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두드리는 오후

김하연

“스님! 미움이 치밀어 오르다 금세 초연해지는 것은 이제 저도 나이를 먹은 탓이겠지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지요.”

“스님! 오래전 산행할 때인데요. 아기 동자 같은 청미래 넝쿨 열매를 죄다 털어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무심코 꺾어버린 솔가지, 무심히 밟아버린 꽃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 그 업보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뿐만이 아닌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도 무심코 숲에 버린 일도 있었어요. 혹시 그때 작은 생명들이 눈이 멀어버렸으면 어떡하지요?”

“그래서 내일이 불안하십니까?” 스님은 물었다.

“그 후 골짜기마다 나에 대한 골이 깊어지는 이 업(業)을 어찌해야 하나요? 하고 부처님께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그래요? 분명 잘못한 건 맞지만 너무 자학하지는 마십시오. 골이 깊어지면 합장하며 다가오는 도량 넓은 단풍나무 손길도 만나게 되고, 먼저 손 내미는 여러해살이풀 부처손도 만나게 되는 법이지요.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까? 보살님!”

흥국사(興國寺) 새벽 예불을 드리는 목탁 소리를 떠올리며 살며시 눈을 감자 어제 스님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목탁의 재료는 박달나무일까, 살구나무일까. 청명한 소리는 몇백 년 동안 참선한 나무의 수행자만이 낼 수 있는 소리인 듯했다. 산사의 뜰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은 마치 맨발의 순례자 같기도, 안팎으로 쓸고 다닌 빗자루 같기도 했다. 내 발자국이 공양간을 스치면 내 안에 잠든 목어(木魚)가 금세 물고기 뛰는 소리를 내는 듯했다.

산사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고향 집으로 향했다.

“박 서방 일은 잘 되고 있냐?”

“네, 아버지. 걱정 마세요.”

“일이 잘 된다면 명절이 몇 번을 지나도 왜 오랫동안 전화 한 통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는 것이냐?”

“아, 그건 일이 바빠서 그래요.”

“무슨 명절 때도 일을 한다냐?”

아버지는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재떨이에다 담뱃재를 털고 있었다.

“아버지도 외로울 때 있으세요?”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날 때마다 아버지는 한차례 계절병을 치르는 듯했다. 밤이면 술 마시는 일도 잦아졌다. 술잔에 달이 떨어지면 금세 대취해 나직이 달 타령을 쏟아내기도 했다. 달이 지푸라기 같은 흰 수염을 간지럽히기라도 한 듯 과실주를 목젖으로 넘길 때마다 아버지는 길게 기른 수염을 습관처럼 만졌다. 그러다 마당에 나와 서까래에다 둥지를 튼 제비집을 수시로 올려다보기도 했다.

“거 참, 많이도 낳았네. 곧 품 밖의 자식이 되어 훨훨 날아가겠구나.”

인간은 본래 혼자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 저, 갈게요. 혼자 계시더라도 밥 잘 챙겨 드시고 몸 관리 잘하세요. 아셨지요?”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고향집을 나서는 나를 향해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선 집으로 들어갔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남편에 대한 미움이 스멀스멀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사랑도 미움도 다 부질없는 것인 줄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편 채무를 보증 선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지금도 그것을 갚기 위해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까지 맛보고 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방음 시설이 된 작은방에서 북을 연신 두드리며 화를 잠재우기도 했다. 아파트만 아니라면 소고, 꽹과리, 징, 그 무엇이 되었든 두드릴 만한 모든 것이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아파트라는 공간 때문에 소리는 지극히 제한적이어야 했다.

장롱에 있는 남편의 옷을 정리하지 못한 것은 경제적인 면이 좀 해결되면 다시 합치려고 맘을 먹어서였다. 하지만 삼 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 얼굴 한번 맞댄 적이 없어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은행 대출금 일부를 정리하기 위해 전세 보증금을 빼어 갚고 사글세로 이사를 했다. 이사 한 아파트는 다행히 남향이어서 베란다에 놓인 제라늄이 수시로 꽃을 피워냈다. 이 집을 계약한 것은 지대 높은 아파트 아래로 펼쳐진 먼 섬들 때문이었다. 저 멀리 하멜 등대도 기념우표처럼 서 있어 누군가에게 자꾸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각자 다른 뱃길은 내가 지나온 교차로 같았고 바다는 가장 가까운 벗처럼 자주 내 수심(愁心)을 재어보는 듯했다. 그런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계약을 서두를 만했다.

