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서한담] <8> 임제 노장의 기침, 덕산 노장의 방망이
[불서한담] <8> 임제 노장의 기침, 덕산 노장의 방망이
  • 정현식 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 승인 2020.09.16 17:17
  • 호수 3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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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주체적으로 산다면…

한방 더 얻어맞고 싶구나! 누가 나를 위해 때려 주지 않겠는가? 어리석은 곰은 방망이(棒)를 쓰고 영리한 사자는 할(歇)을 쓰나니…. 임제 할, 덕산 방은 불가(佛家)에 일자(一字) 선(禪)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려줄 스님도 계시지 않고 방망이 맞을 스님도 없으니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다. 세속에서 부모님께 주어지는 사랑의 매도 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하니 참으로 어찌해야 옳은 것일지 인생에 정답은 없고 명답이 있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마조할, 임제할, 덕산방, 이 귀한 물건이 고정되고 잘못된 관념과 사념속에 집착하고 끄달려 있는 고리사슬을 끊고 깨우쳐 주기위해 설명으로서 문자로서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지경을 끊어내는 거룩한 행위이다.

<임제록> 감변(勘辨)편에서 임제4할을 상세히 설하고 있다. 어느 때의 할(歇)은 금강왕 보림같고, 앉아있는 금보사자 같으며, 물고기로 풀을 유인하여 잡는 탐간영초(探竿影草) 같아 선사가 할로서 제자의 근기를 시험해 보거나 어느 때 할은 작용하지 않는 할로서 일체를 거두어들이는 할이다. 

방(捧)은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것과,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견해를 인가 해주기도하고, 수행자의 어리석음을 아프게 일깨워 주는 등 참으로 귀한 방망이이다. 

내 글씨 그런 마음의 붓질이다. 붉은 색 화선지에 두 폭의 작품을 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대련(對聯) 작품으로, 화선지색상, 크기, 서체 등에 따라 글씨 운필의 묘를 살렸다. 

귀고막이 터지고 정신 번뜩 깨는 할과, 한방 맞음으로서 미혹함에서 벗어나는 따끔하게 매운맛이 있는 방망이는 몽매함을 날려 보내는 큰 일대사(一大事) 이다.

지극한 가르침은 사량분별로 능히 헤아릴 수 없다. 헤아리고 잔머리 돌리면 망념으로 환각과 헛꽃만 본다. 급하면 조급히 움직이고 늦추기만 하면 흐리멍텅해진다. 과거에 형상에 메인 채 시대적 상황을 읽어 내지 못하는 종교와 글씨는 생명력이 없다. 무명을 깨칠 고함(歇)도 아니고 정신 번쩍 들게 할 수 있는 방망이(捧)도 아니고 사람 속이고 멍들게 하는 시간 낭비이다. 

임제 선사는 따갑게 가르친다. 노승의 할을 흉내 내지 말라. “어느 곳에서나 주체적인 삶을 산다면 그가 바로 살아 있는 진정도인이다.” 

[불교신문3614호/2020년9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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