 가로등 이야기라는 것도 동화에 긴요한 의인화의 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와 함께 눈여겨본 작품은 ‘우리가 좋은 친구가 된 이유’, ‘한 방울의 노정’, ‘가로등과 반딧불 루나’ 등이 있었다. 모두 좋은 작품들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데, ‘내가 너를 비출 때’와 견주어 볼 때, 주관적이지만, 약점들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우선, 세 작품이 모두 제목에서 영감을 주는데 다소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직설적이거나 한자어라거나 곧바로 주제를 연상시키는 제목은 덜 매력적이다. 문장이나 단락을 띄워가는 방식에도 유의할 점이 있다. 첫 시작, 여러 문장이 하나의 단락을 이루는 모양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에피소드들을 어떤 것을 어떻게 배치할까에 신경 써야 하는데, 각각의 에피소드가 선명한, 경우의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미 좋은 작품들이므로 조금만 더 정진하시면, 그리고 주관이 다른 심사자를 만난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불교신문의 동화 신춘문예는 해마다 아주 우수한 작품들이 응모되는 좋은 등용문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더욱 많은 작가들의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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