일요일 아침, 이웃집 이삿짐 사다리차의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커튼을 젖혀 창밖을 내다보았다. 세간살이는 단출해 보였다. 저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으며 또 때가 되면 어디로 가는 걸까. 이사를 하는 우리는 하안거, 동안거를 마치고 만행(萬行)을 떠나는 스님들의 수행 같기도 했다. 잠시 그렇게 사색에 빠지다가 출근을 하기 위해 가볍게 화장을 마친 후 현관문을 나섰다. 이때 한 여자가 맞은편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여자는 랩으로 씌워진 무지개떡을 들고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사 온 옆집이에요. 이 라인만 떡을 돌리고 있어요.” 여자는 내게 떡을 건네주며 환하게 웃었다.

“아, 그러셨어요? 반갑습니다. 떡 잘 먹을게요.”라고 말하자 여자는 다시 활짝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이웃으로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가끔씩 만나 함께 차도 마시고 싶어요. 시간 되면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 후 떡을 받아들어 가방에 넣고서는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여자는 아주 앳되어 보이고 한 쪽 발을 약간 절었다.

학생회관 구내식당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주말에는 정오까지 푹 내리 잠만 잤다. 그날도 늦게 일어나 녹차 한 잔을 마신 후 커튼을 젖혔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돈 좀 가진 거 있어?” 그는 다짜고짜 물었다.

“당신 생각이 있어?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 참 염치도 좋아.”

“어머니 내일 생신이야. 그래도 자식의 도리는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는 도리어 큰 소리를 쳤다.

“자식의 도리를 하고 싶으면 당신이 벌어서 하지. 왜 내게 달라고 해?”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급하면 돈을 반강제적으로 내놓으라는 식이었다. 내가 먼저 통화를 툭 끊고 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머니 생신인데 모른 체할 수만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체면이라도 살려주고 싶어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삼십만 원 송금할게. 이게 마지막이야. 그걸로 어머니 용돈 직접 드려. 난 일 때문에 못 뵈니까. 그리고 어머니 걱정하니까 우리 서류상 이혼한 거 여전히 비밀리에 부치고…. 참, 그리고 나 이사했다. 그렇게 알고 있어.”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방음 시설이 되어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북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북을 치고 나면 뭉쳐있던 울혈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북을 치다가 베란다를 보자 노는 볕이 너무 아까워졌다. 일어나 침대 위에 있는 이불을 걷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이불을 털자 발코니 바깥으로 뭔가가 툭 떨어졌다. 허리를 굽혀 화단을 내려다보자 이불에 뭉쳐있었던 메모지 같은 게 보였다.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니. 결국 잡히지 않는 게 삶인걸. 애써 무얼 집착하니. 다 바람이야….’ 잠에 들기 전 매일 읊었던 묵연 스님의 시구가 적힌 메모지였다. 이불을 발코니 섀시에 걸쳐놓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 나비처럼 내려앉은 메모지를 주워들고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 문이 5층에서 열릴 때 계단에 앉아 있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옆집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누굴 기다리세요?” 여자에게 물었다.

“시장 갔다 오면서 현관 키를 잃어버렸어요. 도어록을 빨리 달 걸 그랬어요. 남편이 새벽 낚시를 가서 오려면 해 질 녘 즈음 될 텐데….”

“그래요? 어쩌나요?”

“길도 낯설고 아는 데도 없어 남편 올 때까지 가까운 찜질방이라도 다녀올까 생각 중에 있어요.”

“그러면 잠깐 저희 집에 들어와 따뜻한 차라도 한잔하시겠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여자에게 들어오라고 한사코 말은 그리했지만 내 성격이 사교적인 편도 아니거니와 이제 겨우 두어 번 마주친 걸로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일은 나로서는 꽤 서먹서먹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 혼자 살아요. 들어오셔도 돼요.”

여자는 자꾸 거절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고맙다고 연신 말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여자와 나는 마주 앉아 녹차를 마셨다. 여자는 구례에서 살다가 남편을 만나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재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신혼이라고 했다. 이니셜이 새겨진 여자의 반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여자가 손을 만지작거렸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어요. 남편이 반지를 사 가지고 왔었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에게 받아본 선물이었거든요. 14K 반지를 끼고 남편 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여자는 스스럼없이 풀어놓았다. 여자의 말을 듣고 보니 이때껏 남편에게서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던 내가 보였다. 문득 여자가 부러워졌다. 여자는 이내 시장바구니에서 고기를 꺼내며 잠깐 냉동실에 넣어두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자기 남편은 기름기가 적은 돼지 앞다리 살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기를 빨리 갖고 싶어요. 그래야 남편 방황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허구한 날 술을 입에 달고 살아서 속이 상해요. 사업이 어렵다 보니 단 한 번도 남편에게 손을 벌려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모아둔 돈으로 먹고 살았어요. 앞으로도 남편이 성공할 때까지만 투잡이라도 해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싶거든요. 근데 아기가 생기면 좀 힘들겠죠?”

