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서산 개심사. 출처=개심사 홈페이지

청벚 보살

이수진

개심사 청벚나무 가지에 연둣빛 꽃이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것일까

가지 하나 길게 내밀어 법당에 닿을 듯하다

꽃이 맑다

매화나무는 목탁 두드릴 때마다

꽃잎으로 법구를 읊고,

청매화는 동안거 끝에 심욕의 수피를 찢어

꽃망울 터트린다

저토록 신심(信心)을 다져왔기에

봄이 일주문에 들어설 수 있다

가지마다 허공으로 낸 구도의 길

제각각 가부좌 틀고 참선의 꽃들을 왼다

전각에서 내리치는 죽비소리

제 몸 쳐대며 가람으로 흩어지는 풍경소리

합장하듯 꽃잎들 맞이하고 있다

법당은 꽃들의 백팔배로 난분분하다

부처가 내민 손바닥에

청벚꽃잎 한 장 합장하듯 내려앉는다

이제 어렴풋이 나만의 시 짓게 됐다

■ 시 당선소감 / 이수진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돌이켜보면 ‘시인이 되거라’ 부모님 유언으로 인해, 경영학에서 문학의 길로 에돌아온 것이었다. 어떻게 시를 시작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던 2016년, 그 심정을 모르는 남편과 아이들의 응원은 더 버겁기만 했다. 그때 지인이 박덕은 교수님을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늘 정체성에서의 물음표가 나를 괴롭혔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앞서곤 했다. 그때마다 교수님의 채찍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방황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다잡아주려고 전국에 있는 사찰을 데리고 다녔다. 딸과 아들은 할 수 있다고 수시로 힘을 실어주었다. 그 덕분에 마음 다잡고 새로운 시도를 꿈꿨다. 국어국문학과에서 기초부터 다지면서 학업과 동시에 시 창작에도 전념했다.

그러던 중 윤성택 시인이 비유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차근 차근 한 편 한 편 날선 자음 모음들이 둥글게 깎였고, 직관의 터를 고르고, 앙상한 언어에 살을 붙여갔다. 그러길 몇 년, 이제 어렴풋이 나만의 시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늘 힘이 되어준 남편과 아들딸. 공부에 집중하라고 반찬마저 해서 보내준 언니들에게도 이 영광을 돌린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시심과 신심에서 태어난 환희의 노래

■ 시 심사평 / 문태준 시인

불교신문 ‘2023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와 시조 작품들을 상세하게 읽었다. 시적 경향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작품들과 불자로서의 내면을 살피는 작품들이 많았다. 불교신문의 신춘문예가 불자 문인을 발굴하는 등용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당선작 선정을 위해 마지막까지 살펴본 작품들은 ‘탁발승’, ‘물의 집’, ‘청벚 보살’이었다. 시 ‘탁발승’은 “절 아래 마을”로 탁발을 떠나는 수행자의 여정을 순차적인 시간을 따라가며 노래했다. “염소의 부러진 뿔을 쓰다듬고/ 늙은 도요새의 남루를 여며주었네”라고 쓴 시행의 끝자락은 공양물을 받는 탁발의 일을 오히려 마을 대중에게 베푸는 일로 적음으로써 탁발의 궁극적 의미를 장엄하게 부각시켰다. 다만, 탁발을 나선 주체가 선명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맹그로브 나무로 의인화함으로써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었다.

시 ‘물의 집’은 시상이 빛나는 대목이 많았다. “백무리 물고 웃는 함박꽃 환한 마당”이라고 쓴 시구에서는 흰색의 밝은 색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고, “심우도 빛바랜 벽엔 홀로 깊어 부푸는 달”에서는 빛이 바랜, 시간이 쌓인 벽과 달이 내뿜는 그 신생의 빛이 대비를 이루는 동시에 쑥 들어가고 부드럽게 튀어나온 질감 또한 대조적으로 포착했다. 하지만, 시적 화자가 있는 시공간이 현실의 시공간인지 상상의 시공간인지가 불분명했고, 절의 공간과 세속의 공간 또한 뒤섞여 있어 아쉬움이 있었다.

고심 끝에 시 ‘청벚 보살’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시심이 매우 맑았고, 또 무엇보다 깊은 신심을 시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청벚나무를 시적 주체로 설정하고 있으나 그것이 곧 구도 수행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청벚나무) 가지 하나 길게 내밀어 법당에 닿을 듯하다”라고 써서 청벚나무가 개화라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도정에 있고, 깨달음을 향한 희원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거리감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부처가 내민 손바닥에/ 청벚꽃잎 한 장 합장하듯 내려앉는다”라고 쓴 결구에서도 귀의와 경배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신심을 바탕으로 웅숭깊은 찬불의 시편들을 계속 보여주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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