여자는 나와는 달리 남편의 힘듦을 온전히 제 몫으로 여긴 듯했다.

“남편이 아내를 잘 만난 듯하네요. 남편이 성공하면 아내를 떠받들어야 하겠는데요?”

여자가 생긋 웃었다. 여자는 다소곳이 앉아 거실 한쪽에 있는 북을 쳐다보았다.

“고수인가요?”

“네? 아, 저는 하수입니다.” 나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어느새 해는 서쪽 하늘로 기울고 있었다. 이때 옆집에서 쾅! 하고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남편이 벌써 왔나 봐요.” 여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여자가 일어나자 나는 냉동실 문을 열어 얼려진 고기 뭉치를 꺼내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여자가 나가자 배가 고팠다. 냉동실을 열었다. 삼겹살을 사 둔 것이 생각이 났다. 삼겹살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해동을 시킨 후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구웠다. 혼자 먹는 고기는 꽤 퍽퍽했다. 노릇하게 구워진 한 조각을 다시 입에 넣었다. 그래도 퍽퍽했다. 식탁 위에 놓인 포장지를 확인했다. 삼겹살이 아닌 돼지고기 앞다리 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시간이면 삼겹살로 바뀐 고기 때문에 여자가 다시 현관문을 두드릴 만도 한데 조용했다. 내가 먼저 문 두드려 사실을 말해주어야 하나? 하고 다시 냉동실을 열었다. 그런데 삼겹살 뭉치는 냉동실에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뭘 주었던 것일까. 다시 살펴보자 얼려놓은 꽃게 한 뭉치가 보이지 않았다. “박 서방이 좋아하는 꽃게 보낸다. 바가지 조금씩만 긁고 술 먹은 다음날은 얼큰한 꽃게탕 끓여주어라.” 하고 아버지가 몇 달 전에 택배로 보내준 것이었다. 남편과의 이혼을 모르는 아버지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누르며 나는 꽃게를 씻어 먹기 좋게 각각의 비닐봉지에 소분해두었던 것이다. 돼지고기가 꽃게로 뒤바뀐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집 여자는 우리 집 현관 벨을 누르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옆집 여자를 경비실 입구에서 만났다.

“고기와 꽃게가 뒤바뀐 거 아셨어요?” 나는 웃으며 여자에게 물었다.

“아, 맞아요. 덕분에 꽃게 잘 먹었어요. 그날따라 남편이 날 위해 요리를 해준다고 해서 얼려진 뭉치를 식탁에 올려놓고 잠깐 잠이 들었어요. 한숨 자고 나니 얼큰한 꽃게탕 냄새가 거실에 가득했어요. 웬 꽃게탕이냐고 비닐봉지를 살펴보자 그제야 바뀐 걸 알았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꽃게탕으로 모처럼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며 좋아하지 뭐예요. 그 말에 좀 서운했어요. 저도 남편 식단에 꽤나 신경을 쓰며 살았거든요. 그런데 모처럼이라니요…. 그나저나 어쩌지요? 꽃게를 다 먹어버렸으니요.”

“괜찮아요. 제가 잘 못 준 건데요 뭘.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에요.”라고 말하자 여자는 기쁨에 찬 듯 말했다.

“아이를 임신했어요.”

“어머 축하해요.”

한 번도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마치 내가 아이를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저,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 피붙이가 없어 늘 정에 굶주렸어요. 그러다가 사춘기 때 고아원을 빠져나와 전 남편과 사랑에 빠져 동거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남편의 여성편력과 폭력까지 더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도망쳤죠. 그럴 땐 나에게도 언니 하나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어요.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세요.”

붙임성이 좋은 여자에게 은근히 정이 갔다. 그녀를 보면 죽은 여동생 생각이 났다. 동생도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를 절었고 나이도 얼굴 생김새도 여자와 비슷해 그녀를 보고 있으면 죽은 여동생이 마치 살아 돌아온 듯했다.

임신을 하자 여자는 아르바이트를 보류했다고 했다. 그러려면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 써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여자가 걱정을 하자 나는 내 처지를 잠시 잊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이라도 왠지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다. 나는 벌써부터 딸을 기대하며 아이의 배냇저고리와 기저귀는 기본이고 분홍빛 블라우스와 만화 캐릭터가 입은 치마, 앙증맞은 구두, 리본이 박힌 머리띠, 물고기 문양의 머리핀을 사서 매일 바꿔 입히고 바꿔 꽂아주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는 네 이모야.” 하며 함께 손을 잡고 공원을 걷기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놀이 기구를 타는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맏언니가 막냇동생을 챙기듯 시간 날 때마다 수시로 그녀의 몸 상태와 안부를 핸드폰 문자로 묻기 시작했다.

식당 경력 십 년 베테랑인 한 여사님은 나와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내가 퇴근할 때면 다른 사람 눈치 안채게 살짝 남은 음식을 싸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임신한 옆집 여자가 먼저 생각이 났다. 퇴근하면서 나는 옆집 여자에게 문자를 했다.

“문 앞에 밑반찬 놓아둘 테니 가져가요. 이 반찬 맛있게 먹고 태교에 힘쓰고요.”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식당에서 가져온 밑반찬을 여자의 현관 문 앞에 놓아두었다. 밑반찬뿐만 아닌 오는 길에 재래시장에 들러 꽃게를 사서 놓아두곤 했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배가 점점 불러왔다. 쉬는 날이면 병원에 같이 가주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무슨 일로 바쁜 건지 아침 일찍 나가면 술에 취해 새벽녘이 되어서야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건강을 걱정했다.

아파트 뒤에 자리한 한산사(寒山寺) 입구에는 산사 음악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때마침 주말이라 옆집 여자와 나는 음악회에 가보기로 했다. 그날 한산사의 밤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산사의 뜰에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성불사의 밤’을 노래하며 마치 흑백의 돌다리를 건너고 있는 듯했다. 무대 위에 오른 여승은 하얀 버선을 신고 구성진 애수의 소야곡, 수덕사의 여승을 불렀다. 노래는 다시 인도의 향불로 옮겨졌다. 그 위로 수양버들이 가지런해졌다. 한 번쯤은 인연이라는 돌다리에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했었을 관객들을 빙 둘러보았다. 음악에 너무 취했을까. 한때 잃어버린 음정을 찾아 내 다시 부를 사랑 노래가 있다면 나 기꺼이 목 놓아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가슴은 금세 불타(佛陀)였다. 초저녁잠을 잠시 미룬 새들은 가지 위에서 미에! 미에! 노래 부르는 것 같았다. 다시 초대 가수의 사랑과 이별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며 우리 둘은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다.

“와 보기를 잘 했어요. 기분이 흥겨워 태교에도 도움이 되는 듯해요.”

“그래요? 다행이에요.”

산사 음악회가 끝나고 우리는 길을 걸어 아파트 5층 승강기 앞에서 헤어져 각자 집으로 들어왔다. 옆집 남자는 그날 일찍 들어왔는지 현관문을 열 때 집 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 막 신발을 벗는 찰나에 핸드폰이 울렸다. 고모였다.

“내가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것다. 언뜻 보아서 잘 못 본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니, 분명 박 서방 같았어. 택시를 타고 가는데 말이야. 한 식당에서 박 서방 닮은 사람이 여자의 손을 잡고 나오지 뭐냐. 여자는 배가 좀 나와 후덕해 보였어. 너, 박 서방 관리 잘 하고 있는 거냐?”

“고모가 잘 못 봤을 거예요. 그 사람 지금 여자에게 한눈을 팔 그럴 정신이 어디에 있다고, 그리고 요즘 여자들이 돈 없고 능력 없는 남자를 만나주기나 한대요?”

“그건 모를 일이지.” 고모는 석연찮다는 듯 계속 내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고모와 통화를 끝내고 남편에게 핸드폰을 들었다. 받지 않았다. 잠시 후 핸드폰 벨이 울렸다.

“무슨 일인데?” 그의 말투는 다소 퉁명스러웠다.

“혹시, 여자 있어?” 내가 물었다

“뭐라고? 내가 지금 여자 만날 정신이 어디에 있다고 그래?”

“우리 형편이 피면 다시 합치는 거야?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고 말이야.” 남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지금 나 바빠. 끊어.” 남편은 전화를 툭 끊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한차례 썰물이 빠져나간 듯 구내식당은 한가로웠다. 주방을 정리해놓고 저녁 메뉴 준비에 들어가자 한 여자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옆집 여자였다. 얼굴은 초췌해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식당을 다 찾아오고….”

여자가 손으로 눈두덩을 훔쳤다.

나는 여자를 데리고 식당 한 쪽에 앉았다.

“언니, 불안해요. 남편에게 아내가 있는 듯해요. 어젯밤 남편이 실토했어요. 전 아내와 확실히 끝내지 않았나 봐요. 서류상으로는 이혼했다고 하지만 금전 문제가 얽혀 있나 봐요. 어쩌지요? 만약 전 아내가 찾아와 내 머리채라도 잡고 둘 사이를 갈라놓으면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 불쌍해서 어떡해요?”

여자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괜찮을 거야. 안심해요. 서류상으로 이혼이면 남남인데 무슨… 걱정 말고 좋은 생각만 해요.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지켜줄게요.”

안심을 시키자 여자가 꺼이꺼이 울었다.

“언니, 날 좀 지켜줘요. 나 제대로 살고 싶어요. 아이 낳고 여느 가족처럼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럼 그렇게 살아야지.”

여자를 토닥이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날 퇴근하는 길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다 육아 용품점에서 가던 길을 멈췄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내 배냇저고리와 기저귀를 샀다. 산달이 곧 다가오면 깨끗이 세탁하고 삶아 옆집 여자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가벼웠다. 집에 돌아와 서랍 속에다 사 둔 것을 곱게 개켜두었다.

어느새 옆집 여자의 산달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도 콧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식당 주방에서 파를 다듬으며 태어날 아이의 얼굴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때 핸드폰 문자음이 울렸다. 옆집 여자였다. 급하다며 백만 원만 빌려줄 수 있냐고, “아이 낳고 나면 무슨 일을 해서든 꼭 갚을게요”라고 했다. 그녀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마침 월급 탄 거 있으니 빌려준다고 답을 하였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며 나를 다독일 때 문자음이 다시 울렸다. 남편이었다. “급한데 혹시 백만 원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 배냇저고리와 면 기저귀를 서랍에서 꺼냈다. 주방으로 들어가 스테인리스 찜통에다 물을 반쯤 부었다. 그런 후 배내옷과 기저귀를 손빨래를 한 후 푹푹 끓여 냈다. 거품 일으키는 소리는 흡사 아이의 옹알이 소리 같았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도 빨래 건조대에 널어둔 기저귀를 마냥 바라보았다. 기저귀는 새로운 탄생을 알리려는 듯 바람을 불러 하얀 깃발로 낮게 펄럭이고 있었다. 기저귀에 얼굴을 대어보았다. 스무 개의 보드라운 아기 뺨 같은 것이 얼굴을 스치자 향긋한 젖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었다. 남편은 전화를 부리나케 받았다.

“나 당신과 다시 살아야겠어. 우리 아무래도 잘 못 생각한 것 같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일이 정리가 안 돼 같이 살기엔 아직 무리야.”

화장실에서 받는 것인지 통화음이 울리고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떨어져 산다고 안 될 일이 되기라도 하는 거야? 이제라도 함께 부딪쳐 이 상황을 이겨내 보는 건 어때?” 나는 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왜 그리 서두르는데? 아직 이르다고 하지 않아?”

남편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때 한 여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당신 지금 누구랑 통화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웬 여자 목소리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쪽에서도 “웬 여자 목소리야?”라고 남편에게 다그치는 듯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두 여자의 캐묻는 소리에 남편이 당황하는 듯했다. 잠시 후 여자가 핸드폰을 낚아채는 듯했다. 나는 이때 왠지 겁이 나서 내 쪽에서 먼저 핸드폰을 툭 끊었다. 누구냐고 묻고 싶지도 않았다. 방 한 쪽에 있는 북이 가엾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월요일인가 싶으면 수요일이고 또 금세 주말이 찾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 보호대를 풀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여자의 눈 밑은 그늘이 가득했다. 가위를 들어 자꾸만 눈을 가린 앞머리를 잘랐다. 그런 후 핸드폰을 들었다.

“저, 흥신소죠? 뒷조사에 필요한 의뢰를 좀 할까 해서요. 비용은 어느 정도 드나요?”

불법적인 일은 정말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남편 뒷조사나 하는 것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내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한 생각마저 일었다. 흥신소 직원에게 남편 사진과 남편이 자주 갈만한 당구장, 피시방, 실내 야구장, 단골 술집인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 후 흥신소 직원은 며칠이 지나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어놓지 못하였다. 본래 남편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할 만한 작은 낌새를 눈치채기라도 하면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빚쟁이를 따돌리는 것 또한 선수였다. 그 때문에 나는 늘 남편의 방패막이와 화살받이였다. 지금의 심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옆집 여자에게라도 전화해 속이라도 좀 털어놓으면 한결 나아질까 해서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차곡차곡 개켜둔 기저귀와 배냇저고리를 만져보았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태아가 되어 엄마라는 뱃속에서 딱 몇 분 만이라도 있고 싶어졌다.

날이 어둑해지자 밤바다를 찾았다. 낚싯대를 던져놓는 낚시꾼이 띄엄띄엄 보였다. 몇몇 사람에게서 나처럼 비릿한 고독이 잡히기도 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비는 굵은 문어발로 마구 쏟아져 내렸다. 먼 섬들은 밤인데도 미역이나 톳 같은 검푸른 빛깔을 드러냈다. 문득 용문사 스님, 아니 또 다른 아버지에게 이 밤 풍경을 전해주고 싶었다. 비를 맞은 채 해안가를 돌다가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수시로 치밀어 오르는 열은 열로써 다스려야 했다. 찜질방에 누워 눈을 감았다. 피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얼마큼 잤을까. 꿈일까. 스르륵스르륵 뱀 같은 것이 내 앞섶을 스친 듯 했다. 눈을 떴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때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장한 한 남자가 내 옆에 누워 있었다. 나에게서 남편 없는 여자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을까. 그래, 남편이 있었다면 나 혼자 찜질방에 와 긴 밤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침 일찍 찜질방에서 나와 용문사(龍門寺)를 찾았다. 스님은 싸리나무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오늘 오실 줄 알았습니다. 몇 분 전 고운 나비 한 마리가 내 손등에 앉아 있었지 뭡니까?”

비질을 끝낸 스님은 다기를 꺼내 찻잔을 데우고 우려낸 차를 따랐다.

“아버지!”

스님은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제가 뭘 잘 못했습니까? 내게는 두 분 다 제 아버지세요. 돌아가신 엄마를 아직도 사랑하세요?”

“저 먼 목선을 보십시오. 지나간 자리는 결코 오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입니다.”

“하지만 스님은, 아니 아버지는 흔적을 오래 남기셨습니다. 제가 곧 그 흔적이 아닙니까? 엄마, 보고 싶지 않으세요?”

“제게는 저 수평선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저는 어릴 적 엄마 말만 믿고 스님이, 아니 아버지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 아버지는 그때 엄마 뱃속에 제가 꿈틀대는 줄도 모르고 홀연히 출가하셨다면서요?”

“저도 훗날에서야 알았습니다. 낳은 아이를 데리고 재가 했단 소식을 듣고 참 많이 아팠습니다.”

“스님, 아니 아버지! 잠깐만이라도 제게 말을 놓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세상 모든 만물이 부처님으로 보이니 지는 저 구절초에게도, 저 구름에게도 차마 말을 놓지 못하겠습니다.”

“정말 무정하시군요.”

“지금 이 정도의 거리가 제게는 가장 편한 거리입니다.” 말을 마친 아버지의 헛기침은 쓸쓸해 보였다.

“정 뜻이 그러하시다면 네, 알겠습니다. 스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북고를 두드릴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번뇌는 또 번뇌를 키우지요. 북을 두드린다고 풀린다면 저는 벌써 이 산사를 떠났을 것입니다. 무념무상이 수행의 기본자세이고 과정이지요.”

스님은 말을 마치고 먼 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서야 했다. 스님과 더 앉아있다가는 서운한 감정이 해일처럼 밀려올 듯했다.

산사에서 내려와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나는 수산시장 한 바퀴를 돌았다. 날은 어느새 어두워졌다. 고등어 한 손을 산 김에 싱싱한 꽃게를 사서 손에 들었다. 꽃게가 비닐봉지를 뚫고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문득 방생을 떠올렸다. 하지만 후생에 받을 대복 또한 나와는 멀게 느껴졌다. 꽃게는 여전히 몸부림을 쳤다.

아파트에 다다르자 나는 무심코 5층을 올려다보았다. 옆집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승강기를 타고 5층에서 멈추자 갑자기 가슴이 스산해졌다. 나는 옆집 현관문 앞에 꽃게를 놓아두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때 위층에서 마늘 같은 것을 마구 찧어대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심기가 무척 불편해졌다. 이사 온 후부터 아침저녁으로 줄곧 들어온 일이라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지금은 별거 아닌 것에도 신경이 곤두서서 한마디라도 해야겠다며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 끝내 벨을 누르지 못한 채 내려왔다. 602호는 보청기가 거추장스러워 자주 빼놓고 일한다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마늘 찧는 소리는 매번 똑같은 음역대에 머물고 있었다. 혹 누군가도 내가 두드린 아련한 북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시 집으로 들어오자 몸과 마음이 고단해졌다.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그날 밤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연녀를 잡아 가두는 납치범이 되기도, 찧은 마늘을 눈 속에 넣으며 악랄한 고문자가 되기도, 광야에서 싸움을 겨루는 서부의 총잡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승자도 패자도 없이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다 현관문을 열고 옆집 현관문을 살폈다. 꽃게를 담아둔 비닐봉지는 그대로 놓아져 있었다.

다음 날 구내식당에 출근하여 한가한 틈을 타 흥신소에 의뢰했던 것을 철회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흥신소에 의뢰한 자도 삼 년 이하의 징역이나 삼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설령 불법을 저질러 구속된다 해도 더 이상 잃을 것이 내겐 없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이때였다. 흥신소 직원이 보내온 남편과 내연녀가 찍힌 사진과 동영상이 전송되었다. 손이 떨렸다. 사진 속 여자는 뒷모습만 보여 얼굴이 선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여자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부른 배를 만져보기도, 장어구이 식당에서 장어를 구워 여자의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이때 구운 장어를 입에 물고 미소 짓는 여자는 다름 아닌 옆집 여자였다. 손이 떨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퇴근하면서 아파트 5층을 올려다보았다. 불이 켜져 있었다. 승강기를 타고 5층에서 멈추자 낯선 여자가 옆집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세요?” 나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아, 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이 집 주인인데요? 세입자가 이사를 가서 보수할 것이 있나 둘러보고 나오는 거예요.”

“이사 갔어요? 언제요?”

“어제요. 많은 세입자들이 이 집을 거쳐 나갔지만 잠깐 살다가 급히 떠난 세입자는 처음이네요. 거 참….”

문 앞에 놓인 꽃게는 비닐봉지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와 여자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수십 번 걸었다.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문자를 했다. “언제 시간 되면 우리 집에 한번 와 줄래요? 마지막으로 꼭 전해줘야 할 것이 있어요. 꼭 가져갔으면 해요.”라고 했다. 잠시 후 여자에게서 답장이 왔다. 빌린 백만 원은 빠른 시일 내로 갚겠다는 것과 그동안 따뜻하게 대해주신 것은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자의 문자를 받고 나서 곧바로 답을 했다. “그래요. 하지만 꼭 한번은 만나 전해줘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집에 한 번 올래요?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요. 그냥 가져가기만 하면 돼요”라고 하자 돌아온 대답은 그랬다. “남편은 더 이상 꽃게가 싫대요. 입맛이 변했나 봐요. 남자들은 본래 익숙한 맛보다는 새로운 맛을 느끼고 싶은가 봐요.”라고 했다. 나는 다시 답했다. “꽃게가 아니에요. 정말 꽃게가 아니라고요…….” 여자는 더 이상 답이 없었다.

면 기저귀를 서랍에서 꺼냈다. 대형 두루마리 화장지를 펼쳐 놓은 듯 거실에 풀어놓았다. 그런 후 욕실로 가져가 욕조에 반쯤 물을 받아 푹 담갔다가 다시 꺼냈다. 그런 후 세탁기에 넣어 탈수한 다음 빨래 건조대에 널어두었다. 어디에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며칠이 지나도 끝내 여자는 전화도 방문도 하지 않았다. 작은방 한 쪽에 놓아둔 북을 품으로 끌어안았다. 북소리는 아주 낮게 슬픔을 치고 있었다. 이내 북을 손에서 떼어놓고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거친 바람이 유리창을 강타했다. 감정의 기복도 심해져 고기압과 저기압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와 예기치 않은 일상의 변화에 찬 공기가 내 안으로 유입되어 내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릴 듯 최대 순간 풍속이 예상되기도 했다. 더이상 이별이란 말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태풍은 그치고 먼바다와 섬은 고요했다. 또다시 묵연스님의 시 한 구절이 입에서 맴돌았다. ‘폭풍이 아무리 사나워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시구를 읊조리자 기저귀가 햇볕을 받으며 하얀 깃발로 여전히 나부끼고 있었다. 나는 기저귀를 오래 응시하며 생명…생명…이란 단어를 또 한 번 읊조렸다. 햇살은 그토록 따뜻하고 아늑한데 냉동실 속 꽃게는 아직 밖으로 나올 줄 모르고 꽁꽁 얼려져 있었다.

 

문장 속에서 만날 인연 설렌다

■ 소설 당선소감 / 김하연

글을 쓰는 시간은 늘 새벽이었다. 지금도 글을 쓸 때면 왜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허기가 지고 목이 마른 것일까? 비스킷과 빵 몇 조각 그리고 물 반 컵, 그 소소한 채움만으로도 글은 다시 이어진다. 문득 책에서 보았던 도법스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연기의 세계관에서 보면, 존재의 실상은 서로 뗄 수 없는 총체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했다. 그랬다. 내가 지금 맺고 있는 새벽의 적요, 먹거리, 등장인물, 음악, 가족이 없이는 이 시간의 나는 존재할 수 없으니 연(緣)이 곧 내 우주였다. 나는 ‘찰나’라는 말을 사랑한다. 이 얼마나 영원에 가까운, 염원에 가까운 말인가. 어쩌면 그 찰나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길을 떠나고 글을 쓰고 청춘의 깃발들은 푸르게 펄럭일 것이다.

이번 당선작은 ‘생명’이라는 주제가 화두였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옛 시인의 시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생명에 대입할 만한, 활어처럼 파닥이고 뜨겁고도 아름다운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상처받은 영혼은 강하다. 소설 속의 그녀가 부디 상처를 딛고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고 힘든 또 누군가에게 나직이 노래 한 소절 들려주면 좋겠다. 소설 말미에 그녀가 낮게 흔들리는 기저귀를 바라보며 생명…생명…을 나직이 읊조리듯이 말이다.

글쓰기는 내 정서가 섬이었기에 시작이 가능했다. 글이라는 오두막 한 채 짓기 위해 물고기로 플롯을 짜고 파도의 옷을 빌려 제목을 만들고 후박나무 가지로 서사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돌아보면 틈이 생겨 매일 비가 들이쳤다. 틈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물어볼 데도 없었지만, 끝까지 섬에 남아 집 한 채 겨우 완성했다. 부족하고도 서툰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불교신문에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큰 짐 하나를 진 것 같다. 이토록 가슴 떨리는 짐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문장 속에서 만날 수많은 인연을 생각하면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떠오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동안거 결제(結制)를 마치고 또 다른 수행을 떠나는 만행(萬行)이 이와 같을까. 문장이라는 길 위에서 만날 당신은 또 누구일지, 설렘 가득하다.

삶의 무게 실리고 구성력 돋보여

■ 소설 심사평 / 한승원 소설가

소설은 재미있게 읽혀야 하고, 읽은 다음 독자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어야 한다. 소설이란 것은 하나의 커다란 비유의 덩어리인데, “참삶이란 게 이런 것 아닐까요”하고 독자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이 기본 원칙과 기초공부가 되어 있는가의 기준에 따라 응모된 직품을 읽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바다와 나비’, ‘자식은 죽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 ‘백 우스더’, ‘삼사라’, ‘북을 두드리는 오후’ 등 여섯 편이었다. 무리한 구성과 상식을 벗어난 억지스러운 이야기의 진행으로 인해 제일 먼저 ‘바다와 나비’가 제외됐다.

기초공부가 잘 되어 있기로는 ‘심지’와 ‘자식은 죽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이었는데, 이야기도 재미있고 소재도 잘 골랐다. 그런데, 힘을 들인 만큼 감동을 주지 못했다. 농사를 잘 지었지만, 가을걷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백 우스더’는 특이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지만, 마무리를 잘 하지 못했고, ‘삼사라’는 기초공부가 잘 되어 있고, 문장도 정확하고 밀도 있고, 성실하게 썼지만 평범한 기행소설을 읽은 듯 감동이 덜하다. ‘북을 두드리는 오후’는 삶의 무게가 실리어 있고, 구성력이 돋보인다. 소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원에 있다. 구원은 인간의 윤리에서 가장 큰 덕목인 것이다. ‘북을 두드리는 오후’를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당선자에게 축하하고 건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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